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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식물생활

Relay Essay 제2515번째

처음 공보의로 발령을 받을 때만 해도 여러 가지 꿈에 부풀어 있었다. 주로 학교 다닐 동안 못했던 취미에 대한 기대였다. 나는 활동적인 편이라 낚시, 캠핑, 여행, 골프 등 주로 밖에서 즐기는 취미들을 해보고자 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공보의들이 그렇듯 기대와는 조금 다른 환경과 생활이 펼쳐지기 마련이고, 나 역시 꽤나 규칙적이고 폐쇄적인 생활을 요하는 지방의 어느 교도소 공보의로 부임하게 되었다.

 

정시 출퇴근과 교도소 내 관사에서의 삶은 운신의 폭을 생각보다 한정적으로 만들었고, 당연히, 심심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앞서 말한 취미들을 모두 경험하기에는 시간도 나지 않고 흥미도 생각만큼 동하지 않았다. 업무 외 시간 대부분을 관사에서 지내다 보니 삭막한 관사가 싫어 농협 하나로마트에 파는 스파티필름이라는 국민 식물을 들여와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 스파티필름을 바닥에 물구멍도 안 뚫린 화분에 옮겨 심고 방구석에 두었다. 물주기도 귀찮아서 물이 찰랑찰랑할 정도로 따라놓았더니 2주가 지나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 하지만 죽지도 않고 꽃도 피우길래 ‘요즘 식물은 강한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식물 하나로는 허전하기도 하고, 대충 키우는 데도 조금씩 커가는 스파티필름을 보며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 나는 공기 정화 식물로 잘 알려진 테이블 야자를 들여오게 되었다.

 

사람은 역경을 극복하면서 쑥쑥 성장하는 것 같다. 이 테이블 야자를 키우며 내 식물에 대한 지식과 애정도도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잎 끝이 타들어가며 말라 죽어가는 테이블 야자를 보며 왜 죽는지 이유를 몰라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원인이 초보 식물 집사들이 흔히 하는 실수인 과습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때는 영양이 부족한가 싶어 식물 영양제를 꽂거나 너무 강한 빛에 타버린건가 싶어 그늘에 두는 등 실수를 거듭하다 그만 초록별로 보내버리고 말았다.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상실감에 그때부터 식물을 닥치는 대로 사 모으기 시작했다. 저렴하면서도 키우기 쉬운 식물들인 홍콩야자, 페페로미아, 산세베리아, 몬스테라, 고무나무, 로즈마리, 다육이 등이었다. 파릇파릇해지는 내 방을 보면 기분도 전환되고, 가끔씩 새잎을 틔워주는 식물들을 보며 뿌듯함도 느꼈다. 더 이상 식물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분갈이 흙 배합을 위해 다양한 흙 배합 재료들을 구매하였고, 식물 조명도 하나, 둘 구매하기 시작하였다. 대충 물만 부어놔도 자라던 스파티필름과는 달리 보통의 식물들은 흙의 상태, 화분의 종류, 온습도, 식물의 종류, 빛의 세기, 통풍 등에 따라 물주는 시기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때 이후로는 식물을 웬만해선 죽이지 않게 되었다.

 

이때부터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값비싼 희귀 식물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여느 때처럼 식물 관련 인터넷 서칭을 하던 중 ‘몬스테라 알보’라는 식물을 보게 되었다. 일반적인 몬스테라의 생김새에 하얀 무늬가 멋들어지게 들어간 식물이었다. 나는 보자마자 그 식물에 꽂혀버렸다. 하지만 유명 식물 판매 사이트에서 가격표를 보고는 얼어붙고 말았다. 식물 하나에 수백만 원에 이르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코로나 시국에 맞물려 희귀 식물에 대한 수요가 몰렸고, 해외 식물 수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며 공급마저 줄어들면서 높은 가격을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알보’라는 이름은 흰색이 발현되는 무늬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에 붙었고, 키우기에 따라 다시 초록 잎이 나올 수도 있고 ‘고스트’라 불리는 하얀 잎이 나올 수도 있는 등 재배 난이도까지 높은 식물이었다.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초록색이 된다거나 고스트가 되어 성장을 멈춘다면 너무나 마음이 아플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당근마켓과 중고나라를 들락거리며 가성비 좋은 몬스테라 알보를 찾고 있었다. 다행히 무늬가 이쁘지 않거나, 아직 어린 유묘 같은 경우엔 몇십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그러기를 며칠, 50만 원짜리 작고 소중한 개체를 입양하며 내 두 번째 식물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새로 들여온 몬스테라 알보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새잎도 내지 않았으며 노랗게 변해갔다. 그때부터 나는 그동안 공부한 식물 지식을 총동원하여 분갈이도 하고 미니 온실도 꾸며주며 특별 관리를 해주기 시작했다. 그 후 뿌리를 다시 내리며 나날이 생기를 되찾아가는 모습에 흐뭇해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기존에 키우던 식물들 외에도 무늬 프라이덱, 무늬 아단소니, 안스리움류, 필로덴드론류 식물 등 여러 희귀 식물들을 키우고 있다. 한창 ‘식테크’ 열풍이 불던 시기보다 가격이 많이 내려가 하나, 둘 수집하는 데도 크게 부담되지 않고 인테리어 요소로도 좋으며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 잎이 무성해지면 삽목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기쁨도 있다. 공보의 특성상 주말마다 관사를 비우는 경우가 많은데, 복귀하여 대문을 열면 새잎을 내고 기다리고 있을 식물들 덕분에 두근두근하며 귀가하곤 한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나의 관심과 사랑을 기다리는 반려식물을 키워보는 즐거움. 한 번 느껴보시길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