2024.05.15 (수)

  • 흐림동두천 9.3℃
  • 흐림강릉 11.9℃
  • 서울 11.4℃
  • 대전 11.6℃
  • 구름많음대구 26.1℃
  • 맑음울산 24.0℃
  • 광주 12.4℃
  • 맑음부산 22.0℃
  • 흐림고창 10.3℃
  • 흐림제주 16.7℃
  • 흐림강화 10.6℃
  • 흐림보은 13.1℃
  • 흐림금산 12.3℃
  • 흐림강진군 14.2℃
  • 맑음경주시 19.6℃
  • 맑음거제 21.1℃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Desperado, why don’t you come to your senses?

스펙트럼

입대를 몇 달 앞둔 아들 녀석과 나는 매 주 월요일로 날을 정해 둘만의 오붓한 저녁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집 근처 맛 집을 찾아 다니며 함께 저녁을 먹고 여러 가지 주제(신앙, 사회정의, 연애와 결혼, 직업…)를 가지고 정말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어려서 유학을 떠나 홀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고 가끔씩 방학 때 만나는 녀석과 그리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나로서는 여간 반갑고 기대되는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아비로서 아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많은 말들, 그리고 듣고 싶은 녀석의 생각들… 아내와 딸이 무척 부러워했지만 결코 방해 받을 수도 없고 방해해서도 안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녀석은 음악듣기를 무척 좋아한다. 잘은 못하지만 가끔 식은 샤워하면서 혼자 흥에 겨워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가 듣는 음악이라는 것이 오십 중반의 내가 알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도 않았다. 주로 외국 곡인지라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가끔은 뭐 흑인 음악이라고도 하는데 우리 정서에 그리 와 닿지 않아 관심 밖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임재범이라는 가수가 부른 Desperado라는 곡에 한 동안 빠지는 가 싶더니 종일 입에 달고 다니는 것 아닌가.

젊은 시절 들었던 이글스가 불러 히트한 그 곡을 임재범의 특유의 호소력 깊은 음색과 온 몸으로 노래하는 그의 노래는 그것을 듣고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들 녀석도 노랫말 속에서 뭔가 자기에게 와 닿는 감성이 느껴졌는지 즐겨 그 노래를 흥얼되곤 했었다.

군대 가기 몇 주전 역시 녀석과 저녁을 먹으며 들은 말은 내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게 해 주었다. “아빠, 제 생각에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절박함과 끈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한테 그게 없었어요” 대학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휴학 후 귀국한 녀석은 군에 가기 몇 달 전부터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회도 배우고 용돈도 벌었다.


사실 아내와 나는 그 시간에 책도 많이 읽고 자기개발을 위한 다른 유익한 시간을 갖길 원했지만 녀석은 굳이 시급 5500원의 식당 일을 거르지 않고 몇 달 동안 그 일을 했다. 녀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안에 있는 자신과의 싸움을 볼 수 있었다. 스스로 절박함 속에서 갈급함을 경험하고 끈기를 배워보고 싶은 기특한 생각을 알게 되니 아! 참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려서 시작한 유학생활의 어려움과 정체성에 대한 혼란 그리고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생활 등등의 고민과 갈등과 좌절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자기가 돌아가야 할 세계가 있음을 알고 진지해 지려는 녀석의 태도가 저으기 안심이 되었다. 군대라는 조직은 그에게 또 하나의 훈련과 학습의 장이 될 것이다. 철책근무를 통해 국경을 사수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신성하고 거창한 역할도 그에게는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 외롭고 힘든 시간을 통해 절박함 속에서 끈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얻게 될 인격적인 성숙은 21개월의 시간 동안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최전방 부대에 배속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녀석의 원하는 절박함에 더 가까이 가게 되는 것 같아 염려보다는 기대가 앞선다. 무슨 역할을 하게 될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근무를 서며 때로 훈련을 받으며 속으로 Desperado, why don’t you come to your senses? (무법자여, 이제 정신 좀 차려요)라고 나지막이 부르며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로 끈기 있게 나아갈 녀석… 생각만 해도 좋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