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C대학 인권학 교수
정상회담때 정부도와 활약
지난 91년 여름. 올 것 같았던 남북한간의 화해무드는 좀처럼 찾아 오지 않았다. 이산가족
상봉이란 단어 조차 꺼내기 어려울 정도로 남북한 관계가 급랭하고 있던 때였다.
이 때 북한에 있던 형을 미국으로 데려와 2주간 체류시킨 재미교포 치과의사가 있었다.
「최초의 북한민간인 LA 도착」. CBS, ABC 방송 등 미국내 주요언론들은 앞다퉈 이
사실을 보도했다.
76년 경희치대를 졸업하고 도미한 강대인 교수. 강교수가 미국의 하루를 시끌벅쩍하게
만들었던 주인공이었다. 강교수는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북한에 있던 그의 친형을 어머니의
장례식장으로 안내할 수 있었다. 그러던 그가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던 지난 13일 내외신기자
1천여명이 모여있던 프레스센타에서 남북정상이 손을 부여잡는 순간 눈물을 뿌렸다.
치의신보는 최근 이산가족 문제가 국내외 핫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치과의사이며
인권전문가인 강대인 교수를 만나봤다.
지난 13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남북 정상들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 있었습니다.
강교수님은 그 때 프레스센터에 있었고 TV를 통해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여러 번 방영
됐습니다. 기자도 아닌데 어떤 이유로 그 자리에 계셨고 눈물을 흘리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경희치대를 졸업한 후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도미, UCLA에서 보철을 전공했습니다.
또 USC대학에서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인권학 교수이며 대학인권위원회
공동의장으로 있습니다.
91년도 북에 있는 친형
북한 민간인으론 처음 미국방문케해
91년도에 형을 미국으로 데려오고 그후 「아들아」라는 책도 펴낸 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정부와 함께 이번 남북 정상회담 때 프레스센타에 모여있는 외신기자와 외교관들을
대상, 정상회담에 대해 브리핑 해주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이산가족의 쓰라린
아픔이 있습니다. 더욱이 이산가족을 연구하고 1백50여명 정도의 이산가족들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너무나도 가슴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소속감이 없는 고통, 재산상실의 고통, 생이별의 아픔, 이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조국에 대한
원망 등 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같은 생각이 주마등같이 스쳐가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앞으로의 남북 관계는 어떻게 발전하겠습니까?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간 것은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이제 남북한 평화공존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대북 회담의 주요전략은 WIN-WIN게임을 하자
즉 남북 모두 이기는 게임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93년에 등소평이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과 면담 때
개방해도 현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만큼, 세계 속으로 나와 미국과도 교류하는 정책을
펴라고 조언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신세대입니다. 그는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인물로 2만여편의 서양영화를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천편 이상
서양영화를 본 그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서구사회를 잘 아는 지도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간의 정치적 교류의 축이 바로 한반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교류를 움직일 수 있는 운전자 역할을 남·북한이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화공존의 수레바퀴는 이미 돌고 있습니다.』
통일의 시대를 맞아 치협도 나름대로 통일 치과계를 그리며 차분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치협이 대북 관련 사업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대처해 나가야 할까요.
『지난해 FDI 멕시코 총회에 통일된 독일 치과계의 경험담을 들을 목적으로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바바라라는 구 서독출신 치과의사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통일된 독일 치과계를
화합시키고 평준화 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독일은 통독 후 서독 각
지역 치과그룹과 동독지역 치과그룹간 결연형식으로 서로의 이질감을 극복했다고 합니다.
통일된 독일은 많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서독 사람들은 동독 사람들을 게으르고 실력이
없는 등 진취적이지 못하다고 평가했고, 동독사람들은 서독출신들이 부패하고 이해타산만
찾는 속물적 인간으로 지적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합니다. 서독 치과의사들은 이같은 문제를
너무나도 인간적인 활동으로 풀어 나갔습니다. 동독 치과의사들이 못살고 치과 의료
진료수준이 떨어지더라도 『불쌍하니까 도와주겠다』는 생각으로 접근치 않고, 『우리들도
너희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