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구강노쇠(oral frailty)는 단순한 구강 불편의 문제를 넘어 전신 건강, 삶의 질, 그리고 예후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임상 지표로 주목받고 있다. 구강노쇠는 식사, 의사소통, 사회적 활동, 영양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되며, 결국 근감소증, 노쇠, 기능저하, 입원, 폐렴, 사망위험 증가로 이어지는 연속선상에 위치한다. 이는 치아 수 감소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저작, 연하, 발음, 구강위생, 구강건조 등을 포함하는 다차원적·다학제적 기능 저하 상태이며, 일본의 구강기능저하(oral hypofunction) 개념과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구강노쇠는 “불가피한 노화 현상”이 아니라 진료실에서 신속한 선별과 비교적 단순한 중재로 개선 가능하다. 그러므로 임상에서는 조기 인지, 원인 기반 유형화 및 즉각적 개입이 중요하다. 이에 구강노쇠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진료실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중재 전략을 통합적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저작기능저하형: 씹을 수 있는 구조 우선 회복 저작기능저하형은 치아 상실, 의치 부적합, 교합력 저하, 잔존 치근, 동요치, 통증, 점막 병소 등 구조적 문제에서 시작된다. 이 유형의 본질은
첫 개원을 하던 날, 제가 최우선 목표로 했던 것은 대단한 임상도, 물질적인 성공도 아니었습니다. 한 자리에서 20, 30년 동안 꾸준히 치과를 할 수 있다면 다른 목표들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개원을 하던 날, 저의 목표는 한 자리에서 20, 30년 치과하기였습니다. 개원한 지는 20년이 조금 안 되었습니다. 그러면 한 자리에서 10년이라도 해 보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첫 개원지가 재건축되는 바람에 10년을 못 채우고 이전하였습니다. 지금의 개원지에서도 아직 10년을 채우지 못 했습니다. 한 자리에서 20, 30년은커녕 10년도 못 채워보고 제가 목표로 했던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한 자리건 아니건 20, 30년 동안 개원 생활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 20, 30년 동안 해낸다는 것은 끈기와 인내심 등 삶에서 매우 중요시되는 태도를 요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치과를 20, 30년 하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20, 30년 동안 개원 생활을 유지하려면 우선 건강해야 할 것입니다. 건강해야 자신감 있게 진료할 수 있습니다. 건강을 잃는 순
1편에서 우리는 환자가 이미 결정을 끝내고 치과를 찾아온다는 ‘골든 시그널’(Golden Signal)을 다루었다. 그렇다면 그 결정은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진료실 안이 아니다. 환자는 자신이 살고 일하는 권역 안에서, 소득과 연령과 생활 리듬을 재료 삼아 치과에 대한 초안을 먼저 써 내려간다. 원장이 할 일은 그 초안을 정확히 읽어내고, 치과의 모든 활동을 그 위에 정렬시키는 일이다. 많은 원장님들께서 상권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유동인구와 임대료까지는 살펴본다. 그러나 골든 시그널의 관점에서 필요한 것은 ‘권역분석’이다. 권역은 유동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 형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같은 반경 1.5킬로미터 안에서도 가구 소득과 연령 구조, 경쟁 치과의 포지션, 인근 미용 인프라가 어떻게 겹쳐 있느냐에 따라 환자가 써 내려가는 문장은 전혀 다른 모양으로 굳는다. 권역분석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골든 시그널은 추상적인 감(感)이 아니라 경영의 지표 체계가 된다. 주력 진료과목을 무엇으로 좁힐지, 상품 구성을 어떤 가격대와 조합으로 짤지, 고객 매출이 몰리는 시간대와 요일을 어떻게 배치할지, 어떤 메시지를 홈페이지 전면에 세울지. 이 모든 결정이 환자가 먼저 써 둔 문
오늘 소개할 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한 주목(朱木)이다. 봄이 되어 만물이 새롭게 될 때 긴 겨울에서 의연히 살아남은(?) 친구들이 있으니 바로 소나무 전나무 등 침엽수(針葉樹)라 불리는 이들이다. 고난을 통해 진정한 강자가 누구인지 드러나게 되는 것이 우리 인생과 같다고나 할까. 화려하지는 않지만 겨울의 이땅을 지키는 이들,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주목(朱木)”이다. 주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너무 흔해 잘 표시 나지 않는 친구다. 하지만 혼자 있길 좋아하고 어둡고 습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나무에도 MBTI가 있다면 ‘E’가 아니라 ‘I’에 가깝다고 할까? 반면 이 나무의 내공은 감히 다른 나무는 흉내조차 낼 수 없다. 평균 수명이 천년이라고 하니 조선시대 아니 고려시대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온 나무들인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인간인 창세기의 ‘무드셀라’가 969세까지 살았다고 하나 주목의 평균 수명에도 못 미치는 숫자이다. 주목의 별명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다. 시인 피기춘의 『주목이여, 그대에게 약속하네』라는 시의 “살아 천년, 죽어 천년 / 주목의 삶으로 세상에 향기 놓세.”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실제로 강원도 정선군 두
장모님은 여걸이셨다(金貞姬; 1929-2020). 여고시절에는 청주 시내를 말을 타고 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탄허 스님이 법명 벽안(法名: 碧眼)을 주실 만한 미모에 사업수완 또한 만만치 않았고, 여신도 회장과 불교신문사 사장을 역임하셨다. 진잠에 큰 절을 세울 꿈을 품었던 스님은, 대전에 오면 처가에서 점심공양을 하셨는데, 장모는 “큰 스님이 오시니 귀한 말씀 좀 듣자.” 전화를 했다. 불경번역으로 한문 실력이 걸출한 학승이라는 명성과 예지 능력은 익히 잘 알려져 있고, “허공을 삼킨다.”는 법명이 예사롭지 않아, 달려가 몇 차례 뵌 적이 있다.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탄탄한 씨름선수 몸매에 말수는 뜸하여, “역시 뜬금없는 스님의 알 수 없는 방언?”이라는 건방진 생각에, 더 자주 뵙고 듣지 못한 젊은 시절의 오만이 후회로 남아 있다. 흘리듯 지나가는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여성 대통령이 나오고, 그 전후에 일본열도가 바다에 잠기며, 곧 이어 세계가 조공(朝貢)을 바치러 온다는 얘기였다. 그때만 해도 너무 황당무계하다고 웃어 넘겼는데, 30년이 채 못 되어 박근혜대통령이 나오고 도후쿠 지방이 쓰나미에 잠기더니, K-컬처를 동경하는 세계의
평생 따라 다니는 유일한 친구가 그림자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그림자가 있어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 그림자가 내겐 두 개다. 사실 하나이지만 복시로 인해 두 개로 보인다. 필자는 젊었을 때부터 안질환의 하나인 부동시(양안 심한 시력차)로 조금 불편하게 살아왔지만 그런대로 적응하면서 잘 지내왔다. 주로 왼쪽 주안이 역할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불편을 느끼지 않는데 야간에 빛이 퍼져 다소 불편을 느낄 정도이고 안경을 착용하기 때문에 그런대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예전 대학시절 현역신검 받으면 양안시력 차이 1.0 이상인 부동시는 군 면제란 말을 들었다. 군 면제 받으려고 안간 노력을 하는 사람을 보며 많은 생각의 차이를 느꼈다. 국가를 위해 군복무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특히 의사나 치과의사의 경우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병역특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군기피하는 사례를 보며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당시 내 주위에서 군 면제 받으려고 암암리 빽을 쓰거나 허위진단서로 기피하는 사례가 주위에 있었다. 그리고 신검 당시 과체중으로 면제 받기 위해 검사 당일 계속 물과 콜라를 먹으면서 체중을 늘리려는 모습이 안쓰러움을 떠나 불쌍해보였다. 군대 가고 싶은
얼핏 신비한 약물의 이름처럼 들리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입시를 관통하는 적나라한 신조어다. 2026년 3월 중순, 학회 발표를 위해 대만을 찾은 나는 가오슝의 시내를 걷고 있었다. 학회 사람들과 기분 좋게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밤 10시쯤이었다. 환하게 불이 켜진 빌딩의 벽에 중고등학생 아이들의 사진이 붙은 커다란 광고판이 보였다. 자세히 가서 보니 어느 학교 누가 영어 혹은 수학경시대회에서 몇 등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수분 후 비슷한 색깔의 체육복을 입고 시커먼 백팩을 맨 아이들이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밖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기다리던 수많은 어른들은 부모들이었나 보다. 아이들을 하나씩 태우고 총총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보통 내가 대만하면 떠올리는 건 반도체, 대만해협과 중국, 그리고 펑리수 과자 정도지만 그날은 거기서 대치동을 봤다. 자동차가 오토바이로 바뀐 것 빼곤 무엇이 다른가? 이런 익숙한 도시의 밤풍경을 한국과 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2021년 정부의 강력한 사교육 금지정책 이전까지 베이징과 상하이의 학원가에는 아이들을 데리러 나온 부모들의 차량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학군지의 코딱지 만한 집이 천가방(天价房, 하늘을 찌르
임용 후 어느덧 한 학기가 지났습니다. 3월 개강과 함께 시작된 새 학기에는 무려 여섯 과목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업무량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학교 측에서도 과목을 일부 줄여도 괜찮다는 배려를 먼저 건네주셨습니다. 그러나 선뜻 줄일 수 있는 과목은 없었습니다. 예방치과를 전공한 전임교원이 부재하던 시기에도 교육을 이어가기 위해 애써 온 대학의 노력과, 또 강의를 맡아주신 분들의 노고를 생각할 때 교육의 폭을 축소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기존에 사용하던 강의 교안을 그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과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실습 시수와 전체 수업 시간이 서로 달라 교안을 대폭 수정하거나 새롭게 작성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첫 수업이 단순한 개요 설명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준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막연했던 걱정은 점차 구체적인 고민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어지는 수업을 준비하면서 한때는 현실과 타협하여 AI 도구의 도움을 받아 교과서 중심의 강의를 구성해보기도 했습니다. 마치 전문 디자이너가 만든 듯한 정돈된 레이아웃에 교과서의 핵심 내용이 구성지게 나열된 자료가 몇 분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이를 보며 기술 발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인문학, 병원을 만나다>저자 리더는 답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병원의 원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료만 잘한다고 좋은 병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을 이끌고, 조직을 설계하고,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리더라는 역할을 제대로 배우고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서게 됩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그래서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학습’입니다. 그중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독서입니다. 책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대신 경험하게 해주는 가장 압축된 배움의 도구입니다. 좋은 리더는 혼자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 길을 걸어간 사람들의 생각을 빌립니다. 책을 통해 타인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특히 병원에서는 더 중요합니다. 환자, 직원, 시스템, 경영까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
요즘은 스트리밍 음원을 주로 이용하니 그렇지 않지만, 레코드나 CD음반을 틀면 곡과 곡 사이에 잠깐 조용한 간격이 있다. 어릴 적에는 음악이 계속 이어지지 않는 이 빈틈이 아쉬웠다. 특히나 재생시간이 정해진 카세트 테이프에 이 곡 간격이 용량을 차지하는 것이 아까워, 초시계를 들고 수신호를 해 가며 음악을 꽉꽉 채워 녹음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는 곡 간격의 적막이 주는 여운을 즐길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 삶이 복잡해지기 시작한 때문은 아닐까. 적막이 주는 평화를 극단적으로 체험하게 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위해 타곤 하던 옛150번 버스는 서울 서북부에서 출발해 중심가를 지나 한강대교를 건넌 다음 봉천고개를 넘어 경유해 서남권으로 주행하는 긴 노선이었다. 한강을 건넌 뒤에는 한동안 소강상태를 보이다 고개를 넘어갈 무렵부터 다시 손님이 차곤 했다. 그날은 시내에서 밀려 차가 연달아 지나갔는지, 중앙대 학생들이 우르르 내리고 나니 버스 안엔 나와 다른 손님 한분 그리고 기사님만 남았다. 평소와 다른 고요함도 잠시, 다음 정거장에서 엄청난 소리와 함께 초등학생들이 물밀 듯이 버스에 들이닥쳤다. 내 허리춤밖에 오
2026년 3월 현재, 중동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과 이란의 보복이 맞물리며 전쟁이 확전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충돌은 이미 수 주째 계속되고 있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과 주변 인프라를 둘러싼 압박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미국과 이스라엘도 추가 타격 가능성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사태는 전쟁이 더 이상 한 지역의 비극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세계 경제와 일상생활을 흔드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은 단 하나가 아닙니다. 흔히 사람들은 “누가 더 나쁜가”만을 묻지만, 실제 전쟁은 안보 불안, 역사적 기억, 영토와 해상 통로, 자원, 경제 제재, 정치 지도자의 계산이 겹치면서 발생합니다. 특히 국가는 자신이 공격받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믿기 쉬운데, 이런 사고방식은 상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죠. 그 결과 한쪽의 방어는 다른 쪽의 위협으로 보이고, 결국 상호 불신이 전쟁으로 번지게 됩니다. 이번 중동 위기에서도 군사 충돌 그 자체뿐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 에너지 수송, 역내 동맹 구도, 핵시설과 기반시설 문제가 모두 얽혀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