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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평등

스펙트럼

강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진료 일정으로 불가피하게 강원 전역 60여 기관의 아동 구강 건강 실태조사 검진 일정을 4주에 몰아넣었는데, 4개월 된 아들의 육아 난이도가 나날이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보부상이라도 된 양 매일 강릉에서 출발하여 짧게는 동해, 멀게는 철원까지 운전하고 검진을 마친 뒤 다시 운전하여 녹초가 되어 돌아와 육아를 시작하는 일상의 반복입니다.

 

카페인에 의존하여 운전대를 부여잡고 대관령을 넘다 보면 안개 자욱한 저 너머에서 산신령이 손짓하는 듯하지만, 스스로 뺨을 때려 강렬히 거부하며 어떻게든 매일의 임무를 완수하고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무척이나 지치는 일상이지만, 정신만큼은 온전히 무장할 수 있는 데에는 요즈음 매일같이 마주하는 ‘불평등’의 현장이 있습니다. 아동 구강 건강의 ‘불평등’입니다.

 

시 단위 지역 조사에 못지않게 군 단위의 지역을 많이 다니다 보니 치과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 아동의 구강 건강 상태로부터 발견되는 불평등부터 같은 반 아이들의 평균에 비해 크게 차이 나는 아동의 구강 건강 불평등까지, 조사에 나설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상황이 관찰되곤 합니다. 이들 현상에 대한 추가 분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더 필요한 정보에는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습니다.

 

20대 때부터 매진해온 불평등이라는 주제에 아직 관심이 꺼지지 않았다는 점은 무척 다행이지만 이전에 비해 계산적이고도 학문적인 불평등에 흥미를 느낀다는 점에서 지금의 제가 얼만큼 불평등의 현실을 진심으로 마주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가령 반 전체 아동의 평균적인 구강 건강 수준으로부터 차이가 유독 크게 나타나는 한두 명 학생의 공통점이 무엇일지, 불소 반점치가 발견된 학생이 유독 많은 지역에 어떤 환경적 특성이 존재하는지 등 어떤 요인을 어떻게 분석하여 인과관계를 나타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데에 많은 관심을 쏟는 한편,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계란으로 바위 치는 방법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이렇듯 부끄럽게도 현재의 저는 과거만큼 불평등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또 앞으로도 그만큼 불평등에 매진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얼마 전 아기를 낳고 물려줄 배경을 하나둘 그리다 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실태조사를 다니는 중에도, 구강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환경 요인을 실제로 관찰하며 이로 인한 건강 불평등을 고찰하기보다 내 아이에게 평균 이상 환경 요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나 오늘 어느 산골짜기에 위치한 작은 학교 말 많은 보건교사로부터 듣게 된 이야기가, 다시금 불평등의 감수성을 일깨웁니다. 아파도 치과에 갈 수 없는 아동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치과 공포증이 아닌 가정 환경으로 인해 치과에 갈 수 없는 아동이 여전히 많다는 원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진부한 이야기를 듣고 별 감흥도 없이 아이들의 입 안을 들여다보는데 가슴 한 켠에서, ‘언제까지 검진 일용직의 자세로 임할 거야?’ 라고 묻는 것만 같습니다.

 

각종 연구와 학회 준비, 학위논문 작성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을 밤마다 진척시키며 주경야독하는 가운데, 고사성어의 유래에 나오는 훌륭한 성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금 임하는 일들에 진심을 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부터는 몇 가지 교육자료라도 챙겨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바를 전달하고, 조금은 더 피로해져야 하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