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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무엇인가?

그림으로 배우는 치과의사학- 6


링컨은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공자가 40세를 불혹(不惑)이라고 한 것과 맥락이 닿아 있다. 어떤 것에도 혹하지 않았고, 판단을 흐리는 일도 없었고, 진리에서 벗어나 방황하지 않았다면 거울 앞에서 자신의 살아온 인생이 묻어나는 얼굴을 당당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바로 내 인생이고 자화상이다. 윤동주(1917-1945)와 서정주(1915-2000)의 시 ‘자화상’. 제목은 같지만 두 사람의 인생은 완전히 달랐다. 수십 점의 자화상을 그린 고흐(1853-1890)와 피카소(1881-1973)도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이처럼 시인과 화가는 작품을 통하여 성찰하였다. 치과의사는 치과에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서 반성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영국 풍자화가 조지 크룩생크(George Cruikshank, 1792-1878)의 작품 ‘Tugging at a eye tooth(1821)’은 특이하게 두 가지 버전이 있다(그림1). 처음 그림에는 진료실 거울에 술자와 환자의 얼굴 표정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화가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거울에 비친 모습을 대부분 지우고 환자의 놀란 눈과 술자의 뒷모습으로 변경하였다(그림2). 그는 나폴레옹과 조지 4세도 거침없이 풍자하였기에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하다. 상상과 추측만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림의 공간적 배경은 Barber-Surgeon(이발-외과의)의 19세기 초 치과진료실이다. 술자는 금색 단추가 달린 감청색 자켓의 복장이고, 진료실 바닥은 카페트로 완전히 덮여 있으며, 진료 의자와 기구들이 놓여 있는 가구도 관찰된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이 눈에 확 띈다. 이 작품은 판화이지만 19세기 치과의 특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마치 사진 같다. 진료실 내부의 풍경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거장(master)의 반열에 오른 이발-외과의로 추정된다. 치과 거울에 비친 내 복장은 단정하면서 신뢰감을 받을 만 하나요? 

이발-외과의는 발판위에 올라가서 팔로 환자의 목을 잡으면서 상악 좌측 견치를 발치하고 있다. 그림 제목에 high를 지우고 eye로 바꾼 것으로 보아 19세기에 송곳니는 high 또는 eye tooth라고 명명되었나보다. 시야 확보와 접근성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발판위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술자는 발뒤꿈치를 살짝 들면서 발치에 집중하고 있다. 작가는 무엇 때문에 이발-외과의를 과장해서 난쟁이처럼 그렸을까? 아마도 발치의 곤란하고 힘든 상황을 묘사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파악된다. 지금도 발치는 삼디(3D)치료다. 수가는 더럽고(Dirty), 난이도는 어렵고(Difficult), 항상 위험(Dangerous)에 노출돼 있다. 언제나 개선될까?      

치료받던 중 고통스러웠던 부인이 발로 찬 테이블은 거의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테이블에 놓인 유리병이 벽에 걸린 거울에 부딪히면서 금이 간 거울까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무통 발치에 관한 역사를 간단히 살펴본다. 1844년 Horace Wells는 소기 마취, 1846년 William Thomas Green Morton은 에테르 마취를 이용하여 무통 발치를 시도하였다. 이 시기 전까지 시행된 치과 치료는 합법적인 고문이라 할 수 있다. Thomas Rolandson의 1823년 작품 ‘The tooth Ache(육체적 고통), or Torment(정신적 고통) & Torture(고문)’도 이러한 이유로 제목이 정해졌을 것이다.

중심에 큰 타구(spittoon)가 있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기구들을 하나씩 보면 그 당시의 진료를 알 수 있다(그림2). 손거울과 손잡이가 빨간색인 3개의 tooth-scraper가 있다. 이것은 치석 제거를 위한 기구이다. 오른쪽에는 유리병(decanter), 유리잔(glass), 가루 치약이 들어 있는 통(pot), 망치(horn mallet)와 틀니가 보인다. 망치는 금 충전물을 condensing하거나 gold denture base를 조정할 때 사용되었다. 이번 그림에도 개 한 마리가 테이블 아래서 짖고 있다. 강아지는 발치중인 치아가 견치(canine)임을 강조하고, 개 짖는 소리는 진료실에 울려 퍼지는 환자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암시한다.

진료실 창문에 발치된 치아가 걸려있고 그 아래 촛불이 켜져 있다(그림2). 지금의 간판(trade sign)에 해당된다. 19세기 초 영국 국민의 높은 문맹률 때문에 어쩌면 치과를 알리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치과 광고와 비교하면 단순하고 소박하고 경제적인 방법이다. 요즘은 자기 PR시대이다. 그러나 PR은 Public Relations의 약자이고 본뜻은 홍보, 선전 및 계몽이다. 방점이 공공(public)에 찍혀야 하는데 개인(private)에 잘못 찍혀 있다. 도를 넘어선 PR은 해적(pirate)과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지금 네가 읽고 있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고 하였다. 책장에 있는 책들이 그때 그 사람을 설명해 줄 것이다. 글씨 판별이 가능한 책들만 나열해본다(그림3): Winter in London(Thomas Skinner, 1806), Lock on the GUMS, Miseries of Human Life(James Beresford, 1806), Bible, Tales of Devil, Tommy Two Shoes, Treatise on Tooth Powder & Brushes, Tales of Terror, Frankenstein(Mary Shelly, 1818). 십여 권의 책 중에 전공서적은 유일하게 한 권이다. 내 책장을 훑어본다. 나는 어떤가?

왜 메리 셀리(Mary Shelly, 1797-1851)의 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The Modern Prometheus)은 한 권이 아닌 두 권 일까? 아마도 크룩생크는 ‘프랑켄슈타인’을 통해서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 프랑켄슈타인 앞에 놓인 틀니와 연결시켜본다. 이 무렵에 틀니는 코끼리 상아로 만든 Ivory denture, 상아와 Waterloo teeth가 혼합되어 만들어진 Hybrid denture, Porcelain denture가 있었다. 신종어 ‘Waterloo Teeth’가 탄생할 정도로 전쟁터에서 쓰러진 수많은 젊은 병사들의 치아, 특히 전치는 틀니의 일부로 재탄생하였다. 이기적이고 욕망과 충동에 빠져있는 오만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을 창조하였고, 그 괴물로 인하여 그는 많은 것을 잃었다. 익명의 비의료인이 치과계에 괴물을 만들고 있고 우리 동료와 후배들이 절망의 늪으로 밀려가고 있다. 소설에서 괴물은 파괴되어 사라졌지만 치과계에서 괴물은 언제쯤 궤멸될까?

권 훈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정책이사
2540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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