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과 21일, 저 멀리 캐나다 토론토에서 ‘제19회 메가젠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토론토는 치과용 임플란트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어렴풋이라도 들어봤을 ‘토론토 컨퍼런스’가 열렸던 역사적인 도시이다. 1982년 5월, 이곳에서는 현대 임플란트 치의학의 흐름을 바꾼 기념비적 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번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반세기 전 그 역사적 현장을 지켰고, 다시 토론토를 찾은 거인 토마스 알브렉트손(Thomas Albrektsson) 교수를 만났다. 그는 지금도 ‘American College of Prosthodontists’ 웹사이트 내 P.-I. 브레네마크(Brånemark) 아카이브, 1982년 토론토 컨퍼런스 참석자 명단, 첫 페이지 왼쪽 컬럼 세 번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이다. 구글 스칼라 첫 화면 하단에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Stand on the shoulders of giants)’ 라는 문구가 있다. 이 표현은 시대를 가로지르는 물리학의 스승, 아이작 뉴턴의 말로 알려져 있으나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구로, 선대의 지식과 업적 위에 올라섰기에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
1. 실장 부재가 드러낸 조직의 민낯 컨설팅 방문 첫날, 실장이 병가를 내자 진료실 전체가 우왕좌왕했다. 경력 5~7년 직원들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실장님이 안 계셔서요”만 되풀이했다. 이는 단순한 인사 공백이 아니라, 모든 판단이 실장 한 사람에게 집중된 구조적 문제였다. 뛰어난 한 사람이 아닌, 조직의 ‘중간’이 얼마나 단단한가가 병원의 성패를 결정한다. 2. 서비스와 호스피탈리티 - 무엇이 다른가 치과 현장에서 ‘서비스’와 ‘호스피탈리티’는 종종 같은 말처럼 쓰이지만, 본질은 전혀 다르다. 서비스는 매뉴얼과 절차로 만들어진다. 예약 확인 전화, 대기 시간 안내, 컴플레인 처리 순서 - 이것들은 훈련하면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 할 수 있다. 호스피탈리티는 다르다. 호스피탈리티는 상대방이 말하기 전에 먼저 필요를 알아채고, 진심으로 환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매뉴얼이 아니라 사람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랫동안 같은 환자를 봐온 직원이 “오늘은 설명을 한 번 더 드려야 할 것 같아요”라고 짚어주는 순간 - 그것이 바로 호스피탈리티다. 서비스는 시스템이 만들 수 있지만, 호스피탈리티는 자발성이 있는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발성은, 판단할 권한
최근 마곡 코엑스에서 열린 2026년 구강보건의 날 기념 포럼에 다녀왔다. 올해 본격 시행에 들어간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에 발맞추어, 초고령사회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 내 구강보건 시스템 구축’을 다룬 자리였다. 발표 내용은 훌륭했다. 그런데 연자의 설명을 듣는 동안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발표자는 구강보건의 중요성을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논리의 기저에는 “치과는 생명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삶의 질(QOL)을 위해 중요하다”는 오랜 관성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이다. 우리 사회는 물론,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치과를 생명과는 무관한 부차적인 ‘웰빙’의 영역으로 당연하게 격하시켜 왔다는 사실이다. 부끄럽게도 반세기 넘게 치과의사로 살아온 나 역시 그 관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잘 씹고, 잘 먹고, 잘 말하고, 잘 웃게 해주니 치과는 중요하다며, ‘삶의 질 향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만 위안을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구강보건은 삶의 질을 높이는 윤활유가 아니다. 인간의 건강수명과 생사의 기로를 결정짓는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다. 1972년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나는 눈꽃으로 뒤덮인 삿포로에서 3년하고 반을 보냈다. 유년 시절을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곳에서 자라서 그랬을까, 어릴 때부터 강아지처럼 눈을 좋아했다. 그래서 박사과정을 하며 삿포로에서의 눈과 함께 지냈던 겨울 일상이, 불편함보다는 깨끗한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포근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로 남아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포슬포슬한 눈길을 걷던 순간들과 하얀 거품이 흘러내리는 삿포로 클래식 맥주가 생각난다. 얼마 전 학생들과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홋카이도대학과의 교류 행사를 위해 일주일간 삿포로에 머물렀다. 눈이 수북하게 쌓인 거리와 펑펑 눈이 내리는 날씨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건만, 따뜻한 날씨에 눈이 다 녹아버린 삿포로 시내의 거리는 발을 디딜 때 마다 흙탕물이 올라오지 않는가. 학생들이 적잖이 실망한 듯하나 미끄러운 눈길 대신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대신 한결 가벼워진 길 위를 다니며 일본의 여러 음식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이것저것 새롭게 먹어보는 것이 제법 재밌는 모양새다. 길모퉁이마다 있는 편의점에서 보이는 여러 빵이나 음료 하나하나도 한국과 다른 독특한 맛을 찾아내고 경험해 본다. 작년 이
동료 의사들 앞에서 내 진료와 경험을 소개하는 강연을 한 지도 3년쯤 됐다. 이제는 연단에 서는 일이 제법 익숙해졌고 초보 티도 벗어났다. 처음엔 국내 동료들 앞에 섰고 지난해부터는 일본과 미국으로 날아가 현지 의사들에게 강연하고 실습도 지도한다. 강연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될 거라고는 개원할 땐 상상하지 못했다. 부족한 내 임상에 꾸준히 귀를 기울여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건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돌이켜보면 강연 활동은 진료실 안팎의 나를 바꿔놓았다. 진료실 안에서의 변화는 ‘설명할 수 있는 진료’를 한다는 점이다. 혼자 진료할 때는 내 판단과 직관에 따라 진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수십 명의 동료 의사 앞에서 ‘내가 왜 이렇게 치료했는가’를 풀어내려면 그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머릿속에서 직관적으로 내리던 결정들을 학문적 근거와 함께 말로 정리해 두어야 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진료실에서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에는 전보다 설득력 있는 이유가 따라붙게 됐다. 진료실 밖에서의 변화는 ‘기록의 일상화’다. 로컬에서 임상을 시작해 박사 과정만 따로 밟은 나에게는 진료 전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 처음부터 익숙하진 않았다. 강연
비행기 이륙 전, 승무원은 늘 같은 안내를 반복합니다. “기내 압력이 떨어지면 산소마스크를 본인이 먼저 착용한 후, 옆의 아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십시오.” 이 말이 비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기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숨을 쉬지 못하면, 그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문득 치과의사들의 삶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환자의 통증과 불편감을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숨을 참아온 것은 아닐까요? 환자를 돕기 위해 정작 본인의 산소마스크는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것은 아닐까요? 나를 지우고 환자에게만 몰입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이미 실습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국가고시 실기 시험장, 프렙 과정 중 인접치를 1mm 건드리는 것은 치명적인 결격 사유가 되지만, 치과의사의 허리가 몇 도로 굽었는지, 목이 얼마나 비틀렸는지는 당락에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학생 시절 자세를 포기하면서 시야를 확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간접 시야(Indirect vision)를 통한 바른 자세는 치과의사가 평생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생존 기술임에도, 눈앞의 결과물을 위해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결국 환자의 치아를 살리는 법을 배우는 대가로
해외 봉사에 관심이 많아 서울대 치과대학에서 진행하는 캄보디아 진료 봉사도 몇 번 가봤지만, 이번에 대한여성치과의사회(이하 대여치)에서 진행한 필리핀 세부 치과 진료 봉사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봉사활동이라 함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내가 가진 기술과 지식을 제공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세부의 밝고 맑은 아이들과 함께하며 오히려 내가 더 충만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이었다. 처음 보는 우리가 낯설 만도 한데, 조금은 피곤한 모습으로 도착한 우리들을 세부의 현지 학교 아이들과 수녀님들이 정말 반갑게 우리를 환대해 주셨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환영에 몇 시간 여정의 피로를 모두 잊을 수 있었다. 대여치 치과의사 선생님들이 체어에서 치과 진료를 진행하시는 동안, 나를 포함한 치과대학 본과 학생들(제2기 학생홍보기자)은 현지 아이들에게 TBI 교육을 진행했다. 다들 능숙한 영어로 TBI 교육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잘 이해했는지 직접 시켜보기도 하면서 각자 위치에서 봉사에 최선을 다했다. 일하고 먹는 밥은 특히 정말 맛있었다! 혹시 나중에 대여치 세부 의료 봉사에 참여할지 고민하는 분
주변 덤핑치과에서 치아가 아픈데 신경관이 막혀 치료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개로 우리 치과에 내원하신 40대 후반의 여성 환자분입니다. 이미 4개의 임플란트가 심어져 있었고 곧 이 치아도 임플란트로 치료가 되겠지요. 그렇게 잘 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면 치료를 못할 것도 아닐 것 같아서 열심히 치료를 해보았습니다. 사실 이 케이스는 꽤나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근관의 석회화가 심해서 근관입구 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 근관의 입구를 간신히 찾았지만 도대체 파일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세 번의 내원 만에 간신히 협측의 두 개의 근관을 치료하고 기쁜 마음으로 X-ray를 찍어 보니 아뿔사! 근심협측에 근관이 하나 더 있는 케이스. 이 것 역시 많은 시간과 무수히 많은 기구와 재료를 허비하며 간신히 치료를 완료하였습니다. long shank round bur로 깨작거리며 치수강 바닥을 삭제하고 하염없이 endodontic explorer로 찍고 또 X-ray를 찍으며 치료하며 든 생각... 이럴 동안에 임플란트 10개는 심겠네.... 파레토 법칙(80:20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상위 20%의 제품군이 전체 매출의
12시간의 긴 비행 끝에 도착한 미국 입국 과정은 예상치 못한 경험으로 시작되었다. 입국 심사 과정에서 별도의 심층 인터뷰 공간인 secondary inspection으로 안내되어, 혼자 입국한 이유, 방문 목적, 직업 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학회 초청장, 숙소 예약 내역, 치과의사 면허증 등 관련 서류를 미리 준비해둔 덕분에 큰 문제없이 입국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럽고 긴장되는 순간이었지만, 최근 국제 정세로 인해 입국 절차가 엄격해졌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고,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따뜻한 캘리포니아의 날씨와 처음 느껴보는 미국의 분위기는 긴장감을 금세 설렘으로 바꾸어 주었다. 이번 2026 IADR/AADOCR/CADR General Session & Exhibition은 2026년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샌디에고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첫날 학회장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훨씬 넓은 규모에 놀랐다. 학회장을 둘러보는 데만 1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로 다양한 세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고, 그만큼 볼거리도 많았다. 임상뿐 아니라 기초 연구 분야까지 폭넓은 강의가
1996년 4월에 첫 진료를 시작한 이래도 어느던 시간이 30년이나 흘렀습니다. 중간에 우여곡절도 많았고, 재작년에 공동개원은 아름답게 마무리해서 독립적인 병원운영을 시작했지만 소아치과 진료의 역사는 하나로 이어져왔습니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 30주년 기념행사를 가지기로 결정했는데 그러다보니 준비하면서 마음 한편에는 작은 걱정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직원들을 초대하고, 또 협력업체 대표님들과 현재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일 수 있는데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과연 그 분위기가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직원들과 진행과정을 하나하나 점검해가면서 준비하는데 그것 자체가 기쁨이고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행사날, 시간은 되어서 참석의사를 밝혔던 분들이 한, 두분씩 입장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는데 가졌던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드림분당예치과병원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가 오고갔고, 10분도 안되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본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자리마다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이것을 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기에 이 병원에 몸담았
내가 치과대학을 졸업할 때 가졌던 생각은 단순했다. “이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으니 사회에 나가면 꽤 괜찮게 살겠지.” 지금 생각하면 다소 순진한 기대였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이런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부모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서울대 가서 치과대학만 졸업하면 인생 편하다” “딴 생각 말고 공부만 해라” 심지어 “예쁜 여자들이 줄 설 거다”라는 농담 같은 이야기도 공부의 동기부여가 되던 시대였다. 당시 이런 말이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사법고시와 같은 시험을 통과하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직이라는 직업 자체가 희소했고, 그 희소성은 곧 사회적 보상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문직이라는 타이틀만으로 안정된 삶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대학 이름이나 직업만으로 자동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따라오는 시대도 함께 끝났다. 서울대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세상이 특별하게 대우해 주는 일은 없다. 사람들은 그저 “저 사람은 성실하고 공부를 잘했겠구나”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어떤 사람은 농담처럼 말한다. “서울대 나오면 연애도 잘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