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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톤 트럭타고 40개 투어 코스 아프리카를 누비다

세계 33개국 430일간의 여행길...행복한 시간여행을 찾아서 ⑤트럭으로 달린 아프리카 남부∙끝


■글 싣는 순서
1 세상의 끝 파타고니아
2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3 시간이 멈춘 나라 쿠바
4 세상에 없는 풍경 소금사막 우유니
5 트럭으로 달린 아프리카 남부

3주간 케이프타운을 시작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까지
세상을 다 얻은 기쁨으로~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 우리 부부가 선택한 방법은 ‘트럭킹’이었다. 트럭킹 투어란 오프로드 여행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8톤 트럭을 타고 아프리카 주요 관광지를 순회하는 프로그램이다.

트럭에는 캠핑이 가능하도록 각종 안전장비와 텐트 그리고 요리를 할 수 있는 가스 스토브,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냉장실도 갖추고 있다.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를 서비스하는 여러 개의 업체 가운데 원조 격인 ‘노매드’는 40개의 투어 코스를 운영하며 지금 이 시각에도 40대의 트럭이 각자의 정해진 코스에 맞추어 아프리카 이곳저곳을 달리고 있다.

우리가 탔던 트럭은 아홉 개 국적으로 이루어진 스물네 명의 관광객을 가득 채우고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을 시작해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폭포까지 5,614km를 약 3주간 알차게 달렸다.

케이프타운에서 출발한 트럭이 국경을 넘어 나미비아 땅으로 접어들었을 때부터 동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를 처음 맞아 준 것은 열 두 마리 기린 가족. 그리고 뒤이어 뿔이 긴 오릭스와 달리기 선수 스프링복스가 나타났다.

자유 속에 살아가는 동물들을 보니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많은 동물을 동물원에서 보아왔는데 마치 처음 그것들을 보는 것처럼 머릿속이 찌릿한 기분이다. 동물원이 아닌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그들을 바라보는 당연한 상황이 트럭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흥분으로 다가왔다. 모두가 아이들처럼 놀라워했다. 마치 완벽한 자유 탈규제의 표상에 환호하는 것처럼.

나미비아의 하이라이트는 2013년 CNN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풍경으로 선정한 소수스블레이(Sossusvlei) 지역의 사막 투어였다. 세스리엠(Sesriem)에서 소수스블레이까지 뻗은 66km의 사막길 가운데 45km 떨어져 있어서 명명된 듄45(Dune 45)는 비교적 접근하기 쉬워 일출을 보는 명소가 되었다. 5백만 년이 쌓였다는 곱디고운 모래 언덕 위를 걸어 본다.

그리고 아내와 80m 사구의 꼭대기에 앉아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기다린다. 떠오르는 해와 사막이 만들어 낸 모습도 장관이지만 자연으로 꽉 찬 그곳에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감정들이 사라지고 평안함이 가득해지는 경험이 더 값지다. 세상에선 한 번 오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게 두려움이지만 이 사막에선 오르는 일도 그 정상에서 머문 시간도 그리고 내려오는 순간에도 모두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멸종 위기에 처한 대형 포유류의 보금자리인 보츠와나 북서부의 미지의 습지 오카방고 델타(Okavango Delta)로 떠나는 날 텐트 바닥에서 전갈이 나왔다. 아내가 잠들기 전 바닥에서 틱틱하는 느낌이 들어 손바닥으로 몇 번 가격 했는데 전갈은 그 공격에서 살아남았고 텐트를 접을 때 잔뜩 화가 난 모습으로 나타냈다.

아내는 겁이 많아서 밤에 고양이를 보고도 축지법으로 도망을 하는 여잔데 전갈이 나왔다며 나에게 침착하게 이야기해주는 모습이 전갈이 나온 사실보다 내겐 더 놀라운 일이었다. 우리는 사방이 뻥 뚫린 트럭으로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델타의 언저리 어디쯤 내려졌다. 트럭을 타고 가면서 길을 지나거나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거나 물건을 파는 상인들에게 손을 흔들었는데 그들은 느릿하게 손을 들어 웃으며 답변해 주었다. 그 일이 너무 신나서 트럭에 앉아 달리는 내내 난 손을 내리지 못했다.

낯선 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그들을 보면서 아마 트럭에 앉아 손을 흔들었던 다른 친구들의 마음속엔 각자 살고 있는 도시가 떠올랐는지 모른다. 나도 362 버스를 타고 앉아 퇴근하는 이들에게 손을 흔드는 상상을 했으니까.

우리는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모꼬로라고 하는 좁고 낮은 배에 두 명씩 올랐다. 배를 조종하는 사람이 긴 막대를 물속 바닥까지 넣어 배를 밀어내면 모꼬로는 마치 물에 잠길 듯 말 듯 아슬히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 배를 조종하는 사람의 이름은 므가니였고 그 이름의 뜻은 ‘Wake up’이다. 연꽃 가득한 물길 사이로 머리만 내어놓은 하마들을 지날 때는 모두가 긴장해야 했다. 하마들은 영역을 침범하는 것들에 자비를 베풀지 않기 때문이다.

모꼬로를 모는 현지인들은 하마와 최대한 멀리 떨어져 배를 몰아댔다. 한 시간을 미끄러진 배는 이내 캠핑 사이트에 도착했다. 캠핑장 근처로 코끼리 네 마리가 나타났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다음 날 새벽엔 얼룩말들이 캠핑장 주변에 나타나기도 했다. 낮에는 오카방고 델타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동물들을 보고 해 질 녘엔 해넘이를 보러 나간다. 밤에는 현지인들과 함께 노래하고 그들의 춤을 본다.

문명이라곤 텐트밖에 없는 이곳에선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그래서 2박 3일 동안 친구들에게 한국의 369게임과 눈치 게임을 가르쳐 놀았다. 외국인 친구들과 “삼육구 삼육구”를 외치며 등짝에 인디언밥을 때려 대던 날의 추억은 덤이다.

텐트에서 생활하느라 손의 먼지가 씻길 날이 없었던 21일간의 남부 아프리카 트럭 투어가 끝이 났을 때 여느 때처럼 남은 건 사람과 사진이다. 스물네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아프리카 여행을 결정하고 9개 나라 각기 다른 곳에서부터 같은 곳, 같은 시기에 모여 함께 여행하게 된 인연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먼지 구덩이 트럭 안에서 마치 수학여행 가는 고등학생들처럼 웃었던 친구들은 다른 어느 여행지에서 쌓은 인연과 비교할 수 없이 가까워졌다. 헤어지던 날에는 굿바이라고 말하는 게 너무도 힘겨울 정도로.

 아프리카 남부 트럭킹 여행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난생처음’이었다. 아침저녁으로 텐트를 치고 접는 일이, 그 텐트 주변에 다니는 야생 동물과 마주하는 일이, 아무런 생각 없이 사막을 달리며 웃는 일이, 이렇게 많고 다양한 외국인들과 함께 지내는 날들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강에서 동네 강아지와 수영하는 일이, 사막 언덕에 앉아 일출을 보는 일이 나이가 무색하게 너무나 긴 ‘난생처음’ 리스트.

함께 여행한 네덜란드에서 온 빌 아주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호진. 세상엔 참 아름다운 곳이 많지? 하지만 그건 네 눈으로 봐야 아름다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