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참지 못하고 표현하다니… 화를 내서 좋은 결과를 얻어낸 일이 과연 있을까? 화를 내기는커녕 미워하는 마음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틀어지고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불편한 관계가 지속된다. 얼마 전 한 모임을 준비하면서 미움이 싹터서 일을 그르치게 되었던 경험을 하였다. 나름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을 무렵이었다. 모임을 위하여 모두들 애를 쓰고 있는 중에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회의 도중 사사건건 시비를 내어 방해만을 일삼는 회원이 있었다. 차라리 나오지 않는다면 도움이 되겠다는 의견도 일축하고 준비를 해나갔다. 만족스럽진 못해도 나름 잘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추진력이 바닥이 났을까? 모임 전날 그 동안의 회한이 밀려오며 갑자기 미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행사당일 나가기 조차 싫게 되었고, 결국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이야기가 떠오르며 어리석음과 사랑이 부족하였음을 고백한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제게 돌아올 몫의 재산을 지금 나누어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는
의료인의 자세라고 한다면, 단연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이은 슈바이쳐의 봉사에 대한 이야기가 빠짐없이 나온다. “내가 만약 의료인이라면 환자를 위하여 헌신하고 진료봉사를 하여 정말 아름다운 선행으로 일생을 보낼텐데…” 진정 의료인에 대한 선망의 이야기지만, 상업성에 물든 의료인에 대한 일침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의료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는 바로 헌신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해 나눠주는 봉사를 떠올린다. 많은 의료인들이 국내를 비롯하여 아시아, 아프리카 등 해외 의료봉사를 다니고 있다. 과연 숭고한 일이라고 하여 아무런 댓가 없이 희생하면서 도와주는 것만이 봉사인지 다시금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동안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의료 혜택이 없는 지역에서의 진료봉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기본적인 진료도 하기 어렵다는 상황이다. 진료 자체가 어려우므로 상담으로 끝나거나 투약 혹은 일회성 치료 정도만이 가능하거나 진료 대상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었으면, 혹은 인력이나 장비가 갖추어 졌다면 더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고, 추후 진료가 이어질 수 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