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달 두바이에서 개최되었던 Pan Arab 근관치료학회에 참석하였다가 실로 오랜만에 전통적인 강의를 들었다. 전통적 주제이지만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하면서 우리나라의 보험 정책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강의 주제는 아말감이었다. 아말감을 국제 학회에서 다룬다고? 아말감을 지금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고, 최근 미나마타협약 총회에서 다루어진 내용 때문에 그와 관련된 주제발표를 듣게 되었다. 최근 국내 학회에서도 치협을 통한 의견 조회를 받아보기도 하였지만 이제 아말감은 역사의 뒤로 완전히 넘어간 역사 속의 재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2022년 3월 제4차 미나마타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치과용 아말감의 절대적인 사용금지 규정을 명확히 한 듯하다. 그 주 내용은 두 가지이다. 치과의사가 대량 형태의 수은을 사용하는데 예외를 두거나 허용하지 않는다. 환자의 치료에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15세 미만의 환자와 임산부 및 모유 수유 여성의 치과 치료에 아말감 사용에 예외를 두거나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명문 규정 하에서는 어떤 치과의사도 아말감의 선택을 주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5년 후 신경계 질환이 생겼을 때, 과거 아말감 치료에 대한
지난 10월 3일 미국에서는 천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폭우와 허리케인 IAN으로 인해 큰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달러 찍어내는 나라니 어떻게든 해결해주겠지 싶기는 하나 전세계 누구라도 다치기 전이나 피해를 입기 전이 더 낫다고 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8월과 9월에는 예상치못한(예상을 초월한) 폭우로 침수가 되고 안타까운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있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가 어려운 백년만의 큰 비로 천재지변(天災地變) 수재(水災)이었지만, 인재(人災)라고도 말할수 있는 부분도 있다. 최근 기상이변이 잦고 기습적인 게릴라성 호우도 잦은 것을 고려하면, 이번에 겪은 정도의 수재도 ‘사람의 힘’으로 예방을 위해 미리 무엇인가 해두었어야 하는 부분이 조금은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보인다. 배수 시설 등을 포함한 치수(治水)사업을 미리미리 준비하고 확대하여 백년에 한번일지라도 생길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대비하는 것이 바로 '보험'과 유사한 사업이다. 그러고 보니 이는 사람의 힘이 아닌 ‘돈의 힘’이고 그 돈을 쓰는 결정을 사람(정치인이나 행정가)이 하는 것이다. 백년에 한번 있을 일이라면 앞으로 99년은 무탈할터이니, 우리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세금도 아니지만
흔히 한국을 소개할 때 한국의 (전통)음식으로 자주 등장하는 것 중의 하나가 비빔밥이다. 글로벌하게는 불고기와 함께 “밥 중에 제일 유명한 밥”으로 생각된다. 김밥도 있지만 일본 스시 혹은 마끼 등의 유사품이 많이 알려져 있어 비빔밥이 한국의 고유성과 함께 그 중 최고인 듯하다. 필자가 음식 평론가나 맛탐험가가 아니니 구체적이지도 않고 전문성을 포함하지도 않지만, 이런 비빔밥의 레시피와 형식은 한국인의 전통적 관습이나 국민성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본다. 지역마다 환경마다 조금씩 다른 재료를 비빔밥에 사용하기도 하고, 실제로는 딱히 정해진 재료없이 당시에 갖고 있는 적절한 재료들을 사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옛날 궁중에서도 먹은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평민들이 남은 밥과 반찬을 한번에 처리하기 위한 목적이 비빔밥의 근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여러가지 나물들과 고명을 참기름 고추장 양념과 함께 비벼, 재료들의 특성이 조화되면서 맛을 더 좋게 느끼게 한다는 다소 사전적인 설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비빔밥의 장점은 편의성과 효율성이 아닐까. TMI일수도 있지만, 오래전 필자가 재수생이던 시절, 학원 문앞의 분식집에서 일년내내 점심을 비빔밥으로
필자는 먼 중동 국가의 요르단 치과대학 학생들의 졸업 평가 구술 시험을 위해 출장 중이다. 10점 중 5점 미만은 탈락으로 평가가 된다. 이틀 간 진행한 76명의 피평가자 중 3-4명은 5점이 안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몇몇 학생들은 다른 항목의 평가가 좋으면 졸업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졸업을 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정수 단위의 평가기준표가 있었지만 필자는 0.5점 단위로 4.5점도 주고 3.5점도 준 것으로 기억한다. 비록 낮은 점수를 주었지만 다른 평가 결과와 함께 산수가 잘 진행되어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학생도 있었고, 산수에 의해 운좋게 졸업이 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학생도 한명은 기억이 난다. 졸업 평가 점수는 말하기에는 무게감이 다르지만, 수학이라는 단어보다는 산수가 더 정겹다. 굳이 정겹기까지나 할게 있겠냐만 입시공부도 아니고 난이도가 높지도 않은 산수가 참 편안하게 느껴진다. 산수(算數)는 수학(數學)과 달리 학문이라기보다는 일상의 숫자 도구로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산수에도 어쩌면 불편할 수 있는 사회적 약속이 숨어있다. 소수점 이하 올림 반올림 내림 등 인위적으로 간편하게 만드는 수를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오랜만에 장거리 출장길에 올랐다. 이른 아침 7시부터 집을 나선다. 인천 내항기가 아직 재개통되지 않아 김포로 먼저 간다. 김해공항에서 김포행으로 오랜만에 짐을 부쳤더니 수하물이 탑재되었다는 알림이 폰으로 온다. 원래부터 있던 서비스인가 싶기도한데 사소하지만 신기함을 느끼게 된다. 워낙 오랜만에 수하물을 보내면서 국적항공사의 ‘배려’에 고마움까지 든다. 사람도 아닌 프로그램의 ‘배려’에 감동까지 할일인가 싶기도하다. 이륙 전에 잠들고 착륙 ‘쿵’에 눈뜬 오랜만의 비행은 기억이 없다. 김포에서 인천공항까지 공항철도를 타고 큰 케리어를 모셔가는 것도 일이다. 평소엔 그냥그냥 억지스럽게 투덜거리며 구르던 바퀴들이 어찌나 잘도 도는지 정차역마다 내 손길을 필요로 한다. 김포에서 인천까지 스루보딩이 되었던 것이 코로나로 서비스가 없어지니 그땐 당연하던 것이 고객 ’배려’ 서비스였구나 싶다. 인천공항에는 무인화시스템의 급속 증가에 따라 체크인 키오스크와 함께 ‘식당로봇의 사촌’들이 제법 돌아다니고 있다. 내 스타일이 아니라 딱히 말을 걸어보고싶지는 않다. 체크인 키오스크 앞에서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권을 스켄하는데 ‘배려’심 그득한 항공사 직원이 ‘시력약한 흰머리’를
방송에서 오징어게임 패러디를 하여 설탕과자 오려내기, 뽑기로 ‘선택 2022’의 선거 참여 홍보를 하고 있다. 물론 투표 표기마크가 부러진 연예인들도 설탕과자 뽑기보다는 더 신중하게 투표를 할 것이라 기대한다. 전 국민이 하나의 선택을 앞에 두고 어쩌면 만(萬)가지 생각과 고민을 하는 시기이고, 이 글이 게재되어 있을 즈음에는 그 결과도 알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선택은 자주 있는 선택 기회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아주 잦게, 특히 치과인으로서는 실제 진료과정에서 매 초마다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판단을 하게 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자주 듣는 말이 있고, 영어 알파벳 B-C-D 순서대로 Birth(출생)과 Death(죽음) 사이에는 Choice(선택)으로 채워진다는 말이 참으로 그럴듯하다. 어떤 선택은 돌이킬수 있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번복하거나 되돌릴수 없는 비가역적 선택인 경우도 있다. 수 초만에 이루어지는 선택도 있고 수 개월에 걸친 고민으로 이루어지는 선택도 있다. 어떤 선택은 나를 위한 것도 있고 가족을 위한 것도 있고 크게는 조직을 위한 것 그리고 나라를 위한 선택도 있다. 수 초만에 한 선택이 수 개
2021년은 Covid-19에 의해 2020년에 이어 삶의 특별함이 없이 지나간 해가 된 듯하다. 다시 시작한 새해가 2021년인가 싶은 생각이 스쳐가기도 하는 것을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건망증이 잦아진 것으로 자책하기 보다는 코로나때문이려니 핑계를 댈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아주 쉽고 익숙한 말이 있다. 시간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시간을 특별함이 없이 지나간 세월이 단순히 아쉽기도 하였겠지만, 특별함 없는 범상(凡常)이 어떤이에게는 다행이거나 복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슬픔과 아픔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지구촌의 멈춘듯 멈추지 않은 병적 시간이었다. 아직은 종식이라는 단어를 쓸수 없는 상황이지만 한 해가 끝나고 새해를 맞이하는 상황에 희망적인 의미로 “시간이었다” 과거형으로 서술하였다. 만 2년의 Pandemic을 겪으며 새로운 식당과 병원의 출입 방법, 새로운 수업 방식과 평가방법, 새로운 회의와 소통의 방법 등 수많은 새로움을 익히는 시간을 지내고 있다. 새로움이 익숙해져가는 즈음, 눈과 입을 통해 의미를 담아 대화하던 많은 순간들은 키오스크로 대체가 되어 손가락을 사용하는 일이 더 잦아
양극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양단은 너무나도 복잡한 연결고리로 얽히어 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거나 최소한은 덜 하였을 법한 말이나 상황들이 지금은 양극화의 영향으로 틀리다/맞다의 수준을 넘어 내 편인가-적인가로 나누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와 함께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유기적이고 여유로우면 그저 좋을 공동체 사회가 적과의 동침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곳이 되고 있다. 시장 자본주의가 어쩔수 없이 이끄는 경쟁 사회 및 특히 한국에서의 일등주의 교육문화가 이를 더 심화시키는 것으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산율 저하와 함께 가족내 혹은 친족내 일순위자로 성장해온 배경이 또다른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정치적인 내용이 아님을 전제로 예를 든다면, 세대간의 갈등이나 정치이념의 좌우 혹은 보수진보진영의 양극화도 이런 내용의 일부가 된다. 세대간의 갈등 속에는 다시 젠더갈등이 존재하고, 젠더 갈등과는 별도로 찬스를 가진자와 그렇지 않은자 간의 갈등 혹은 부모찬스인가 아닌가의 문제들이 서로간의 불신과 함께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양극화는 교육기회의 불균형이나 사회구조의 불균형 소득분배 시스템의 불균형 등도 원인이
최근에 필자는 환자의 편의를 위해 자필 작성한 소견서와 함께 개원가 병원으로 진료를 의뢰하였다. 의뢰받은 원장님께서 ‘교수님도 참 악필’이라는 농담인사를 전해오셨다. 과거에는 천재는 악필이라는 말로 위로하고 지나갔지만, 악필은 교정해야한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컴퓨터를 사용하고 엄지족 검지족으로 살아가는 이 디지털 시대에는 악필이 더악필로 변해가는 것이 현실이다. 손글씨에서만이 아니라 디지털 문명은 다양한 생활역역에서 폐해 아닌 폐해를 가져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디지털의 장점으로 빠르고 정확하며 반복/재현 가능성이 있고, 기록의 집적이 유리한 장점 등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한 4차 산업혁명을 추구하고 있고, 우리는 실생활에서 반자동 운전 차량이나 점점 똑똑해지는 로봇 청소기를 경험하고 있다. 컴퓨터 사용의 기초가 되는 디지털 언어 0과 1을 이용한 이분법적인 디지털 기술은 숫자로 표기되는 디지털 시계(과거에는 전자시계라 불렀다)와 전자계산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디지털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은 스포츠의 경우 백분의 1초 단위의 순간 순간까지도 기록하기는 하지만, 초단위 그 사이에 실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
세상살이 모든 것에 정답이 없는 계륵(鷄肋)같은 상황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치과의료계의 수가와 관련한 현실은 오랜 기간 역사와 함께 꼬인 결과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의료인 개인의 가치관과 국민 혹은 관련 단체/기구와의 입장차, 심지어 정치인들의 이익추구에 의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다수의 치과의사들이 근관치료 보험수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자존심을 지키며 의료인으로서 본분을 다해 진료에 임하기는 하지만, 치과쟁이, 돈벌이를 추가하는 비양심 의료인의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이미 고착화된 상황도 부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마음 불편한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자존심을 지키며 진료하시는 많은 분들이 우리 주변에 계신다. 사회주의가 아닌 시장/자본주의에서 보건의료업 사업자등록증을 갖고 대출과 고용을 바탕으로 진료를 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진료봉사활동과 영업활동의 괴리는 당연한 상황이다. 물론 영업활동이 당연하다. 진료행위의 차이나 진료수혜인원의 차이에 따라 영업활동의 수익의 차이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배경에서 진료 행위의 가치보다 수익성의 가치를 높게 갖는 순간 환자의 치아는 구강 외로 배출될 위험성이 높아진다. 이런 위험성을 통제하는 것이
4차 산업시대와 시대적/환경적 변화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변화에 의해 따라 직업군의 재편성과 교육의 내용 혹은 방식 그리고 그 중요성이나 가치 기준 또한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과거의 변화와 비교하여 상당히 급변하고 있으며 때로는 교육의 기본 형태를 바꾸고 있고 이는 코로나 판데믹 상황이나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결과만은 아니다. ‘라떼’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조그만 생활방식처럼 요구되고 있지만 이런 변화의 종단면을 보기 위해 과거를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다. 과거에는 정규 학습기관인 학교에 들어가서야 영어를 배웠지만, 지금은 미취학 아동들이 영어를 배우고 초등학교 학생들이 “코딩”의 기초를 접하는 그런 시대적 변화와 함께 하고 있다. 동영상은 물론 온라인에 존재하는 무수한 교재를 사용할 수 있고 홈스쿨링을 비롯한 교육 장소의 파괴까지 기현상이 아닌 사회 전반에 펼쳐져 있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아야하는 상황이다. 선생님에서 선생이라는 의미는 먼저 생을 살아온 사람이 그 경험과 학습을 바탕으로 후에 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선생이라 불리우고 때로는(?)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최근 자동차의 미래와 관련하여 사회 경제적으로 그리고 환경요소와 함께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가 국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단순한 내연기관을 갖춘 기계장치로서 바퀴달린 이동 수단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그 의미는 종합 과학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4차 산업시대에 접어들며 정보통신과 빅데이터는 물론 인공지능을 아우르는 현대과학의 총체로 인지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필자는 오늘 자율주행 자동차나 전기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하기보다는, 차량의 구조와 기능에 비유하여 사회의 각 단위 구조에 속한 우리들의 역할과 그 조화로움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자율주행자동차나 전기자동차가 4차 산업시대의 현대 과학의 산물이지만, 그 구조 하나하나를 다시 들여다보면 과거 내연기관이 장착되기 전부터 수레나 마차에서도 적용되었던 바퀴 구조처럼 여전히 유지되는 부분도 있고, 말을 조련하여 방향을 간접적으로 조정하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운전자의 의지대로 직접 조향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구동장치와 조향장치 등은 탈것에 있어서 필수적이면서도 가장 기본 개념적 요소로 보인다. 흔히 핸들이라고 부르는 차량의 조향장치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차량을 유도하는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