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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충원에서

월요시론

우리나라 국립묘지 격인 현충원의 시작은 서울 한강너머 동작동에서였다. 6·25 직후인 1955년 설립되었으니, 올 7월이면 만 60주년을 맞는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국립묘지라는 게 없었을까?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 국체 자체가 없었으므로, 국립묘지란 있을 수 없었다. 굳이 살핀다면 일제에 의해 강제 징집 또는 징용돼 갔다가 사망한 조선인 중 일부가 일본인 전범과 나란히 도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는데, 이는 지금도 한일 양국 간의 미해결 역사문제로 남아 있다. 경술국치 이전 조선에도 국립묘지가 있었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 세워진 장충단(奬忠壇)이 그것이다.
 
두 갑자 전인 을미사변(1895)에 명성황후를 잃은 고종은 당시 순사한 조선 장병들을 기려 남산 아래 제단을 만들고 ‘나라에 대한 충성을 장려한다’는 뜻에서 장충단이라 이름 하였다. 곧이어 임오군란, 갑신정변에 순절한 문신들도 장충단제향신위(奬忠壇祭享神位)에 포함하여 매년 봄·가을 두 차례 제사지냈으니, 조선의 어엿한 국립묘지였던 셈이다.

이런 장충단이 일제의 눈에 곱게 비칠 리 없었다. 세워진 지 8년 만에 폐사된 빈 자리에 총독부는 벚꽃을 심어 ‘창경원’처럼 ‘장충단공원’을 만들어버렸다. 그뿐이랴, 총독부는 이곳에 침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을 기리는 대규모 사찰 박문사(博文寺)를 세웠다. 이렇게 충절의 자리에 일제가 박은 쇠징은 해방과 함께 뽑혔지만, 장충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다. 지금 사람들은 그저 ‘안개 낀 장충단공원’과 ‘장충체육관’만 기억할 뿐이다. 그러나 북한남에서 국립극장을 지나 신라호텔 입구에 이르는 장충단로는 그래서 이 땅 최초의 국립묘지를 지나는 역사의 길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모두 8곳의 국립묘지가 있다. 이중 제1호라 할 동작동 국립현충원은 애초 전쟁 직후 부산 범어사 등지에 임시 봉안했던 전사 장병을 한곳에 모신 국군묘지로 출발했다. 그 후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 공헌한 민간인까지 안장 범위가 확대되었고, 이에 따라 명칭도 ‘국립묘지’로 바뀌었다가 다시 현충원이 되어 지금에 이른다. 동작동에는 중국 등지에서 순국선열의 유해를 모셔와 따로 묘역을 만들었으며, 후손 없이 순국한 열사들의 공간인 무후선열제단에는 유관순 열사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잠자던 세계최초의 금속 활자본 ‘직지심체요절’과 조선의궤를 찾아내 고국에 돌아올 수 있게 한 박병선 박사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그러니 동작동 국립현충원은 나라의 근본을 생각하는 역사의 장소이자, 인간의 도리와 의무를 되새기는 엄숙한 제단이다.

치과의사협회 최남섭 회장은 지난해 취임과 임원 구성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안민호 부회장 등 협회 임직원 30여명과 함께 간 최 회장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거룩한 희생을 기린 다음 방명록에 ‘민족과 조국의 번영을 기원하며’라는 글을 남겼다. 임직원의 맨 앞자리에서 분향하는 최 회장의 비장한 모습을 담은 사진과 기사가 필자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그때까지 현충원 참배는 정치인들만 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선입견을 최 회장이 보기좋게 깨주었던 것이다. 협회 차원의 현충원 참배는 이것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최 회장은 아마 당시 회무를 시작하면서 ‘우리 집행부는 오직 국가와 국민을 바라보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겠다’고 선열 앞에서 비장한 자세로 다짐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반년의 시간이 지나 올초 치과계 신년교례회에서 만난 최 회장은 어깨가 많이 처져 있었다. 법무비용이 늘어나 협회 살림살이는 빠듯한데,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조사받느라 힘들었던 탓일게다. 그러나 어느때보다 우렁찼던 치과계 전체의 격려박수를 기억한다면 협회는 주눅들지 마시라. 국가와 국민을 바라보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리라던 다짐이 조금이라도 흔들린다고 여겨지면, 오는 삼일절에는 동작동을 다시 찾으시라. ‘민족과 조국의 번영을 다시 한번 기원하며’라고 방명록에 또 쓰시라. 현충원은 그런 다짐을 곧추세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구 영 서울치대 치주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