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익산 땅은 언제나 엄마 품 같은 미륵산이 언제나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는 곳이다. 미륵산은 제일 높은 곳이 해발 340m밖에 되지 않았지만 넓디넓은 만경평야 북쪽 끝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정상에 올라서면 남녘으론 대장촌 너머 만경강이 은하처럼 감아나가고 좌우로 전주와 군산은 물론 멀리 부안읍내까지도 가물거리며 아기자기하게 한눈에 들어온다.해질녘이면 능금 빛 저녁노을 아래로 아스라한 서해바다가 마치 금가루를 흩날리는 신기루처럼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곤 했다. 하지만 산과 하늘이 만나는 굴곡진 등성이마다 천혜의 위치를 노리고 인간이 쌓아올린 갖가지 송신탑과 중계탑이 잔뜩 흉물스런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껏 미륵산이 화내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사업 때문에 멀리 도시에 나가서 사셨고 우리 형제자매들과 할아버지, 할머니 등 나머지 가족들은 그렇게 미륵산이 지켜보던 시골에서 살았다. 인자하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손자들을 지극히 보살폈다.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동네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웠다. 마치 산신령처럼 길고도 풍성한 허연 수염을 흩날리던 회초리맨
금강산을 들르는 수많은 관광객들 대부분이 삼일포를 둘러본다.그런데 삼일포 물과 전설, 김정숙 여사 사격 이야기는 듣고 보지만 삼일포의 대나무는 그냥 스쳐가고 있다. 조장마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삼일포에는 36년째 자라고 있는 대나무가 있다. 1972년 북측이 잘 살던 때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중국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이 김주석에게 참대나무 72그루를 선물했다. 반은 평양에 심고 반은 삼일포에 심었다. 그런데 평양에 심은 것은 죽고 삼일포에 심은 것은 오늘까지 살고 있다. 이 참대나무는 고성군 온정리 마을 사람들이 빗자루를 만들어 쓴다. 그리고 금강산 호텔은 이것을 이쑤시개로 제공하고 있다. 삼일포에 이르면 버스가 서고 떠나는 곳에도 그 군락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삼일포 오르는 왼쪽 작은 계곡 소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참대나무는 흥미롭다. 이곳의 참대나무는 잘 보이지 않는다.옛 선현들은 집 주위에 심어 방풍과 방한하였고 세도가(勢道家)에서는 방범목적으로 심기도 하였다. 그 모두는 대나무를 풍류와 멋의 하나로 삼았다.
꿈 실고 떠가요 구름처럼 산길을 지나요바위틈 솟은 샘에 흐르는 물소리못 본체 걸어도 꽃들은 피어나지오숲속에 낯익은 새소리 들려오지오 부풀은 내 마음 구름처럼 들길을 떠가요파릇한 들길에 실개천 설레는 소리모른 채 스쳐도 꽃향기 다가서지오덤불속 낯익은 새소리 들려오지오
카오슝 모던 + 타이난 클래식 조화2008~2009년 ‘타이완 여행의 해’무료 관광 유람권·경품 등 다채 해외여행이라고 하면 먼 여행지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한번쯤은 짧은 비행거리, 많은 볼거리로 여행효율성이 높은 곳을 다녀보자. 타이완은 2시간30분의 비행거리, 풍부한 관광인프라가 장점이다. 이에 따라 2-3일의 짧은 일정으로도 중화문화권의 핵심을 무난히 접할 수 있다.타이완 남부지역은 중국본토에서 처음 이민 온 사람들이 정착한 지역이라 문화적인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다. 타이완 경제, 무역의 대표적인 도시인 카오슝(高雄)이 있고,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인 타이난(台南) 이 있어, 현대와 문명의 극명한 대조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올해는 ‘2008~2009년 타이완 여행의 해’를 기념하는 차원에서 타이완 여행객에게는 다양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타이완 교통부 관광국은 카오슝 티켓 소지자에게 오는 3월까지 타이베이 지하철(MRT) 1일권 또는 카오슝 관광유람권(유효기간 12월30일)을 제공한다. 항공티켓을 가지고 타이완관광청 서울사무소를 방문하면 관련 경품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또한 타이완 현지에서도 아이허(愛河)강 크루즈 무료티켓 등 다양
이빨은 짐승들의 치아를 말하고치아는 사람의 이빨을 말하지 어느 부시장이 치과의사 대의원 총회 축사에서<으음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심장이고, 그리고 이빨도 상당히 중요합니다>라고이빨을 깐다면준비가 들 된 축사다고상하다기보다는 편해서아예 좀 더 거칠면 하는 유아틱한 우쭐함에서아니면 강한 전달체계를 원해서쓰는 속어 중에서도이빨은 정말 날카로운 이빨처럼 강하게 쏜다 왜 ‘이’하나로 부족하여사물이 되어 가는 형편과 모양이라는 뜻의‘빨’이 붙는 것일까? 억울해서이다유치와 영구치 딱 2번의 치아를 사람은 갖지만많은 동물은 환치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억울해서 ‘빨’자를 붙였던 것이다사실치아면 어떠하고이빨이면 어떠하랴부지깽이 꽂아도 산다는 봄처럼다 녹여버려, 진하게 녹여버리면 되지그지?단 철에 맞게끔 울 아빠 (6·끝)
<1626호에 이어> 햇빛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오고갔다. 나도 피난 나온 지 꼭 50년만인 2002년 5월 15일에 평양에 갔다. 북한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초청장을 받았다.“한민족복지재단 앞.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경제협력련합회는 경제협력사업을 협의하기 위하여 귀 대표단이 편리한 시기에 공화국을 방문하도록 초청합니다. 련합회는 해당 기관이 공화국 체류기간 모든 편의를 제공하며 신변 안전과 무사귀환을 보장한다는 것을 알리는 바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경제협력련합회. 주체91(2002)년 5월 11일"북경을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평양! 평양! 평양! 울 아빠가 있는 곳! 꿈에서도 가보고 싶은 곳! 울 생모를 울면서 돌아가게 한 곳! 1시간이면 가는 것을 50년이나 기다리게 한 곳! 살아서는 못 가볼 것만 같았던 곳! 마음의 응어리가 가슴에 뭉쳐 꽉 메인 듯하다. 평양에 도착하고 보니 울 아빠, 울 생모, 큰 형님, 큰 누나, 작은 누나, 형수 등 집안 식구 모두가 “에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하고 울부짖는 듯하다.평양 순안공항에 내려 땅을 치며 울고 싶다. 울 아빠가 미워서. 울 아빠의 어리석음이 미워서. 아니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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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신발·가방 꽃바람 넘실보헤미안 무드와 궁합 인기수채화풍 큰 꽃 무늬 대세 지난 주말, 홍콩에 갔다. 이제서야 조금씩 봄이 시작되려는 서울과 달리 그곳은 이미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불편을 느낄 정도의 날씨. 아이리스, 작약, 장미, 히야신스 등 가는 곳곳마다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형형색색으로 활짝 피어있었다. 영국식으로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이라도 방문한 것 같다. 내가 그토록 아름다운 꽃들을 만난 곳은 부지런한 안주인이 가꾼 어느 집의 뜨락도, 정부나 시 소유의 공원도 아닌 백화점 매장이었다. 디자이너들이 봄과 여름을 겨냥해 내놓은 상품으로 빼곡히 들어찬 백화점 숙녀복 매장은 그 자체가 거대한 꽃밭이었다. 조금 예민한 사람이라면 (나지도 않는) 아찔한 꽃 냄새에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을 만큼 화려하기 그지없는 꽃밭! 사실, 한동안 ‘프렌치 시크"의 매력에 경도된 디자이너와 패션계 사람들은 플라워 프린트를 잊고 지냈다. ‘블랙’만이 스타일을 아는 여자들의 증표라고 여기던 그들 사이에서 요란하고 화려한 꽃무늬는 촌스러움의 상징, 혹은 안목 없는 자들의 피난처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 플라워 프린트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그 복귀는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서 나는 참으로 짓궂었습니다짝지의 필통에 지렁이 한 마리 넣어두기도 하고장난 삼아 연필 한 자루 훔치기도 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짝지의 연필을 훔쳐서 내 필통에 넣고가방을 닫고 있었을 때나의 임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나는 무심결에 내 가방을 감추며 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장난 삼아 했던 나의 일이 임의 얼굴을 보는순간 가슴이 왜 그리도 뛰었을까요?나는 임이 묻는다면 훔쳤다고 얘기를 하려고했습니다 그런데 임은 나의 머리만 쓰다듬고단지 미소지으며 묻지 않았습니다그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묻지 않았습니다나흘째 되는 날 나는 내 짝지가 없는 틈을 타몰래 짝지의 필통을 열었습니다나흘 전 짝지의 연필을 훔칠 때보다더 떨리는 손으로 짝지의 연필과 내 연필한 자루를 몰래 넣어 주었습니다그날 따라 임은 또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참으로 시원했습니다원두막에서 낮잠을 자도이보다 더 시원할 수야 있겠습니까
<1624호에 이어>병원이 제법 잘 됐다. 나도 장가를 가게 됐다. 난 울 아빠처럼 여러 부인을 두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때도 아니다. 주위에선 명문대학교를 나온 의사이니 집안도 좋고 예쁜 여자를 맞아야 한다고 했으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 처지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집은 지지리 못 살고, 아빠도 없는 편모슬하고, 행상을 하는 생모에, 뼈대라고 말 할 것은 하나도 없고, 내세우거나 자랑할 것이라고는 삐쩍 마른 몸매에 의사라는 타이틀 하나뿐이다. 그래서 평범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만 나온 여자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장인이 없는 셈이다. 아마 내 사주에는 아버지라는 명칭이 없는 모양이다. 울 아빠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장인마저 없게 됐다. 사주가 어떻든 팔자가 어떻든 아버지라는 말이 그립다. 이제는 울 생모가 행상을 하지 않아도 됐다. 아마도 울 생모의 생애 중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울 생모가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지난 세월의 찌든 더깨를 씻고 싶은 모양이다. 교회에 가서 무엇을 간구하는지 모르겠다. 울 생모의 환갑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울 생모가 울 아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