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방문 진료 가방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구강건강 통합돌봄사업의 일환으로 92세 어르신과 63세 장애인 따님을 찾아가는 날이었다. 따님은 34년 전 연탄가스 사고로 의식을 잃은 이후 지금까지 코를 통해 영양을 공급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 침상에서 지냈지만 예상과는 달리 구강 상태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단단한 치석이 있었지만 심한 염증과 치아의 동요도는 보이지 않았고, 활동지원사께서 하루 두 차례 거즈로 구강을 닦아주며 꾸준히 관리하고 계셨다. 치과의사의 손길보다 매일 이어지는 돌봄의 손길이 구강 건강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92세 어르신은 상악 국소의치와 최근 제작한 하악 총의치를 가지고 계셨다. 아래 틀니가 불편하다고 하셨지만, 얼마 전 인근 치과에서 진료를 받으셨고 의치의 상태도 치조골 흡수에 비하여 양호했다. 최근 심장 스텐트 시술을 다시 받으셨고 파킨슨병 치료도 받고 계신다고 한다. 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분의 삶이었다. 권사님이신 어르신은 34년 동안 의식 없는 딸을 돌보며 살아오셨다. 최근 10여 년은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오고 있었고, 현재는 와상 상태의 딸을 위해 야간에도 활동지원
살다 보면 한 번쯤은 누군가를 미워하게 된다. 사람을 어디까지 미워해 봤는가? 거슬리는 단계를 넘어 안 봐도 존재 자체가 일상의 장애물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미움이 깊어질수록 기괴한 의문이 싹튼다. 정말 그가 미운 것일까, 아니면 미워하는 일에 중독된 것일까. 그를 절대악으로 규정해야만 나의 포악함과 옹졸함이 정당한 분노처럼 보여서일까. 내 마음속 법정은 그를 심판하는 곳이 아니라, 내 정당성을 증명하려는 변명의 장인지도 모른다. 미움에 관성이 붙으면 현미경 보듯 그의 결점을 기록한다. 숨소리도 유죄다. 사실 이유는 필요 없다. 이런 증오는 내 과오를 지우기 위한 몸부림일 수 있다. 기억하기 싫은 모습을 그에게 씌워 처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게 없는 그의 반짝임을 파괴해버리겠다는 비겁한 심술일지도. 미움이라는 외피를 두른 질투 말이다. 미움을 내려놓는 일은 용서보다 버겁다. 분노를 거두는 순간, 감춰온 내 상처와 결핍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보다 익숙한 증오를 붙든다. 미움은 상대를 묶는 밧줄 같지만, 실은 가장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오래 붙잡고 있었던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지독한 소모전 끝에 미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 후회되는 일을 바꿀 수 있다면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는 늘 완벽한 하루를 꿈꾼다. 하루를 끝내고 잠자리에 누우면 후회되고 아쉬운 일이 꼭 있다. 우린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나온다. 그는 변호사 인데, 실수하면 과거로 돌아가 다시 고치곤 한다. 하지만 그는 과거로 돌아가 실수를 고치지만 그 결과가 그가 예상하는 좋은 결과일수도 있지만 안 좋은 결과일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후로 최선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완벽한 삶을 꿈꾸어 본다. 삶이란 하루하루의 연속이므로 완벽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나의 취미는 골프인데 하나의 실수도 없는 노보기 플레이 완벽한 골프라운딩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완벽한 한 홀 한 홀을 보낸 적이 수없이 많으나 어느 한순간 긴장을 늦추거나 방심해 스코어를 망치게 된다. 그것도 한 번의 실수로. 그 실수만 없었더라면.... 그저 난 완벽한 하루를 살아보겠노라고 다
보름달이 비치는 귀국 비행기의 창문에 기대어 엊그제 있었던 워크숍을 되돌아본다. 2009년 양국 교류가 시작된 이래 햇수로 17년, 워크숍으로는 2011년 제1회 이후 제10회를 맞는 몽골치주학회(Mongolian Association of Periodontology, MAP)와 대한치주과학회(Korean Academy of Periodontology, KAP)의 교육 워크숍(The 10th Educational Workshop of MAP and KAP)이 6월 26-27일 양일간 울란바토르 Holiday Inn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요청받은 대주제, ‘Management of Soft and Hard Tissue in Implant Dentistry’를 살펴보니 임플란트의 합병증 관리나 예방이 몽골에서도 화두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약 3개월간 양승민 부회장(삼성서울병원 교수), 윤정호 국제이사(전북대 교수), 구 영 고문(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정 국제실행이사(관악서울대학교치과병원 교수)와 함께 워크숍 프로그램을 준비한 끝에 울란바토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내 식사에 이어 뜻밖에 제공된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베이징을
지난 6월 20일과 21일, 저 멀리 캐나다 토론토에서 ‘제19회 메가젠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토론토는 치과용 임플란트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어렴풋이라도 들어봤을 ‘토론토 컨퍼런스’가 열렸던 역사적인 도시이다. 1982년 5월, 이곳에서는 현대 임플란트 치의학의 흐름을 바꾼 기념비적 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번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반세기 전 그 역사적 현장을 지켰고, 다시 토론토를 찾은 거인 토마스 알브렉트손(Thomas Albrektsson) 교수를 만났다. 그는 지금도 ‘American College of Prosthodontists’ 웹사이트 내 P.-I. 브레네마크(Brånemark) 아카이브, 1982년 토론토 컨퍼런스 참석자 명단, 첫 페이지 왼쪽 컬럼 세 번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이다. 구글 스칼라 첫 화면 하단에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Stand on the shoulders of giants)’ 라는 문구가 있다. 이 표현은 시대를 가로지르는 물리학의 스승, 아이작 뉴턴의 말로 알려져 있으나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구로, 선대의 지식과 업적 위에 올라섰기에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
1. 실장 부재가 드러낸 조직의 민낯 컨설팅 방문 첫날, 실장이 병가를 내자 진료실 전체가 우왕좌왕했다. 경력 5~7년 직원들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실장님이 안 계셔서요”만 되풀이했다. 이는 단순한 인사 공백이 아니라, 모든 판단이 실장 한 사람에게 집중된 구조적 문제였다. 뛰어난 한 사람이 아닌, 조직의 ‘중간’이 얼마나 단단한가가 병원의 성패를 결정한다. 2. 서비스와 호스피탈리티 - 무엇이 다른가 치과 현장에서 ‘서비스’와 ‘호스피탈리티’는 종종 같은 말처럼 쓰이지만, 본질은 전혀 다르다. 서비스는 매뉴얼과 절차로 만들어진다. 예약 확인 전화, 대기 시간 안내, 컴플레인 처리 순서 - 이것들은 훈련하면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 할 수 있다. 호스피탈리티는 다르다. 호스피탈리티는 상대방이 말하기 전에 먼저 필요를 알아채고, 진심으로 환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매뉴얼이 아니라 사람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랫동안 같은 환자를 봐온 직원이 “오늘은 설명을 한 번 더 드려야 할 것 같아요”라고 짚어주는 순간 - 그것이 바로 호스피탈리티다. 서비스는 시스템이 만들 수 있지만, 호스피탈리티는 자발성이 있는 사람만이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발성은, 판단할 권한
최근 마곡 코엑스에서 열린 2026년 구강보건의 날 기념 포럼에 다녀왔다. 올해 본격 시행에 들어간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에 발맞추어, 초고령사회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체계 내 구강보건 시스템 구축’을 다룬 자리였다. 발표 내용은 훌륭했다. 그런데 연자의 설명을 듣는 동안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발표자는 구강보건의 중요성을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논리의 기저에는 “치과는 생명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삶의 질(QOL)을 위해 중요하다”는 오랜 관성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이다. 우리 사회는 물론,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치과를 생명과는 무관한 부차적인 ‘웰빙’의 영역으로 당연하게 격하시켜 왔다는 사실이다. 부끄럽게도 반세기 넘게 치과의사로 살아온 나 역시 그 관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잘 씹고, 잘 먹고, 잘 말하고, 잘 웃게 해주니 치과는 중요하다며, ‘삶의 질 향상’이라는 프레임 안에서만 위안을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구강보건은 삶의 질을 높이는 윤활유가 아니다. 인간의 건강수명과 생사의 기로를 결정짓는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다. 1972년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나는 눈꽃으로 뒤덮인 삿포로에서 3년하고 반을 보냈다. 유년 시절을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곳에서 자라서 그랬을까, 어릴 때부터 강아지처럼 눈을 좋아했다. 그래서 박사과정을 하며 삿포로에서의 눈과 함께 지냈던 겨울 일상이, 불편함보다는 깨끗한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포근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로 남아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포슬포슬한 눈길을 걷던 순간들과 하얀 거품이 흘러내리는 삿포로 클래식 맥주가 생각난다. 얼마 전 학생들과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홋카이도대학과의 교류 행사를 위해 일주일간 삿포로에 머물렀다. 눈이 수북하게 쌓인 거리와 펑펑 눈이 내리는 날씨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건만, 따뜻한 날씨에 눈이 다 녹아버린 삿포로 시내의 거리는 발을 디딜 때 마다 흙탕물이 올라오지 않는가. 학생들이 적잖이 실망한 듯하나 미끄러운 눈길 대신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닐 수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대신 한결 가벼워진 길 위를 다니며 일본의 여러 음식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이것저것 새롭게 먹어보는 것이 제법 재밌는 모양새다. 길모퉁이마다 있는 편의점에서 보이는 여러 빵이나 음료 하나하나도 한국과 다른 독특한 맛을 찾아내고 경험해 본다. 작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