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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치과의 구원투수 스미스(Smith) 가문

그림으로 배우는 치과의사학- 16


18세기 치과 진료는 주로 두 곳의 장소에서 행해졌다. 이발외과의(barber-surgeon)는 고급스럽게 꾸며진 실내 공간인 응접실(Salon)에서 상류층을 대상으로 치료하였고, 반면에 떠돌이 발치사(itinerant tooth puller)는 실외인 시골 장터(market)에서 민초의 치과주치의 역할을 하였다. 장이 서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시골은 이발외과의와 발치사가 없어서 소위 말하는 치과치료 사각지대였다. 이처럼 격리된 마을에서 치통 환자가 발생하면 참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곤 했다. 바로 이때 구세주로 등장한 사람이 마을의 대장장이(Blacksmith)였다.

대장장이는 뛰어난 손재주와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었고, 집게(tong) 사용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였다. 또한 필요한 기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제작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이러한 대장장이의 직업적 특성이 시골 사람들을 위한 발치사 역할이 가능하게끔 하였다. 그 덕에 사람들은 앓던 이를 뺀 후 시원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고, 대장장이의 부업인 발치는 19세기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영어 단어 대장장이(blacksmith)에서 접미사인 smith는 금속을 다루는 직업을 뜻하며, ‘장인(匠人)’이라는 함축적 의미도 담겨있다. smith가 들어간 또 다른 직업들로는 금세공인(goldsmith), 은세공인(silversmith), 구리세공인(coppersmith), 총기제작자(gunsmith)등이 있다. 금속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언어를 잘 다루는 사람은 문장가(wordsmith), 대중음악을 잘 만드는 사람에겐 작곡가(tunesmith)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11세기 중반 무렵부터 서양에서는 성(surname)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조상의 직업을 성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smith이다.

Smith 가문은 아니지만 치과의사학에서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긴 직업인 goldsmith와 silversmith가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베네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 1500-1571)는 직업이 여러 가지였는데 그 중 하나가 금세공인이었다. 그는 casting gold 과정을 통해서 많은 조각상과 예술품을 제작하였다. 베네누토는 이 방법을 치아 수복에도 적용하여 gold inlay 방법을 창안하였다. 피렌체에 있는 베키오(Vecchio) 다리의 서쪽에 베네누토의 동상이 있고, 다리 위에는 금은방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치의학도 큰 걸음의 발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폴 리비어(Paul Revere, 1734-1818)는 미국에서 은세공인이면서 치과 보철치료를 하였다. 이 시기 미국에서는 금이나 은세공인이 치과 치료를 도맡아서 하였다. 참고로 첨언하자면 세계 최초의 치과대학은 1840년 설립된 미국 볼티모어 치과대학이다. 폴 리비어는 최초로 법치의학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1775년 벙커힐 전투에서 사망한 총사령관 조셉 워런(Joseph Warren)은 폴 리비어의 치과 환자였고, 조셉은 그로부터 보철치료를 받았었다. 1년 후 전쟁터에서 조셉의 유골을 찾을 수 있는 결정적 증거는 폴 리비어가 만든 보철물이었다.

그림1은 18세기 시골 마을 대장간의 풍경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편자공(Farrier)이 아닌 제철공(Blacksmith, 蹄鐵工)이다. 제철공은 자신이 직접 제작한 대형 겸자를 이용하여 중년 부인의 상악 중절치를 발거하고 있다. 여성 환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한손으로는 자신의 모자를 꽉 쥐고 있으며 나머지 한손으로는 제철공의 터번(turban)을 잡아당기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 있는 환자의 남편은 걱정스럽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진료 장면을 쳐다보고 있다. 이번 그림에도 하단에 12줄의 시가 있는데 아래에 원본과 필자의 번역본을 올려본다.

Why dame how you hollow! and hold by my horn, I never heard such a noise since I was born. How you pinch up your hat, and squeeze up your eyes, You’ve broke both the drums of my ears with your cries, That I hurt you, you ne’er shall make me believe, It’s easy as drawing a pin from one’s sleeve; I challenge the Country for drawing you fool, I’ve drawn teeth with prongs like a three legged stool, No doubt on’t quoth Gaffer, and lifts up his hand, Yet half of an hour is a great while to stand; And tho’ you’re surprised to hear my Dame bawl, Yet thrice round the Shop is a pretty good hawl.

부인 왜 고함을 지르고 내 모자를 잡나요.
나는 지금까지 이런 굉음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지금 당신은 네 모자를 꽉 쥐고 있고 인상을 쓰고 있네요.
당신의 울음 소리 때문에 내 고막이 찢어질 지경이요. 내가 당신을 아프게 했나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당신의 치아를 발치하는 것은 옷소매에서 옷핀을 빼는 것처럼 쉬운데 당신이 지금 힘든 이유는 치과가 없는 시골에 살아서 그렇다우 나는 다리가 3개인 의자처럼 생긴 기구로 발치를 할거라우 시골 영감에게 물어보지 마시고 나에게 그냥 손만 드세요. 여전히 30분은 서있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네요.
비록 당신의 울음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지만 가게는 3배정도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니 나는 좋아요.

발치만 했던 것으로 알았던 대장장이(Blacksmith)는 또 다른 치과 진료를 한 흔적이 기록에 남아 있다. 프란시스 윌러프비(Sir Francis Willoughby, 1547-1596)의 회계를 담당했던 Thomas Shaw의 서류에 1574년 대장장이에게 치과 치료를 받았다는 영수증이 보관되어 있었다. 대장장이는 줄(file)을 이용하여 월러프비 부인의 파절된 날카로운 치면을 연마하는 치료를 하였다. 덕분에 치열의 불규칙성이 완화되어 외모가 보다 더 개선되었다. 영수증에 적힌 금액은 12 펜스(pence)였는데, 그 비용이면 수망아지 말발굽을 교체할 수 있었다고 하니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덴마크의 풍자화가 Alfred Schmidt (1858-1938)가 1911년 Klods Hans에 게재한 그림 ‘The Smith as a Dentist’을 소개한다(그림2). 화가 Alfred의 성이 Schmidt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대장장이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림에서 대장장이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치통 환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이처럼 치통을 완화해 보고자 얼굴을 감고 있는 붕대를 이 시절 사람들은 ‘toothache scarf’라 불렀다. 질병의 통증을 예술로 승화시킨 표현이다. 대장장이와 환자의 대화는 덴마크어로 적혀있지만 구글 번역의 도움으로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치료비에 시간을 고려하는 것이 참 인상적이다.

Patient : What do you charge for pulling out a tooth, Mr. Smith?
Mr. Smith : Two shillings per hour.
         

권 훈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정책이사
2540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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