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에는 더디게만 가던 시간이 40세 때는 40km, 50세 때는 50km, 60세 때는 60km 속도로 때로는 정신없이, 갑자기 들이닥쳐 대응할 여유도 없지만, 이후에는 점점 느리게 간다. 우리는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이미 나이를 먹고, 인식하지 못하지만 신체 여기저기 늙어가는 징조가 나타나고 변화하면서 오늘을 살아간다. 모두 똑같진 않겠지만 40세가 지나면서부터 먼저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해 돋보기안경을 끼게 되고, 잇몸이 나빠지고 치아가 빠지면서 임플란트 같은 보철물을 하게 되고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희어지고 허리가 아프거나 무릎이 시려 오며 나도 모르게 움직일 때마다 불편한 소리를 낸다. 몸의 장기 곳곳에서 병이 생겨 병원에 다니는 시간이 늘어나고 먹는 약이 늘어나면 혹시 큰 병이 걸린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걱정하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데도 어느 순간 자신이 나이 먹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마음과 몸이 같은 속도로 늙지 않는다는 사실에 새삼 충격을 받고 두려워한다. 이런 두려움은 인간의 가치를 기능으로 판단하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병폐에서 비롯된다. 젊은 세대
미국 연수 시절에 살던 곳의 쇼핑몰 앞에 자동차 수리점이 있었다. 그곳의 안내판에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Wait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100달러, Watch (수리하는 모습을 감시하고 있으면) 120달러, Help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140달러”. 제대로 고칠까 의심이 되어 고객들이 엔지니어가 일하는 장면을 직접 봐야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때부터 고객과 회사 간에는 믿고 맡기는 “신뢰”관계가 아니라 부탁한 만큼 눈으로 보여주는 “계약”관계가 성립이 된다. 그 자동차 수리점은 고객이 신뢰해 주면 더 잘해줄 수 있다는 것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한다고 하는 것은 내 눈에 직접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완전히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잘 알고, 모든 상황을 조절할 수 있다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핸드폰에서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내 손안에 진실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타인을 신뢰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또한 신뢰라는 것은 모호하고 불분명한 상대를 내가 먼저 믿어야 하는 첫 단계를 거쳐야 한다. 나중에 배신당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쉽게 신뢰
각진 얼굴, 꼬투리를 잡으려는 듯 쉴 사이 없이 두리번거리며 예민함과 까다로움, 신경질을 담은 눈, 불만을 끊임없이 쏟아낼 듯 움찔거리는 입. 몇 해 전 나를 심하게 괴롭혔던 환자의 첫인상이다. 우리는 진료실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개원 10년차가 넘으면 멍석을 깔아도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겉모습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이 환자의 진료 만족도 내지는 결과와 연관성이 있음을 시사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외적인 정보가 주는 선입견의 함정에 빠져서는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를 해 줄 수 없다. 그러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의 한 단초로 우리가 겉모습에 집착하는 이유를 찾아가보고자 한다.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동화 속에는 아름다운 공주와 멋진 왕자가 자주 등장했다. 아름다운 외모의 주인공은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는 엔딩은 마치 한 세트 같았다. 콩쥐와 팥쥐, 신데렐라, 백설 공주만 해도 그렇다. 신데렐라의 나쁜 언니들, 백설 공주를 괴롭히는 여왕 등 주인공의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조연들은, 하나같이 못 생기고 못된 성격으로 그려졌다. 동화 밖의 세상은 다를까?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고, 가르치지만 평범한 외모의
A caries “silver-fluoride bullet”, 어떤 논문 제목의 일부입니다. 대체 누가, 어떤 자신감으로,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충치 잡는 총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걸까요? 600회가 넘게 인용된 이 논문은 Silver Diamine Fluoride(SDF)라는 생소한 재료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재료가 포함된 제품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승인되어 시판된 2020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아동 및 청소년과 장애인의 증례에 꾸준히 적용해온 제 경험을 조심스럽게 공유하고자 합니다. SDF의 역사를 silver nitrate의 역사까지로 연장하여 보는 이들은 일본을 비롯한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치아를 검게 칠하는 흑치(黑齒) 풍습까지를 SDF의 긴 역사라 설명하지만, 현대의 국가 체계에서 정부기관으로부터 승인받은 제품이 사용된 기록을 공식적이라 본다면 1970년대 일본에서 사용된 제품이 그 첫 출발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후 1980년대에 호주와 브라질을 비롯한 일부 국가로 그 사용이 확장되고 2000년대를 지나면서까지 그 사용이 활발하였지만, 북미국가에서 SDF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로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미국과 같은 거대국가에
지난 9월 19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도내 의과대학 정원 최소 108명 증원과 50명 정원의 국립 치과대학 설립 추진 계획을 밝혔다. 의료환자 중증도보정사망비, 치료 가능 사망자 수가 전국 1위,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는 전국 평균 2.14명 대 대비 1.57명, 도내 병원 근무의사 946명에서 182명 부족(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은 정원 422명 중 59명 부족, 건국대병원은 정원 118명 중 64명 부족) 전국 평균 의대 정원수 197명에서 충북은 89명 등을 근거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한다고 한다. 지역 의대 출신은 지역에 남아서 근무하는 비율이 타지역 의대 출신보다 3배 높은 통계가 있고 의대 신설보다는 정원확대가 비용,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국립치과대학 신설 추진계획의 근거는 충청권에 국립 치과대학이 없고 기대수명 증가와 고령사회 가속화에 따른 치과 의료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전문진료를 공급하고자 한다고 한다. 회견 말미에 “도민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동등한 의료서비스를 받고자하는 우리의 절박한 요구가 정부에 반영될 수 있도록 164만 도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요지는 충북 지역
한반도 특히 조선에서 외세의 침략 위협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었습니다. 하나는 여진족의 북방 세력과 다른 하나는 남쪽 왜의 세력입니다. 동과 서는 끊임없이 왜의 노략질 대상이 되긴 했어도, 대규모의 원정군이 침탈하기에는 상륙지와 이동로가 그리 만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왕을 잡으면 끝나게 되는 게임에서는 최단거리 이동에 따른 속도전이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화도는 뱃길을 따라 침입하려는 외세를 방어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었고, 해군보다 기병이나 보병의 활약이 승패의 최종 가름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양은 북쪽으로 높고 험한 삼각산(북한산)이 자연 방어막을 형성해주었습니다. 남쪽은 한강 이남으로 관악산이라는 높은 산이 있으나, 너무 험한 악산이라 오히려 군대 주둔과 방비에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성남에 남한산성을 쌓고 행궁을 만든 연유가 아닐까 합니다. 궁궐에서 가장 가까이 봉수를 볼 수 있는 곳은 남산입니다. 왜구의 침입이 있을 때 그 남산에 빠르게 봉화를 피워 알릴 수 있는 요지는 어디였을까요? 한양 도성 남쪽 지금의 양재 쪽에 있는 구룡산입니다. 해발 300미터 정도의 낮은 산이지만, 지금도 서울 전체의 조망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날이 좋으면
최근 턱관절 치료 분야에 있어 오랜만의 의료 신기술 승인이 났다. 오래전부터 다른 관절 부위에서 시행해 왔었던 소위 “증식치료(prolotherapy)”를 몇 가지 턱관절 장애 증상에 한하여 유효하고 안전하다는 기술로 신의료기술위원회를 통한 정부의 정식 승인을 받은 것이다. 이 기술은 원래 치과 쪽이 아니라 일부 의과 선생들이 경추 및 후두부 쪽에 적용을 신청하며 슬쩍 턱관절을 포함시킨 것인데, 심사과정에서 근거가 많이 부족한 다른 부분은 제외하고 그나마 심사할 만한 논문이 있었던 턱관절 장애 부분만을 떼어내어 승인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기술의 승인 후 기술이 비교적 쉽고, 또 개원가에서 보존적인 방법 외에 해결하기 힘들었던 턱관절 증상의 치료에 세정술과 아울러 추가적인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기에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승인을 위한 평가를 했던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솔직히 이 기술은 아직 좀 더 다듬어져야 하는 기술이다. 비유를 하자면 심증은 있는데 아직은 확실한 물증이 부족하다고 할까? 의과 쪽에서 이미 정식 의료기술로 시행이 되고 있는 일부 관절부의 증식치료 역시 신의료기술 평가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의료기술 등재가 되었던 터라 요
얼마 전 치의신보에 칼럼으로 디즈니 인어공주를 보고 낯설음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글을 썼었습니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되는 이유, 아니 멀리 하지 않아야 될 이유에 대해서 쓰고자 합니다. 누군가와 만나 대화를 할 때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편안함을 느낍니다. 맥락에 대한 이해가 쉽고 편하며 오해도 없기에 주의를 많이 기울여서 대화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유로 스스로의 생각이 더 완고해지고 편견이 생기기도 쉬울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서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의 말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우리를 더 주의 깊게,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이런 능력은 더욱 중요합니다. 조직에서도 이러한 다양성은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그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러한 개방성과 다양성은 조직의 성장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과거에 동질성과 유대감이 중요시되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화가
코로나가 끝났다… 아니 유행은 하지만 감기나 별반 차이가 없이 약해진 것 같다. 움츠려 있던 일상생활의 구속이 풀리며 여기저기 만나자는 연락이 많이 온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편하기는 한데 보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준비는 해야겠다. ‘무슨 재밌는 일 없나’ 매일 들여다보는 톡에 3년여 만에 대학동기 모임 공지를 올리며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 한번 보자’ 생각해 본다. 반응이 괜찮다. 다들 오래 기다렸는지 어쩐지 기쁘게 댓글이 올라온다. 기분은 좋은데 역시나 댓글을 올리는 이들은 코로나 이전과 별반 차이 없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뭐 이건 항상 느끼는 거라 지금은 새삼 신경도 안 쓴다. 그래도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의 호응이 많아서 기분은 좋다. 내가 모임 준비하는 것은 와이프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가시 돋친 잔소리와 타박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냥 서로 모르는 게 편하니까 모임만 있다고 적당히 둘러대려고 한다. ‘아… 이것도 3년만 하면 꼬박 10년이구나.’ 주변 선배님들에게 문의도 하고 친구들하고 의논도 하니 이전보다는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기가 많이 수월해졌다. ‘이제 마지막 점검만 하면 되겠네.’, ‘어릴적 소풍 전 설레는 마
100은 그 의미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숫자입니다. 100은 아주 많음, 가장 좋은 점수 등 최상위에 위치됨을 뜻하기도 하고, 100번은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을 품기도 하지요. 100주년, 100세, 100년 등 기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숫자이기도 하고, 100년대계와 같이 미래에 대한 원대한 계획과 다짐을 담기도 합니다. 100인대장 같이 군대의 전투 지휘관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고, 100인, 100곡 등 가치가 매우 높으면서 한정됨 이란 의미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100이 이처럼 다른 숫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받는 것은 100이 사람의 수명 기대치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00살까지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되고 있으니까요.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100으로 가득 채워진 이후에는? 100 다음으로 오는 그다음 100번을 향해 달릴 수도 있고, 100만 고집하고 안주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다 도태될 수도 있습니다. 101과 같이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달리고자 합니다. 101처럼 둘로 가를 수 없는 사랑을 담아서요.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미국의 도덕-행동철학자 프랭크퍼트가 2005년 “On Bullshit”이라는 손바닥만 한 100쪽도 안 되는 조그만 책을 출간하면서 그 명성이 절정에 올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책이 작은 이유는 두꺼워지면 자연히 개소리를 많이 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개소리의 개념적 의미를 현실적, 철학적으로 분석하여 거짓말보다 훨씬 교활한 개소리의 사회학적 해악을 명쾌하게 까발렸다고 평하고 있다. 거짓말쟁이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개소리쟁이는 목적 달성만 중요하다고 하였다. 의도에 부합되면 진짜, 가짜 안 따지는 개소리의 교활한 폐해를 지적하였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로 개소리가 너무 만연한다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이것을 알고 있다고도 하였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다고 하였다. 원저의 출판년도가 2005년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초판 1쇄가 2013년 발행되었는데, 2023년 지금 14쇄가 발행되면서 인기를 끄는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개소리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현혹되지 않을 정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