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과도기에 사는 우리에게 주는 위로의 편지

특별기고

오래 전 일입니다. 까까머리를 한 고3 수험생으로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른 저는 진로 문제로 고심을 하던 중 친척 한 분의 설득력 있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당시 육군 장교로 미국에 유학을 다녀 오신 삼촌이 장래에는 치과 분야가 각광을 받을 것이고 우리 나라가 선진국이 될수록 치과 분야는 인기 직종이 될 것이라고 하시며 미국 육군 본부 내 운동장처럼 넓은 치과 클리닉을 보시고 감동한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치과가 운동장만큼 넓을 수 있다니? 어릴 적 들렀던 치과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협소한 공간에 의자 두어 대 있고 귀를 찌르는 듯한 소음이 전부였던 제게 상상하기 힘든 공간이었지만 삼촌의 조언을 따라 치과대학에 원서를 넣고 당당히 합격을 하였습니다. 막연히 치과 분야가 좋을 것이라는 동경에 젖어 치과대학을 다닌 한 청년은 그로부터 30여 년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우리 사회와 치과 분야에서의 큰 변화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순탄치 않은 격동의 시기라고 명명할 만한 시간의 연속이었던 것이지요.

삼촌의 예지력 있는 조언대로 치과 분야는 점점 상승 곡선을 그리며 성장을 시작하였습니다. 치과대학을 졸업할 즈음 ‘임플란트(Implant)’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였는데 빠른 속도로 개원가에 상용화되기 시작하였고, 교정 치료는 치아에 직접 장치를 붙이는 방법(DBS)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법전에 명시된 치과전문의 제도를 시행하지 않는데 대한 위헌 소송이 진행되며 전문의 제도는 치과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치과 분야의 기구나 장비를 판매하는 회사가 코스닥에 상장이 되고 임플란트와 교정 치료의 수익이 증가하며 예전에 삼촌이 미국에서 보셨을 법한 ‘운동장 만한’ 치과가 생기고 심지어 건물 전체를 치과 병원으로 운영하는 개원의가 탄생하였습니다. 수익성과 미래 비전은 그래프상 수직 상승 곡선을 그리는 듯 하였고 그 과정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으며 성장한 저는 한국 사회에서 전도 양양한 분야의 선봉에 서있다는 자부심으로 하루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요? 치과 분야에 서서히 암울한 분위기가 감돌던 시점이 말입니다. 치과계의 유명한 체인 치과가 부도가 났다는 소문이 들린 것이 시작이었을까요? 아니면 임플란트 수가가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 그 전주곡이었을까요? 마냥 수직 상승할 것 같던 분위기는 꺾이고 성장 그래프는 아래로 방향을 튼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임플란트에 이어 교정 치료비까지 덤핑 공세로 추락하며 수익원은 줄어드는데다가 불경기의 그림자가 자주 오랜 시간 그늘을 드리우며 개원가의 중견 선생님들도 생활고 걱정을 하는 것을 많이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전문의 제도는 어떻습니까? 전문의 제도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치과대학생이 되었던 제가 오랜 시간이 흘러 중년의 교수가 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여전히 시끌벅적하고 해결할 사안이 많은 이슈로 남아 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하여 이 사회에서 인정 받고 때로는 존경 받는 직업인으로 남고자 하는 우리들의 열망이 도대체 어느 정도나 이루어진 것일까? 이 시점에서 다시 자문을 하여 봅니다.
불행히도 제가 깨닫고 있는 사실은, 최근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야 우리 나라의 전근대적인 방역 체계와 비합리적인 의료 체계를 개선하려는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듯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는 큰 변화의 과정에 놓여있는 과도기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다음 세대의 우리 자녀들은 방역 체계가 더 좋아진 의료 환경에 살 것이고, 치과전문의 제도는 조금 더 효율적으로 정착되고 개원가의 치료 수가는 의료의 질과 가격의 상관 관계를 통하여 지금보다는 더 안정적으로 정착이 될 것이란 바람을 가져 봅니다.

누구나 태어나며 한 사회나 집단 안에서 과도기를 겪고 싶어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의미 있는 시간일 것이고 우리 각자에게는 한번밖에 없는 생의 귀한 시간들인 것은 자명합니다. 또한 과도기 속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한 것은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지혜일 것입니다. 스스로와 서로를 위로해야 하는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직업인의 한 사람으로 작은 소망을 담아 우리 모두에게 사랑과 격려의 편지를 보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호  성균관대 의과대학 삼성서울병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