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최선을 다할게요. 선생님도 힘을 내주세요.” 치료받기 직전에 체어에 누운 채로 환자가 한 말이다. “너무 멋진 말이네요. 힘이 납니다.” 대답을 하고 치료를 시작하였다. 22년차 치과의사에게 환자의 의욕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저년차일 때에는 젊음과 패기로 식어가는 환자도 데워서 볼 수 있었지만 열정을 되찾기 위해 때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야 하는 고년차 치과의사에게, 차갑게 식은 환자를 마주하는 일은 참 난감한 일인 것 같다. 병원에서의 유대관계는 치유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다.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 의료진 간의 관계가 동맹의 관계가 되는 일은 대화가 선순환되도록 하기 위해, 치료행위가 무탈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조금 어렵더라도 의료진은 그 일을 해내야 한다. 선순환적 관계 형성, 치료의 성공을 반복하여 환자군 전체를 정화시켜 나가는 것이 원장이 해야 할 일이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좋은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 분위기부터가 관계에 있어서는 차갑게 식은 상태이다. 학교, 회사, 가게 등 모든 공간에서 인간관계라는 것은 예전보다 차가운 것이 되었다. 병원도 그 흐
▶▶▶이용권 원장(청주 서울좋은치과병원 임플란트센터장)이 본지 3036호부터 치과의사의 희로애락을 담은 ‘털보의사의 치과 엿보기!’ 만화를 연재한다. 이 원장은 서울치대를 나온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로 앞서 본지에 ‘만화로 보는 항생제’를 연재한 바 있다. ■ 이미지 클릭 후 드래그하면 고해상도 보기 가능합니다.
“치과에 전문과가 있었다고? 그럼 동네치과에선 왜 다 치료하지?”, “우리 엄마는 당뇨 합병증으로 약을 열 종류 넘게 드시는데, 왜 치과에선 복용 약을 안 물어볼까?” 국내외 제약회사와 의사를 상대로 조직·인사 컨설팅 20년을 해온 내가, 5년 전 치과 영역 업무를 시작하며 던진 질문 두 가지였다. 당시 전략기획 본부장으로서 임상학술·세미나·기획 전략을 총괄했다. 세미나를 좇아다니며 ‘전신질환과 치과 치료의 관계’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고, 친분 있던 분이 서울대학교 건강증진센터장으로 가면서 “센터에서 가장 많이 보는 질환이 치주염”이라고 사석에서 말해줘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더 빨라졌다. 의료 콘텐츠를 만드는 게 내 일이어서 주말마다 연하 장애나 기능의학 관련 학회에 다녔다. 연하 장애나 기능의학 관련 학회에서는 구강건강을 엄청 많이 다루는데, 그럴 때는 ‘왜 이 강의에 연자가 치과의사가 아닐까? 치과의사여야 한다는 개념도 없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과 학회에 가서 약물 복용과 전신 질환, 그리고 마취 관련 강의를 들으면 ‘이런 강의는 관련 전문의들이 하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물음이 들 때가 많았다. 특히, 레퍼런스가 오래된 경
대한치과의사협회 자재·표준위원회에서는 국제표준화기구 치과기술위원회(ISO/TC 106)에서 심의가 끝나 최근 발행된 치과 표준을 소개하는 기획연재를 2014년 2월부터 매달 게재하고 있습니다. 환자 진료와 치과산업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국제표준화기구/치과전문위원회(ISO/TC 106)에서 디지털 인상 기기 - 제2부: 이식된 기기를 위한 정확도 평가 방법(Dentistry - Digital impression devices - Part 2: Methods for assessing accuracy for implanted devices)에 대한 국제표준을 제·개정하는 소위원회(Sub-Committee, SC)는 SC 9이며 해당 분과 중 디지털 인상 기기(Digital impression)를 담당하는 작업반(Working Group, WG)은 WG 3이다. SC 9/ WG 3의 의장 격인 컨비너(Convenor)는 미국의 치과의사인 Jacob Park이, 간사(Secretary)는 일본표준협회(JISC)의 Ichiro Mukai가 수임하고 있다. ○ 본 연재에서는 치과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인상 기기의 정확도 평가 방법들 중에서 이식된 기기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단어는 18세기 초 독일 산림학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벌목량이 산림의 재생산량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원칙으로 환경적 측면이 강조되었고 1987년 유엔산하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가 발표한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 보고서에서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시키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라고 정의해서 2025년 현재까지 핵심가치로 정의되고 있다. ESG가 기업의 핵심 경영 요소로 부각되었으나 모호성과 규제 부담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약화되고 트럼프 정부 들어서 기후협약 등을 탈퇴하면서 속도가 조절되고 있으나 내막을 들여다 보면 지속가능성은 보다 근본적이고 통합적인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 정부ㆍ소비자ㆍ지역사회, 그리고 다음 세대까지 포함하는 모든 관계자가 함께 추구해야 할 공동의 가치로 해석된다. 국민을 위한 지속가능한 치과의료 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참여자의 역할과 협력이 절실하다. 정부는 효율적 정책을 채택하고 치과계는 양질의 치과의료 공급을, 의료소비자인 국민은 생애 전 주기에 걸쳐 건강한 구강관리를 받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6ㆍ3
날씨가 삽시간에 더워졌다. 며칠 전 시골의 어머니께서 인편에 나물을 보내주셨는데, 잠시 집을 비워야 해서 당장 먹지 못하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집에 돌아와 혹시나 하고 냉장고를 들여다보니, 정성스레 싸 주신 나물이 이미 물러 향이 변해버렸다. 냉장고 안에서도 굳세게 자란 미생물 때문이다. 외부 기온이 올라가면 냉장고 안이라도 영향을 받는 법인데, 그간 서늘했던 터라 온도 셋팅을 낮춰 놓지 못한 탓도 있다. 그렇지만 열흘도 더 전에 시골에서 직접 가져와서 냉장고에 넣어둔 열무김치는 알맞게 익어 새콤한 냄새를 내뿜고 있었다. 같은 냉장고 안에서도 사정이 다름은 나물은 부패하고 열무김치는 발효되었기 때문이다. 발효와 부패는 둘 다 미생물에 의해 유기물이 작은 분자로 분해되는 작용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썩는 것이다. 썩는 작용은 물질의 성상을 바꾸고 나쁜 냄새나 유독성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음식이라면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부패(腐敗)이다. 부패를 언중이 어찌나 나쁘게 생각하는지, 국어사전에서 부패를 찾으면 유기물의 분해보다 정치, 사상, 의식의 타락이라는 뜻이 앞서 나오고 부정(不正)을 동반해 부정부패라는 성어가 먼저 검색된다. 발효
지난 2025년 1월 31일, 대한노년치의학회 주관으로 일본 후쿠오카대학교 치과병원을 방문했다. 초고령 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의 치과의료 시스템, 특히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방문 치과 진료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이번 워크숍은 ▲병원 견학 ▲구강연하(삼킴) 클리닉 ▲고령자 요양시설 탐방 ▲방문 치과 진료 참관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중 필자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관찰했던 부분은 방문 치과 진료였다. 후쿠오카대학교 치과병원은 1972년 ‘후쿠오카치과진료소’로 시작해 1973년 부속병원으로 전환되었고, 1974년 내과, 1975년 외과를 병설하면서 ‘구강 건강을 통해 전신 건강을 지킨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치과 중심의 통합형 의료기관으로 발전해왔다. 이 병원에는 ‘노인치과(Geriatric Dentistry)’와 ‘방문치과(Visiting Dentistry)’가 각각 독립된 진료과와 센터로 운영되고 있으며, 인근에는 개호노인보건시설 ‘선샤인시티’, 요양원 ‘선샤인플라자’ 등이 위치해 실질적인 의료-복지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방문 치과는 병원 방문이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의료진이 자택이나 요양시설, 혹은 치과가 없는 병원에
▶▶▶이용권 원장(청주 서울좋은치과병원 임플란트센터장)이 본지 3036호부터 치과의사의 희로애락을 담은 ‘털보의사의 치과 엿보기!’ 만화를 연재한다. 이 원장은 서울치대를 나온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로 앞서 본지에 ‘만화로 보는 항생제’를 연재한 바 있다. ■ 이미지 클릭 후 드래그하면 고해상도 보기 가능합니다.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 장산도. 들어본 적도, 미디어에서 접한 적도 없던 이름이었다. 지도 어딘가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던, 나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섬이었다. 직전 근무지는 같은 신안군의 안좌도였다. 목포에서 대교 4개를 건너야 닿는 연륙도. 섬이긴 했지만 도로가 이어져 있었고 택배도 가능했다. 이삿짐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없었다. 불편함은 있지만 불가능은 없던 곳. 그래서였을까? 장산도로 향하던 날 나는 ‘배만 타고 들어가면 비슷하겠지’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큰 오산이었다. 이삿짐센터 차량이 섬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처음, ‘들어간다’라는 말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렇게 목포에서 카니발 차량을 빌려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침대, 책상, 컴퓨터, TV 등 큰 짐과 함께 왕복 여러 번의 이사를 시작했다. 하루에 세 번뿐인 배편에 맞춰 차를 실어 날랐고, 섬과 육지를 오가는 이사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그렇게 치과의사 한 명, 의사 두 명, 한의사 한 명의 장산도 생활이 시작되었다. 총 네 명이 조용한 섬마을의 유일한 의료인이었다. 장산도에는 병원도, 약국도, 심지어 편의점 하나조차 없었다. 전국 어느 읍내에나 있는 것들이
시집 ‘그림 위에 앉은 시’를 출간한 이후 간간이 써 두었던 짧은 글을 정리하며 재밋거리로 읽을 만한 산문집 ‘꿈을 꾸는 수달이’란 제목으로 5집을 엮었다. 시론의 집필위원이 된지 5년이 다 되어 간다. 여전히 아쉬움을 느끼지만 격려해 주는 동료가 있어 힘이 된다. 언제까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에 남는 한 줄을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일기가 수필이 되고 축약하면 시가 된다는 필자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했다. 날로 갈수록 종이책을 읽기가 어려워지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임팩트 있는 내용을 위해 여러 종류의 글을 담았다. 치의신보의 ‘시론’에 게재했던 글을 중심으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완성하였다. 대부분 체험을 통한 시와 글이지만 재미를 위해 수필,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산문과 예전에 써둔 단편소설을 몇 편 수록했다. 누군가가 작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을 내놓는 것이라고 하였다. 비록 무명작가이긴 하지만 드물게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원고 청탁도 받게 되니까 더욱 신중해진다. 필자가 올린 글 중에는 처음부터 산문으로 쓴 글도 있지만, 시를 완성하고 난 후 그 시를 토대로 산문을 쓴 글이 대부분이다. 필자의 지도 선생님께서 시인은 시를 쓰지만 산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중년의 여환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주기적으로 구강관리를 받던 분이었고, 구강건강 상태나 자가관리가 양호하여 1년 간격 내원을 권유하여도 굳이 6개월 방문을 희망하는 분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원이 끊겼습니다. 오랜만의 재회가 마냥 달갑지만 않았던 것은, 이동식 산소공급기와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폐 섬유증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고작 몇 문장을 구사하는 데에도 숨이 가쁘게 차오르는 아내를 보며, 보호자인 남편은 이 상황에 스케일링이 중요하냐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구강관리를 진행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환자는 그조차 무리가 되었는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목소리로 이제 진료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무조건 돌려보내야지, 확신으로 돌아서려는 순간입니다. ‘선생님, 제가, 이전에, 받던, 만큼은, 아니더라도, 개운하게, 꼭, 받고, 싶어요.’ 숨 가쁜 목소리에 힘이라고는 없지만, 전달되는 의미만큼은 명료합니다. 오늘 진료 VIP는 이 분이구나, 확신이 다시 돌아섭니다. 휠체어 상태 그대로 전문가 잇솔질을 진행합니다. 두 줄 모 칫솔을 이용한 소위 ‘와타나베’ 방법을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