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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공유하는 선택

시론

방송에서 오징어게임 패러디를 하여 설탕과자 오려내기, 뽑기로 ‘선택 2022’의 선거 참여 홍보를 하고 있다. 물론 투표 표기마크가 부러진 연예인들도 설탕과자 뽑기보다는 더 신중하게 투표를 할 것이라 기대한다. 전 국민이 하나의 선택을 앞에 두고 어쩌면 만(萬)가지 생각과 고민을 하는 시기이고, 이 글이 게재되어 있을 즈음에는 그 결과도 알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선택은 자주 있는 선택 기회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아주 잦게, 특히 치과인으로서는 실제 진료과정에서 매 초마다 선택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판단을 하게 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자주 듣는 말이 있고, 영어 알파벳 B-C-D 순서대로 Birth(출생)과 Death(죽음) 사이에는 Choice(선택)으로 채워진다는 말이 참으로 그럴듯하다.

 

어떤 선택은 돌이킬수 있는 선택이기도 하지만 번복하거나 되돌릴수 없는 비가역적 선택인 경우도 있다. 수 초만에 이루어지는 선택도 있고 수 개월에 걸친 고민으로 이루어지는 선택도 있다. 어떤 선택은 나를 위한 것도 있고 가족을 위한 것도 있고 크게는 조직을 위한 것 그리고 나라를 위한 선택도 있다. 수 초만에 한 선택이 수 개월에 걸친 선택보다 가치가 낮거나 실패 확률이 높은 것은 아니고, 나만을 위한 선택이 가족을 위한 선택보다 가치가 낮다고도 할 수 없다. 조직을 위한 선택이 나에게는 특별히 도움이나 이익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오늘 내가 한 선택이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타인을 위한 것 혹은 미래의 누군가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본다.

 

근관치료를 할 것인가 발치 후 임플란트를 할 것인가, 근관치료를 한다면 근관확대를 30번에서 멈출 것인가 좀 더 크게 40번까지 할 것인가, 초음파 세척 기구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일상의 진료실에서 진행하는 이런 선택들이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임플란트는 당연히 술자보다는 환자를 더 많이 위한 선택일 것이고 그래야만 더 가치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극히 드문 일이겠지만 술자를 위한 임플란트의 선택은 당연히 그 가치는 폄훼될 수 있고 폄훼되어 마땅하다. 임플란트 식립 선택은 최소 수 분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30번까지만 확대하는 것이 감염 잔존의 원인이 되어 치료실패의 가능성을 높일 것을 예상하고도 멈춘다면 가치롭지 못한 선택이겠지만, 40번 크기의 과도한 확대가 치근파절이나 근단공 주변의 크랙을 유발할 위험이 있어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는 가치로운 30번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이런 선택은 보통 수 초 이내로 이루어져야 한다. 선택에 소요되는 시간에 따라 주어지는 의료수가(酬價)는 아닐진데 글을 쓰다보니 혹시나 그런가 싶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의료인에게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 나만을 위한 것이나 조직을 위한 것이 주(主)가 아닌 환자를 위한 것이라면, 다른 일상의 선택은 주로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해서인가, 가족을 위함인가, 혹은 또 다른 다수 대중을 위한 선택인가? 그 선택의 가치는 수혜자의 폭이나 영향력만큼 더 가치가 커지고 중요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수많은 선택을 하는 삶을 살지만, 본인의 삶의 시작인 출생은 본인의 선택이 아니고 죽음 또한 본인의 선택은 아닐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본인이 행하는 선택에 의해 새로운 삶의 탄생을 만들거나 영향을 줄 수 있고 다른 생명의 끝맺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만큼 선택의 결과는 무겁기도 하다. 1초의 선택이건 1시간의 선택이건 1년의 선택이건 그 무게는 선택한 사람만의 것이 아닌 함께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타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은 혹 선택받지 못한 나의 주장에 생명력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를 위한 선택과 모두를 위한 선택이 공존하는 선택이 가장 행복하고 가치로운 선택이 될 것이지만, 나만의 기쁨을 위한 선택보다는 나에게 불리하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면 그 가치는 더 클 가능성이 많다.

 

단체장이건 대통령이건 선거라는 선출 과정 후에는 선택을 받은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선택받은 쪽은 선택받지 못한 쪽의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살피고, 더 많이 지지받지 못한 쪽은 선택받은 쪽의 ‘건전한’ 비평자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선택의 존중이 그 가치를 더욱 높게 할 것이다. 1과 2사이에 무한의 수가 존재하고 디지털 개념으로 정의할 수 없는 많은 아날로그의 상황과 가치들이 존재한다. 이를 이해하고 존중하여야 하는 것처럼 나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선택도 존중받아야 1과 2가 동떨어져 있지 않고 무한수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 조직이 우리 사회가 촘촘한 유기적인 관계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엔도를 선택하는 것은 어차피 술자의 이익을 만드는 것이 아님이 자명하니 최선의 근관치료를 하는 모두 복받을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