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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사는 이유

황충주 칼럼

우연히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헤어지면서 “언제 밥 한번 밥 먹자”라고 하는 것은 부담 없이 주고받는 통상적인 인사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식사 자리를 같이하자고 하는 것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동안 못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서로 즐거운 시간을 갖자는 선의의 뜻이다. 모임이 정해지고 식사하게 된다면 누가 밥값을 내느냐는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언제나 신경 쓰이는 일이다. 


정치인, 경찰, 기자가 함께 밥을 먹었다면 밥값은 과연 누가 낼까? 돈이 많은 사람? 힘이 있는 사람? 윗사람? 승진하거나 좋은 일이 있는 사람? 아니다! 정답은 ‘식당 주인이 낸다’라는 썰렁한 아재 개그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 만나 식사할 일이 많이 생기는데 대게는 힘없는 사람, 잘 보여야 하는 사람, 부탁할 일이 있는 사람, 아랫사람이나 약점이 있는 사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밥값을 내고 힘이 있거나 윗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은 밥값을 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사람들과 따로 볼 시간을 얻기 힘드니 밥 먹는 시간이라도 기회를 잡아 대접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밥값을 내도 좋다는 것이다. 내게 밥을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게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도움을 받을 일이 있거나 있던 경우이므로 내가 갑(甲)이고 그가 을(乙)이 된다. 예전엔 남녀가 교제할 때는 남자가 주로 밥값을 냈는데 그 이유는 여자에게 잘 보이려는 남자는 을이고 선택권을 가진 여자는 갑이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그동안 못 했던 모임을 하자고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온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친구나 지인끼리 밥을 먹고 계산대에서 밥값을 서로 내려 하는 모습은 외국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 중의 하나로 정(情)이 많은 한국인의 모습이다. 이렇게 밥값을 내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매번 안 내는 사람이 있다. 밥값을 안 내는 이유는 돈 많은 사람이 내야지, 아랫사람이니 당연히 얻어먹어야지, 돈이 없어서 등 여러 가지이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다음부터는 아예 낼 생각조차 안 하거나 돈 내던 사람이 당연히 내는 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돈 내는 사람을 호구로 생각해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실속도 챙기고 돈까지 절약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검소하다고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지만 남의 호의를 이용하고 남의 선의에 기대는 인색한 사람이다. 


밥값을 잘 내는 사람과 밥값 낼 때마다 뒤로 빠지는 사람 중에 결과적으로 누가 더 성공할까? 베풀지 않고 늘 얻어먹고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돈을 아끼고 모아서 과연 얼마나 잘 살 수 있을까? 


무일푼에서 출발해 10년이 채 안 되어 연매출액 3천억 원의 글로벌 종합식품회사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락 회사를 경영하는 슈퍼리치 김승호 회장의 드라마틱한 성공 노하우를 담은 책인 ‘생각의 비밀’이란 책에 이런 글이 있다.


“이렇게 밥값을 내지 않고 모은 돈들은 그 성향의 근본이 인색함에 기인하기 때문에 절대 성공에 필요한 자금으로 활용되지 못하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인색한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형제나 부모는 물론 배우자도 멀리하게 됩니다. 결국, 밥값을 내지 않는 것은 경제적으로 손실입니다. 이를 무시하면 진급, 사업 기회, 선의의 혜택에서 완벽히 배제됩니다. 재정적으로 아무리 곤궁하다 하더라도 남의 밥값을 공짜 음식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잠시 나타난 쉬운 길과 지름길이 인생 전체에서 나타나는 행운은 지금껏 본 적이 없습니다. 부정하거나 얄팍하게 살아서 생긴 이익은 이익이 아니라 빚인 이유입니다. 빚은 언젠가 갚아야 하고 본인이 갚지 않으면 자식이라도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김승호 회장은 한 끼 밥값 아꼈다고 좋아할 수 있지만 이런 일에 집착하고 매사 작은 것을 얻으려고 애쓰다가는 큰 것을 잃게 되기 때문에 ‘밥값 계산의 경제학’의 측면에서는 큰 손해라고 강조한다. 밥값 내는 사람은 누가 돈을 안 내고 먹었는지 기억하고 작은 일로 그 사람 전부를 판단한다. 밥값 안 내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게 되고 좋은 정보나 기회, 선의의 혜택에서 배제하게 되어 결국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고 좋은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통념에 따르면 탁월한 성공을 거둔 사람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바로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 결정적인 타이밍이 그것이다. 세계 3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에서 역대 최연소 종신교수에 임명된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란 책에서 성공의 네 번째 요소를 ‘타인과의 상호작용’으로 규정한다. 상호성의 법칙이란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면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공짜는 가장 비싼 것을 가져가기 위한 숨겨진 대가일 수 있다. 타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기버(Giver)가 늘 받기만 하는 테이커(Taker)나 받는 만큼 주는 매처(Matcher)보다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바보 같은 기버’가 아니라 성공한 기버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 관리는 물론이고 베풂의 적정선을 그을 줄 아는 ‘지혜로운 기버’가 되어야 한다.


식사 후 밥값을 먼저 계산하는 사람은 돈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신용과 협력이라는 중요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사람에게 투자하고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기꺼이 밥값을 내는 것이다. 밥 사는 게 뭐 그리 대단한가 싶지만, 밥값은 낭비가 아니고 최고의 투자이며 여유롭고 풍성한 인맥을 만드는 효과가 있다. 


새해에 친구나 지인에게 만나자고 전화하면서 연장자나 돈을 많이 버는 친구가 두 번 사면 나도 한 번 사고 동료가 한 번 사면 나도 한 번 사는 최소한의 규칙을 실천하며 즐거운 모임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