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취지의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한다.”
2016년 7월 21일 오후 2시 30분 경 대법원 대법정에서 울려 퍼진 이 한 마디에 곳곳에서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최남섭 협회장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소회를 밝힐 만큼 불리한 여건이었지만, 결국 ‘정의’가 ‘확률’을 이겼다.
한 달 여 뒤인 8월 29일 치과의사 레이저 시술 관련 판결에서도 대법원은 다시 한 번 치과계의 손을 들어줬다.
치과의사가 안면 미용 술식에 대한 전문성과 적법성을 명확한 형태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판결들의 의미는 컸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들은 치과의사 개인의 분쟁을 넘어 안면 진료 전반의 ‘패러다임’을 온전히 지켜낸 공방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치과의사 진료 영역의 정당성과 그 이상의 전문성을 일반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는 것도 큰 성과로 꼽힌다.
치과계가 ‘미래의 먹거리’를 명확한 형태로 지켜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진료 가치를 창출하는 동력이 됐다는 현장의 평가 역시 되새겨 볼만한 대목이다.
# 치협·학회·회원 ‘삼위일체’ 대표적 성과
특히 해당 판결들은 치협 집행부와 학계, 그리고 일선 회원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이뤄낸 회무 성과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치협의 행정력, 분과학회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성, 일선 회원들의 관심과 성원이 ‘삼위일체’가 돼 얻는 결과이자 동시에 가장 이상적인 ‘승리공식’이었다는 분석이다.
치협은 지난해 3월 대법원이 보톡스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자 곧 바로 치협 이사진과 분과학회 관계자들로 구성된 ‘치과 진료영역 수호를 위한 범치과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구성해 치과계 내부 역량 결집에 나섰다.
실제로 5월 19일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에서 이 같은 ‘집단 지성’의 조합은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비대위 관계자들이 밤을 새워 찾은 자료와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확립한 반박논리는 공개변론을 기점으로 치과계에 유리한 포석이 전개되는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선 회원들의 지지와 성원도 놀라웠다. 상황을 접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낸 십시일반의 진료영역 수호 성금은 단시일 내에 1억에 육박하며, 의과계와 ‘일합’을 겨루는 치협 집행부 리더십에 큰 힘을 실었다.
# 후배 치과의사들의 미래 위한 ‘유산’
치협 집행부는 두 차례의 결정적 승리 이후에도 축배를 들기보다는 발 빠른 후속 조치를 통해 해당 판결의 의미를 온전하게 가져오는데 주력했다.
우선 보톡스 소송에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구성됐던 비대위를 발전적 해체하고 앞으로 진행될 타 의료 단체와의 영역다툼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집행부 내에 ‘치과 진료영역 특별위원회’를 구성, 상설 가동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와 함께 ‘국민 건강’이라는 제일의 목표 아래 오·남용 방지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와 자정작용을 전제로 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고민해 나가면서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 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이 같은 일련의 노력들과 흔적은 지난해 12월 치협이 발간한 500여 페이지 분량의 백서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년 만에 가장 무더웠던 지난해 여름. 수많은 논쟁거리를 양산했던 보톡스, 레이저 소송에서 살아남은 치과계의 논리는 결국 이 시대의 치과의사들이 후배 치과의사들의 미래를 위해 남겨놓은 소중한 ‘유산’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