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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과 실력

스펙트럼

50중반의 나이에 40년전의 친구들이 모였다. 이름하여 중학교 동창회. 초등학교나 고등학교 동창회는 그 시기의 특성상 비교적 모임이 잘 이루어지는 반면 중학교 시절은 왠지 시기적으로 어중간하기도 하고 한창 사춘기를 겪던 시절이라 별로 동창모임이 활성화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왠걸, 요즘 한창 너도 나도 기본적으로 몇 가지씩 하고 있는 SNS덕분에 연간 그 모임이 여간 요란하지 않다.

수시로 번개모임을 하고 일년에 두 차례씩 정기 모임에, 취미가 같은 친구들이 모여 그간의 회포도 풀고 느즈막히 만난 철없던 시절의 친구들과 놀이와 수다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며칠 전 함께 공유하는 중학교 동창회 SNS에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얼마 전 시작한 등산 모임의 친구들이 강원도 어느 깊은 산중에서 상기된 얼굴로 무언가를 들고 찍은 사진인데 설명인즉 산삼이란다. 소식이 뜸하던 친구녀석 하나가 몇 달 전에 모임에 나와 자신은 산에 약초를 캐러 다니며 소일한다는 것이었고 이번 산행은 그 녀석을 좇아 몇몇 친구가 약초 캐기 산행을 한 것인데 바로 그 날 다 함께 “심 봤다!”를 외친 것이다. 사실 그 친구는 심심풀이로 약초를 캐러 다니는 수준이 아니고 전문 심마니수준으로 이미 엄청난 산삼을 여러 차례 캔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아마 산삼은 커녕 도라지라도 제대로 캐고 왔을지 의문인 산행이었으리라. 산삼을 구분하여 볼 수 있는 친구를 둔 덕분에 뭐가 산삼인지 모를 녀석들은 평생 잊지 못할 횡재를 한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볼 수 있도록 준비된 것만 본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시력에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시력이 있고 또 사물의 이름과 특성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구별하여 볼 수 있는 지적 수준의 실력에 기반한 시력이 있다. 물론 자연적 시력이 좋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하면 여러 면에서 유리한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직업적 특성상 매일 세밀하게 관찰하고 작업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좋은 시력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안의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확대경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지난해 치과 계 잡지에 “Can’t live without” 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적이 있는 데 치과의사로 임상에서 없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10가지의 재료, 장비, 그리고 기구 중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이 바로 Loupe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나의 임상에서 한 순간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은 유일한 동반자인 Loupe는 지금도 후배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권하는 필수품이다. 앞서 아는 만큼 본다는 취지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또한 보는 만큼 아는 것도 어김없는 사실이다.

먼저는 전문적인 지식의 함양에 힘써야 하지만 또한 정밀하게 보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난시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노안 때문에 일상생활을 위해 최근에 사용하는 안경의 종류가 세가지(다 초점. 근시용, 돋보기)나 되고 또 치과에서 사용하는 Loupe와 몇 년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현미경은 이제 없어서는 안될 남은 인생의 소중한 동반자들이다.
얼마나 더 치과의사로 임상의 자리를 지킬지는 알 수 없지만 매일 대하는 환자들의 입안을 더 꼼꼼하게 살펴보기 위한 노력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치과의료인들이 너무나 근시안적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안목이다. 개인과 단체의 이익에 집착하여 눈앞의 것에 몰두하고 그것에 매몰되어 가는 세태는 안타깝기 그지 없다. 치과의료인들의 직능 별 다툼뿐 아니라 치과의사들의 공직의와 개원의간의 갈등 그리고 같은 동네 개원의 사이에도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낯 뜨거운 모습이 어디 한 둘인가? 조금만 고개를 들고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을 갖춘다면 우리가 겪지 않아도 되는 아픔과 갈등과 절망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연한 기회에 접한 시 한 수를 소개할까 한다.


노 안              
                      이재득

불혹에
잔 글자 흐려지면
먼 곳을 보자

가까운 것 보다
멀리 보라는 뜻일 게야

눈 앞 이익 버리고
사후 생각하라는 뜻일 게야

젊음에
잔 글자 잘 보고
먼 곳을 멀리 했으니

노안에
잔 글자 보려 하는 것
욕심일 게야

귀로 듣기만 하고
입 웃음 보이며
노안은 멀리 보라는 게야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명진 크리스탈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