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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려

스펙트럼

몇 년 전에 해 넣은 #47의 임플란트 크라운의 근심접촉면이 느슨해 지면서 음식물이 자주 끼는 것이 보통 불편하고 성가신 일이 아니다. 동료원장님에게 해결을 부탁하고 체어에 누우니 그 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진료실의 천정과 조명 그리고 라이트의 손잡이, 입안을 헹구기 위해 타구대로 몸을 숙이니 거기서도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미간에 힘이 들어간다.
헤드레스트는 왜 이렇게 불편한지 평소 목베게를 요청하던 환자들의 요구가 십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입안에 들어왔다 나가는 기구들 그리고 입안 구석 구석 여기 저기 건드리고 당기고 밀면서 시야를 확보하려는 원장님과 스탭들의 손놀림, 그리고 다양하고 별로 유쾌하지 않은 냄새와 혀를 자극하는 산부식재의 신맛, 계속되는 석션으로 건조해 진 협점막과 입술을 당길 때는 솔직히 좀 아팠다.
살짝 물을 적셔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모든 것이 낯선 느낌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것들이 매우 특별한 순간의 경험으로 기억장치 속에 저장되는 순간이다.

진료를 마치니 스탭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온다. 청결에 관해, 세심한 터치에 관해 그리고 석션팁 등 기구의 사용법에 관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일지도 모르지만 다시 한번 환자의 입장에서 느낀 것들이니 꼭 새겨듣고 실천하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게 어디 한 두 가지이랴.

몇 년 전에 일본의 한 치과기업의 초청으로 심포지엄을 참석하고 도쿄에 있는 그 회사의 본사사옥을 방문한 적이 있다.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건물을 들어서니 가장 잘 보이는 곳에 “施無畏(시무외,Semui)”라고 씌어진 현판이 우리를 반기었다. 기업이념 혹은 모토라고 하면서 그 뜻을 설명하기를 “항상 모든 것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라는 뜻이란다.

치과관련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면서 치과의료인과 더 나아가 치과의료의 최종 소비자인 환자들을 생각하자는 창업자의 뜻에 따라 모든 직원들이 자신과 기업의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고객인 치과의료인과 환자들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한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적인 치과기업의 하나로 성장한 동력은 다름아닌 이타심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그 정신이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의 교훈을 요약해서 가르치시기를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배려’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의 눈으로 날 바라보고 그의 귀로 내 말을 듣고자 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마음이다.
 
매일 대하는 환자들이 느낄 불안과 공포 그리고 신체적인 아픔과 불편함을 실감나게 경험한 자처럼 환자들을 대한다면 우리의 임상의 루틴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과의 관계도 언제나 원장으로서의 입장만이 아니라 적응하느라 애쓰며 진료실에서 실수할까 두려워하는 초보위생사들과 진료와 교육과 상담으로 정신 없이 돌아가는 치과생활과 퇴근 후 살림하랴 아이들 키우랴 남편 뒷바라지 하랴 일인 다 역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고참위생사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마음가짐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실천적 삶의 모습은 ‘섬김’이다. 한 때 유행처럼 지나 갔던 섬김의 리더십은 그러나 여전히 소중하게 지키고 실천해야 하는 가치임에 틀림이 없다. 리더십을 영향력이라고 정의한다면 섬김의 영향력은 오늘 날 더 많이 대접받고 차지하려고 애쓰는 모든 이기적 다툼의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오늘도 미러를 쥔 내 손이 긴장하는 것은 환자의 입안에 들어가면서 혹 아무 치아든지 대수롭지않게 부딪치지는 않을까 하는 작은 배려의 마음 때문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명진 크리스탈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