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학생의 날은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지 77년이 되는 해로 휴전 협정 체결이 된 해에 기념일로 선포해 기념식을 하기 시작했다가 유신 다음해인 73년부터 학생의 날이 없어졌으나 전두환 대통령 시절인 84년 다시 제정 공포되고 금년부터는 그 명칭이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바뀌게 됐다. 광주학생운동이후에도 자유당 정권을 타도한 4·19 민주화 혁명, 박정희 시해 사건의 원인이 된 부마항쟁, 전두환 군사독재에 대항한 광주민주화 운동에 이어 군사정권의 종말을 고하는 6·29 선언을 이끌어낸 6월 항쟁 등 기성인들이 잘못한 것을 학생들이 바로 잡아 주었던 일들이 너무 많아 학생의 날을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바꾼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 하겠다.그러나 요즈음은 학생운동의 부작용으로 전 국민이 시위 중독증에 시달리고 있어 학생운동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학생운동은 처음에는 항상 자그마하게 시작되는 비상학생총회였다. 이 비상학생총회야 말로 관계기관에서 감시를 하고 있으니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었는데 이를 주도 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여기에 대다수 학생들이 많이 호응하고 일반인이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근심에 먹히고, 죽었을 때는 벌레에 먹힌다"는 탈무드의 아야기가 있습니다. 이처럼 근심 걱정이란 마귀는 그림자 같이 우리인생을 떠나지 않고 곁에 붙어서 우리의 행복을 좀 먹습니다. 노벨 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커넬’박사는 “근심과 싸우는 법을 모르는 사업가는 일찍 죽는다"라고 충고한 바 있습니다. 근심 걱정의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더랭크라는 사업가는 “수요 염려 상자"라고 재미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왕 근심을 할 바엔 매일 하지 말고 하루에 몰아서 하자고 근심의 날을 수요일로 정해서 월요일에 무슨 근심거리가 생기면 근심카드를 작성해서 수요염려 상자에 넣었다가 수요일에 열어보고 근심 메모를 하나씩 읽어보면 대부분이 쓸데없는 걱정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나타나지 않을 것들이고,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입니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고, 걱정의 4%는 우리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대한 것입니다. 진짜 걱정할 내용은 4%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어니 젤린스키의 분석입니다. 미국의 설교가 헨리비처는 사람이 한 가지 일을 할 때도 세가지 고생을 한다
올해 한글날은 오백예순 돌로 국경일에서 제외 된지 15년 만에 다시 지정 돼 기념행사를 치렀다. 치과의사들은 구강의 3대 기능인 저작, 심미, 발음에 대해 수없이 강조 하지만 오로지 저작기능이나 심미회복에 대해는 관심을 가질 뿐 발음에 대해서는 너무나 소홀한 것 같다. 저작, 심미에 대한 이상은 보철물을 장착하면서 지적받지만 발음 이상은 환자가 적응을 잘하기도 하고 치과의사나 환자 모두가 어느 발음이 이상한지를 구별하는 능력이 없어 지적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발음 연구의 기초는 한글의 기원을 이해하는데 있는데 27가지나 되는 학설 중에서 가장 유력한 학설인 발음기관 본뜸 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야 한다. 목구멍소리 ‘o’은 목구멍 모양을 본뜨고, 연구개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는 모습을, 잇소리 ‘ㅅ’은 한자의 치(齒)에서 보듯 치아 모양을, 혓소리 ‘ㄴ’은 혀가 위 잇몸에 닿는 꼴을 본뜨고, 입술소리 ‘ㅁ’은 입술이 다물려 있는 모습을 본뜬 것이다. ‘ㅋ’은 ‘ㄱ’에 비해 목구멍이 울리면서 소리가 좀 거세게 나므로 한 획을 더하고 ‘o’에서 ‘ㅎ’으로 됨이 그 소리의 다름에 따라 한 획 또는 한 점씩을 더한 이치가 모두 다 같으며 반
바닷물이 썩지 않는 것은 3%의 염분 때문이라고 합니다. 미량의 소금기가 없다면 부패하고 썩은 바다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번 여름 우리사회는 도박열풍이 불어서 ‘바다이야기’로 떠들썩하더니 가을에는 ‘핵실험 이야기’로 온 세상이 뒤숭숭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신 차리고 근신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러시아의 작가 ‘토스토에프스키’는 “모든 일에 대해서 모든 이는 다 책임이 있다"는 말처럼 오늘의 사태에 대해서 믿는 우리들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 땅에 크리스찬이 25%가 넘는다고 하는데 왜 우리 사회가 이토록 거짓되고 부패가 만연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믿는 무리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마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소금과 빛의 특징은 ‘자기희생’에 있습니다. 소금은 녹아야 맛을 내고 빛은 타야 밝음을 드러냅니다. 만일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리워 사람에 밟힐 뿐이듯이… 세상을 향해 바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교회와 성도들도 비슷한 운명에 처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소금은 음식에 맛을 내기도 하지만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입
국사에 관한 지식이라고는 대학 입시 준비 하느라 얻은 것 밖에 없는 나도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자주 국방을 할 수 없는 나라임을 알 수 있는데 참여 정부 들어와서 미군으로 부터 전시 작전권을 가져오는 것이 우리 민족의 독립성과 자주 국방의 기틀을 마련하는 길이라고 하면서 서둘러 환수 하려는 것은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 무제가 설치했던 한사군은 한나라가 멸망함으로써 없어 졌고, 고려를 100년간이나 괴롭혔던 몽고가 형제간의 다툼으로 멸망함으로써 고려가 자유로워 졌으며, 임진왜란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어서 끝났고, 병자호란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한족의 명나라를 치기 전에 후환을 없애기 위해 우리나라를 먼저 쳐서 삼전도에서 항복을 받고 물러갔으며, 한일 합방은 대동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함으로써 끝나게 됐다.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고 미군이 남한에 진주한 다음 벌어진 6·25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한 전쟁이라고 보기 보다는 초기에는 미군과 소련군이 싸우고 나중에는 미군과 중공군이 싸우게 된 전쟁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며 힘의 균형이 팽팽해 할 수 없이 휴전이라는 무승부로 끝낸 전쟁이다. 즉 우리나라 힘으로 외세를 물리친
약력 장로회 신학대학 신대원 졸업장로회 신학대학 대학원 졸업크리스찬 치유상담 연구원 수학한국기독실업인회(CBMC)양재지회 주강사 역임현재 CBMC 안산지회 및 호수지회 주강사로 반월 및 시화공단의 기업인들과 전문경영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요, 모든 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 이 말은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가 한 말입니다.인간에게는 세종류의 싸움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첫째는 자연과의 싸움입니다. 홍수, 가뭄, 지진 같은 것과도 싸워야 하고 또 추위나 더위에서 오는 많은 질병…. 이런 것들과 우리는 싸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싸움에서 이기면 건강하고 지면 죽는것 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과 인간과의 싸움입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 속에서 이웃과의 관계가 협조자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싸움’ 이라는 긴장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상점에 가서 조그마한 물건 하나를 사면서도 우리는 신경을 씁니다. “어떻게 하면 속지 않고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을까?” 또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을까?”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지배하
유신 독재를 하려는 목적의 일환으로 국민정신교육을 염두에 두었는데, 대학에 입학하자 그 방법의 하나인 국민윤리라는 과목이 새로 생겼으며 이 과목 학점을 이수하지 못해 낙제를 하게 됐고, 본과에 올라가서는 과대표 시절 유신반대 시위를 하는 동료들을 도와주었다고 졸업할 때 인턴에도 못남을 뻔한 일이 있었으며, 결혼식을 11월 3일로 잡아 놓고 있었는데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면서 국장일로 잡혀 날짜를 이틀 연기하고, 식장을 바꾸어 겨우 결혼식을 올려서 인지 파란 많은 결혼 후 생활을 하게 돼 정치적인 문제 외에도 개인적인 문제로 더욱 박대통령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북한 핵실험 발표 이후 모든 TV방송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 속보를 전하는 가운데 행해진 최고 지도자의 기자 회견에서 온 국민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싱글싱글 웃으면서 나와 북한 핵실험과 같은 작은 문제를 가지고 경제가 위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그동안 “막 가자는 거냐?”, “대통령 못해먹겠다”, “성질 더러워도 믿어 달라?”, “은퇴 후 고향에 가서 살겠다.” “대통령 마치면 열린우리당 고문을 하고 싶다.”
오래전 하버드대학의 총장을 지내신 ‘나단 푸시’는 “현대인이 오늘날 찾고 있는 것이 네 가지 있는데 첫째는 흔들 수 있는 깃발이요, 둘째는 부를 수 있는 노래이며, 셋째는 목숨을 걸 수 있는 신조, 그리고 넷째는 따를 수 있는 지도자”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흔들 수 있는 깃발, 즉 바라 볼 수 있는 목표가 없다는 것과 정말 마음을 다해서 부를 수 있는 영혼의 노래가 없다는 것과 목숨을 걸고 신뢰해 따를 수 있는 신조(信條)가 없다는 것. 그리고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을 현대의 비극이라고 진단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간절히, 리더 곧 참된 지도자를 바라고 있습니다. “영웅을 아쉬워하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다.” 벨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갈릴레오’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영웅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제대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지도자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 앞에 등장한, 이른바 지도자들에 대한 실망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반세기 동안 프랑스를 이끌어 온 정치지도자 클레망소에게 어느 신문기자가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만나 본 정치가 가
수년전 ‘치과가 종합병원’이라는 책이 발간됐는데 기사로만 접한 나로서는 치과의 진료 범위가 전신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책이라 여기고 치과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겠거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치료 결과에 대한 소송이 많아져 법원에서 의뢰한 사건에 대한 소견서를 작성 하면서 환자들로부터 들은 것은 바로 이러한 책들로부터 정보를 얻게 됐다고 하는 것이었다. 고소를 한 환자들의 주장이 너무 터무니없어서 그 책을 들여다보니 두통, 허리 통증, 만성 피로등과 같은 애매한 질환은 물론 고혈압, 청신경마비, 중이염, 눈 질환과 같은 얼굴 부위에 나타나는 증상에다가 심지어 오줌싸개, 불임, 생리통에다가 키가 작은 것 까지 구강질환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불임, 생리통, 오줌싸개 등의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치과에 와서 구강내의 문제점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병을 고치고자 한다면 우리 치과계로서는 영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실제로는 치과치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불임, 생리통, 오줌싸개 증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책들에서 제공된 정보를 이용하고 있어서 오히려 더 큰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즈음은 케이블 TV나 지
예전에 사목하던 성당에 사람들이 ‘평화의 미소’라고 부르는 할머니가 계셨다. 그분은 언제나 환하게 웃으신다. 주름진 얼굴에 피어나는 편안하고 그윽한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도 평화롭게 한다. 그래서 그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았다. 그분은 결코 세속적으로 행복한 요소를 갖고 계신 분이 아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키운 아들마저 사고로 잃어버린 아픔을 갖고 계셨다. 경제적으로도 몹시 어렵고 허리는 굽어 걷기도 불편하셨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아주 명랑한 목소리로 “즐겁게 사세요,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라고 늘 말씀하신다. 그분의 마음은 어린이처럼 천진난만하고 맑다. 그러니 항상 즐겁고 얼굴은 인자하시고 환한 미소가 흘러 넘치셨다. 성경에서 “사람의 얼굴은 그 마음에 따라서 좋게도 나쁘게도 변하며 마음이 기쁘면 얼굴이 명랑해진다”(집회 13,25)는 말씀이 있다. 마음의 상태는 바로 얼굴로 나타난다. 기쁜 마음은 얼굴을 빛나게 한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마음을 바르고 맑고 기쁘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 기쁘고 환한 얼굴은 인간관계도 부드럽게 하고 일의 성공에도 보탬이 된다. ‘마음이 맑으면 야훼의 사랑을 받고 말이 부드러우면 임금의 벗이
성서에서 ‘고아와 과부"란 가장 불쌍한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였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고아와 과부"들은 가난이나 질병이나 신체장애, 사회 환경적 이유 등으로 인해 생활 능력이 없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남자에 비해 여자의 신분이 절대적으로 불평등했는데 남편이 없는 과부의 경우에 생활의 어려움이 더 컸을 것이다. 성서에서 ‘과부’는 대부분의 경우에 단순히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여자라는 신분만을 뜻하지 않는다. 성서에서 가르치는 과부는 우선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 남편이나 아들 등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전혀 없는 여자를 가리킨다. 또는 법적 보호자나 후원자가 없는 여자를 일컫기도 했다. 과부는 이스라엘 성서시대의 현실에서 고아와 함께 최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로 규정돼 있다. 그 과부가 억울한 일을 겪었을 때,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는 현실이 유지된다면 그 현실은 이 과부에게 이중의 고난을 지우는 셈이다. 남편이 먼저 죽으면 미망인은 과부의 옷차림을 해야 했다. 과부가 된 여자는 아들이 없으면 고인의 형제와 살 수 있었다. 또는 자신의 친정으로 돌아가거나 나이가 젊고 지참금이 충분하면 재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