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무에 임한 기간이 33년, 개원의로서의 생활을 전부 회무에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협회를 위해 일한 부분을 높이 사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특히, 제 협회장 임기는 유디치과와의 소송전 등으로 힘들었던 시기로 임원들이 모두 열심히 뛰어줘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며 저와 함께 한 29대 집행부 임원들에게 이번 수상의 영광을 돌립니다.” 최남섭 치협 고문이 2024년 협회대상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돼 오는 27일 열리는 제73차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수상한다. 최남섭 고문은 회무가 곧 인생이었다며 회원을 위하면서도 국민에게 인정받는 치과 정책을 고민하는 것이 기본 철학이었다고 설명했다. 1979년 서울치대를 졸업한 최 고문은 서울시 동작구회 총무이사 및 부회장을 거쳐 서울치과의사신용협동조합 이사 및 부이사장, 서울지부 부회장 및 회장을 거쳐 지난 2014년 5월 제29대 협회장에 취임했다. 최남섭 고문 회무의 큰 줄기는 회원들의 미래 먹거리 창출, 치과계 파이 확대, 건전한 개원질서 확립 노력이다. 최남섭 고문은 “치과의사의 미래, 영역 확대를 위해 해외진출 활로를 열심히
“교단에 처음 섰던 게 1990년입니다. 그리고 올해 2월 정든 교정을 나왔습니다. 이렇게 협회 대상을 수상하며 35년이라는 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게 돼 감사할 따름입니다.” 신동훈 전 단국치대 교수가 제50회 협회 대상(학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가운데 수상 소감을 들어봤다. 그는 지난 1984년 서울대 치과대학에서 치의학사를 취득하고 1992년 동 대학원에서 치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교수로서는 1990년 단국치대에서 첫발을 내디뎠으며 2011년에는 단국치대 학장, 2013년에는 대한치과보존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 SCIE급 국제 유수 학술지에 우수한 논문들을 다수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치과보존학에 있어 바이블로 여겨지는 전공 서적 ‘치과보전학’과 ‘치과보존수복학 실습서’에 공저자로 참여하는 등 치의학 발전도 이끌었다. 이 밖에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시험위원회 위원장, 치협 치과의사국가시험연구소장, 한국치의학교육평가원 치과의사시험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치과의사 국가시험제도 발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바 있다. 먼저 그는 연구에 매진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생각해보면 연구와 교육 현장에서 동료 교수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또 일을 하기
지역 치과의료소외계층의 구강건강을 수호하고자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 히 봉사와 사랑의 길을 걸어온 치과의사들 이 있다. 바로 영등포치아사랑센터다. 제13회 윤광열 치과의료봉사상 수상 자로 ‘영등포치아사랑센터(이하 치아사랑센터)’가 선정됐다. 치아사랑센터는 지난 2008년 7월 영등 포구회 회원들이 지역 치과의료소외계 층을 지원하고자 건강보험공단 영등포 북부지사에 설치한 무료 진료 시설이다. 지금까지 환자 4600여 명에게 건강한 미 소와 씹는 즐거움을 선사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귀감이 돼, 올해 윤광열 치과의 료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특히 분회 차원에서 무료 진료 센터를 설치하고 15년 이상 끊임없이 활동을 펼친 사례는 전국적으로도 치아사랑센터가 유일무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치아사랑센터는 치과의료소외계층을 위한 나눔의 공간이라는 가치를 넘어, 지역 치과계의 자부심으로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다. 최인호 치아사랑센터 초대 센터장은 “이번 수상은 그동안 자원봉사에 참여해 준 영등포구회 회원들과 함께한 치과위생사, 간호조무사, 건강보험공단 영등포북부지사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영광을 돌렸다. 현재 치아사랑센터는 주 1
“영예로운 상을 수상해 감격스럽다. 부모님, 교수님을 비롯 학문의 길에 함께해준 분들의 소중한 협력과 지지에 깊이 감사하다. 앞으로도 치의학에 열정을 갖고 연구에 정진하겠다” 제42회 치협 신인학술상 수상자로 배꽃별 전남대치과병원 치과보존과 임상진료교수가 선정됐다. 배 교수는 치아재생과 관련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 연구 발표 등 탁월한 학술 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학회, 병원 등에 몸담으면서 학술상, 표창, 신진연구자상 등 여러 수상 경력을 보유한 배 교수지만, 그는 이번 치협 신인학술상이 갖는 의미가 이전 수상보다 더욱 특별하다고 했다. 배 교수는 “기존 수상은 단일 성과에 관한 것이었다면, 치협 신인학술상은 그간의 경력을 아우르는 도전이었다. 이번 수상이 학문적 궤적이 돼 새로운 차원으로 다가와 연구에 대한 책임감을 줬다. 특히 새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원동력을 얻는 데도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지난 한 해에만 SCIE 저널을 포함한 논문 6편을 발표한 배 교수의 학문적 궤적은 전공인 치과보존학에 걸맞게 기능과 구조를 상실한 치아를 회복하는 데 있다. 사실 이는 치과보존학 연구자에게는 일반적인
치의신보가 지령 3000호를 맞았다. 햇수로는 58년, 날짜로는 2만873일 동안 만들어 낸 성과다. 3000호를 기념해 치과의사 8명이 한 날 한 시에 모여 치의신보와 치과계의 미래를 둘러싼 방담을 풀어냈다. 전국 각지에서 개원 중인 다양한 연령대의 본지 애독자로 구성된 이들은 제 1호부터 3000호까지 매호의 가치를 되짚고, 치의신보가 기관지로서, 치과계의 여론을 선도하는 公器(공기)로서 어떤 역할과 소명을 담당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 가감 없이 본인들의 의견을 제시했다. <편집자 주> ■사회: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패널: 이민정 치협 부회장, 김응호·김종성·이미연·이서영·이석초·정민선 원장(이하 가나다순) Q. 디지털 치의신보 발간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온라인 매체 강화에 대한 의견은? 김응호 원장(이하 김응호): 디지털 치의신보의 경우 일단 확대가 돼서 좋다. 신문을 보려면 안경을 벗고 봐야 되는데 확대 기능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본다. 반면 광고까지 포함되다 보니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광고 면을 가급적 줄이면 보기가 좀 편할 것 같다. 이민정 부회장(이하 이민정): 좋은 지적이다. 다만 발간하는 입장에서는 기존 온라인 치의신보에
3,000이라는 숫자를 손가락으로 꼽아 세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겨울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비교하여도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치의신보 3,000호는 결코 짧은 시간에 이룬 것이 아닙니다. 1966년 ‘칫과월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환갑에 가까운 58년 만에 달성한 발행호수입니다. 처음 한 달에 한 번 나오던 것을 일주일에 한 번으로 확대하였고, 사회 변화에 따라 인터넷 신문 서비스를 하였으며, 영상미디어 시대를 대비하여 ‘치의신보 TV’를 개국하였습니다. 지금도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통해, 치과계에 ESG경영을 선도하기 위한 [디지털 치의신보]를 발간하여, 3만여 회원과 일반 국민에게도 쉽게 배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치의신보에는 꿈이 담겨있습니다.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입니다. 상상하고 꿈꾸는 자가 미래를 지배합니다. 치과의사와 치과계의 권익을 위해 끊임없이 정진하면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론직필 해 온 수많은 기자와 임직원이 있습니다. 치의신보 한 호 한 호에는 아껴주고 밀어주시는 치과계와 치과의사 선후배와 동료들, 대한치과의사협회의 공신력을 믿고 협력해주시는 업계의 소중한 가치를 빛내드리겠다는 굳
인천 부평역 북광장으로 나와 왼편을 바라보면 서울티플란트치과의원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이 간판 위에는 지지난해 여름부터 ‘김건일치과 서울티플란트와 함께 합니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부평시민이라면 이 플래카드의 의미를 금방 알아본다. 부평역 일대를 지나다니며 30년을 봐왔던 치과가 그냥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김건일 원장에게 직접 진료 받은 환자라면 아직도 김 원장에게 기댈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김건일 원장(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의 치과가 지난 2022년 8월부터 근처에 있던 후배 김상용 원장(인천지부 치무기획이사)이 운영하는 치과와 합병·통합됐다. 실제적으로는 김건일 원장이 자신의 치과를 폐업하며, 수십 년 간 축적해 왔던 진료기록부 등을 후배 치과로 이관하고 자신은 페이닥터 형태로 환자를 이어서 진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순 치과 폐업이나 양도양수, 인수인계와는 다른 형태의 모델을 만들어 냈다. 올해로 80세를 맞은 김건일 원장은 “원래 65~70세 사이 은퇴를 생각했다. 그런데 진료에 대한 끈을 쉽게 놓을 수 없었던 게 50년 세월 쌓아온 환자들 때문이었다. 내가 치과 문을 닫으면 이들은 고아가 돼버리고 마는 상황이었다”며 “
“은퇴를 한다고 일을 안 하는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소득으로의 완전한 전환이 이뤄지는 시기를 은퇴시점으로 삼고 현재의 자금 흐름부터 파악하는 것이 은퇴 준비의 첫 단계입니다.” 병·의원 경영 및 마케팅, 재무·세무교육 전문 업체 엠디캠퍼스의 김성진 대표이사로부터 은퇴를 준비하는 자본 운영의 방향성과 원칙 등을 들어봤다. 김 대표이사는 “아직도 막연하게 금융에 대한 충분한 학습 없이 투자 하거나 이마저도 미루고 있는 치과의사들이 상당수다. 개인의 재무제표를 만들어 특정 시점과 기간의 자금 유동성을 파악하고, 자신의 인생 계획에 따른 ‘투자 정책 명세서(Investment policy statement·IPS)’를 꼭 만들어 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투자의 핵심은 ▲전문인력을 활용한 간접투자 ▲분산투자 ▲개인 맞춤 포트폴리오 구성이다. 개원의들의 상당수가 개인연금저축 등에 자금을 넣고 있는데, 대부분 보험사 상품으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 그러나 이는 은행에서 파는 상품으로 수수료가 목적이라 주식형 상품 보다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같은 5%의 이율이더라도 은행에 적금을 드는 것보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수익률이
치의신보가 지령 3000호 발간을 맞아 발행인인 박태근 협회장과 인터뷰를 갖고 최근 주요 현안에 대한 견해와 치의신보의 책임 및 역할에 관한 생각을 들어봤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2월 13일 치협 회관 내 협회장실에서 진행됐다.<편집자 주> 3000호 맞아 치과계 여론 형성 더 큰 역할 당부 ‘디지털 치의신보’ 변혁 선도 고무적 시도 평가 회원 필수 정보 전달 전문지로서의 책무도 강조 Q. 갑진년 새해의 각오가 있다면? 그동안 열악한 여건 속에서 회무를 해오면서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이 배웠다. 지금은 경험들이 쌓였고 또 이른바 ‘내부 총질’에 대한 면역도 어느 정도 생겼기 때문에 회무 역량을 자신 있게 펼칠 수 있는 정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협회장의 경험치나 역량들이 결국 회원들에게는 자산이 될 수 있는 만큼 회무 동력을 실어 모든 혜택이 회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 올해는 좀 더 회무의 내실을 다지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특히 더 많은 임원들과 소통해 회무가 좀 더 체계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 나갈 생각을 가지고 있다. Q. 지난해 연말 국립치의학연구원 법안 국회통과라는 큰 성과가 있었다.
■이민정 공보담당 부회장 "치의신보 발전 이끈 치의 선배·직원 노력에 감사 다양한 플랫폼 통해 독자들과 넓고 깊게 소통할 것"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텍스트가 가진 힘과 그에 따른 책임감은 큽니다. 이 가운데 오랜 역사를 가진 치의신보가 지금까지 발행된 것은, 책임감을 바탕으로 잘 짜인 글이 치과의사 회원들로부터 많은 신뢰를 받아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민정 치협 공보담당 부회장이 최근 치의신보가 지령 3000호를 맞은 것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이민정 부회장은 그간 치의신보가 질과 양적으로 발전해 온 것은 치과의사 선배들과 직원들의 노력 덕분이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부회장은 “과거 대한여성치과의사회 회장 활동 당시, 여성 대의원 수 증원과 관련해 제가 직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발표했던 모습이 사진과 함께 기사로 나왔을 때 많은 보람을 느꼈던 적이 있다”며 “저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회원들은 치의신보에 게재된 기사를 보고 각자 의견을 나누는 등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특히 우리 치과의사가 다른 유관 단체와 협력하는 모습은 치의신보가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만큼 정보가 남달랐다”며 “또 기사를 통해 세
치의신보는 대한민국 치과계 역사의 ‘산증인’이다. 본지는 창간호를 시작으로 지령 3000호에 이르기까지 불굴의 생명력을 이어오며 치과계 발자취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지령 3000호 특집호를 맞아 본지가 장장 57년 2개월간 채워온 치과계 여백을 돌아봤다.<편집자 주> 본지는 1966년 12월 15일 ‘칫과월보’라는 이름으로 창간, 치과계 언론의 역사를 열었다. 창간호를 살펴보면, 새 출발에 대한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을 엿볼 수 있다. 지령 1호 2면에 실린 당시 최진환 공보이사의 기고에 따르면 해방 직후에도 치협의 기관지는 존재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폐간했고, 이후에도 여러 번 창간 시도가 있었으나 단 몇 호를 내놓고 폐간되는 등 애환의 점철이었다고 한다. 최 공보이사는 “이 회보가 깊은 뿌리를 내리도록 다 같이 힘을 모으는 곳에 살길이 열릴 것이다”라고 당시 기고에 썼다.<사진1> 제호처럼 본지는 창간호를 시작으로 한동안 매달 한 번 발행되는 월간지로 명맥을 이어왔다. 1967년 1월 15일자로 발행된 지령 2호에서는 1면 제호를 ‘齒科月報’로 변경했다. 1970년대 중반은 본지가 변혁을 위한 주춧돌을 놓은 시기다. 우선 광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