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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오빠의 쓴소리,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28)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가수 보아의 친오빠가 올린 의사의 차가움을 비난하는 글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말기 암 환자인 그의 처지가 딱하면서도, 사실을 설명한 의사를 무턱대고 비난하는 기사나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 의협 회장 말마따나, 환자에게 충분히 내용을 전하지 않으면 고소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부족한 진료 시간을 할애하여 내용을 전할 때 벌어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사건에 대해, 그리고 한국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사의 설명에 관해 의료윤리학자로서 어떻게 보시나요? 익명


의사, 치과의사 구분 없이 많은 선생님이 어려워하시는 부분 중 하나가 환자 설명입니다. 예컨대 2006년이 수행된 의과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환자 인식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8%가 면담에서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2015년 발간된 『내과전공의 의료윤리 사례집』도 서문에서 진료실 안팎 의사의 신뢰 상실을 염려하며, 의사소통의 어려움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구체적인 설문이 진행된 바는 없으나, 대한치과의사협회 치과의료정책연구원에서 2019년 발간한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의 건강실태 및 사망원인에 대한 조사연구』를 보면 은퇴를 고려하는 이유로 본인 건강 문제 다음에 환자와의 관계가 꼽혔습니다. 개인적으로 환자 설명에서 어려움과 불편함을 느낀다고 호소하시는 여러 선생님을 주변에서 뵙곤 하지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최근엔 학교에서도 의사소통 교육을 합니다. 의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름의 과목이 운영되고, 의사 국가고시에서 모의 환자(환자 역할을 연기하는 사람)를 대상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을 실기 시험으로 평가한 지 좀 되었죠. 치과의사 국가고시도 올해부터 같은 방식의 평가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이 상황을 변화시킬 거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외국은 이런 교육을 시작한 지 훨씬 오래되었지만, 환자 쪽에서 의사의 설명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것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습니다. 한 교수님께서 이런 교육을 놓고 하신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글쎄, 의료 커뮤니케이션 과목에서 실습하는 건 이상적인 과정이잖아. 그건 교육 안 해도 다들 잘해. 교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이 문제지. 환자가 화를 낸다거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거나, 환자가 원하는 게 다를 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쳐서 시험을 보겠어.” 어쩌면 ‘돌발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런 사태가 문제고, 이걸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리고, 최근 화제가 된 사건도 의료 커뮤니케이션의 ‘표준 환자’가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요.

 

말기 암 판정을 받은 권순욱 씨(보아 오빠라는 표현이 더 친숙하지요)가 SNS를 통해 의사의 차가운 말을 성토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여러 의사로부터 나을 수 없다, 약은 그냥 증상을 늦추는 것뿐이다, 주변을 정리하라 등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을 들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무조건 ‘차갑다’라고 정의하기 전에, 한번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의사의 말은 정말 차가웠던 걸까요? 같은 상황에 부닥친 다른 환자는 똑같은 말을 들으면서 상황을 정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솔직하게 말해주어 고마웠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힘을 얻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권 씨가 들은 똑같은 말은 전혀 차갑지 않습니다.


즉, 문제가 된 것은 의사들이 한 말이 권 씨가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도의 문제로 의사가 따뜻한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분석한 전 의협 회장의 말이 반만 맞는 것은, 분명 제도의 문제가 있긴 하나 이 상황이 무조건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권 씨가 다른 의사를 만났다면, 그가 듣고 싶었던 말(아마, 여러 기사로 판단하건대 그는 어렵지만 그래도 함께 노력해보자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을 해주는 의사와 상담했다면 그는 괜찮았을 겁니다(후속 기사를 보면 이런 의사를 만난 듯합니다). 즉, 문제는 환자가 다양한 것을 원한다는 것이죠.

 

어떤 환자는 솔직함을 원합니다. 누군가는 격려를 원합니다. 또, 어떤 환자는 결단력을 원합니다. 환자와 의사는 서로의 요구에 반응하며 움직입니다. 이를 좀 더 확대해서 표현해 보자면, 진료는 환자와 의료인이 만나서 완성하는 예술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 예술 작품이죠. 의사에 비해 치과의사는 진료의 예술성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왜 이 치아 형태와 배열이 좋은가 따질 때, 우리는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에’라는 직관적인 표현이 맞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 때문에 변연이, 높이가, 두께가 어떻고 하는 말을 생각하게 되지요. 그러나 의술은 애초부터 과학이자 예술이었습니다. 과학은 의학의 기초를 만들고, 그것을 자리 잡게 하는 것은 예술입니다. 의사가 말과 치료와 태도와 행동을 환자의 요구에 맞추는 것, 그 또한 예술이지요. 권 씨와 의사들은 만남을 통해 서로 상처를 입었습니다. 서로의 요구에 조응하지 못했기에, 서로의 만남이 예술의 영역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요? 우리가 점점 과학의 언어로 사고하는 데에만 익숙해져서, 진료의 예술을 지워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점점 획일적이고 단순화된 지침, 치료계획, 심지어 ‘커뮤니케이션 기술’에만 매달리다가, 다양한 요구에 반응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벌어진 일은 그저 말실수나 ‘차가운 말’ 때문이 결단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해결책은 하나일 겁니다. 지워지고 잊혀져 가는, 진료의 예술성을 되살리는 것이죠. 누군가는 이를 ‘실천지’라는 거창한 표현으로 옮길 수도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이를 덕스러운 행동이라 표현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표현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환자와 의료인이 서로의 필요에 맞춰 움직여 가는 실천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진료의 예술성을 잘 알고 있는 우리 치과의사가 하고자 한다면, 이런 실천의 기술을, 예술을 되살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