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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I 탄생 100주년<1>
치의학 태동부터 FDI 설립까지

세계치과의사연맹(FDI)이 오는 8월 15일이면 100주년을 맞이한다. FDI는 그동안 세계 치의학의 발전과 인류의 구강건강증진에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FDI는 치의학 연구와 각종 정책개발을 통해 인류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왔으며 저개발국가의 구강보건 향상 프로그램 개발과 구강암 퇴치 및 흡연금지운동 등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인류에게 건강한 삶을 유지 개선토록 노력해 왔다. 이러한 FDI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 본지는 수회에 걸쳐 FDI의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편집자 주> 기원전 문헌 “치통·우식증” 언급 피에르 포샤르 치의학서 최초 집필 19C 치의학계 발빠른 변화 맞춰 세계치과의사연맹 (FDI ) 창설 치의학은 FDI의 설립(1900년)과 함께 태동한 것은 아니다. 치의학에 관한 가장 오래된 참고문헌은 ‘문명사회의 요람지"인 중동지역의 7천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문헌에서 BC 5천년경 중동지역의 수메르인들은 ‘치통을 일으키는 벌레"가 그들이 믿는 신의 격노에서 야기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1872년 에버스(George Ebers) 교수에 의해 테베(Thebes : 고대 이집트의 수도)에서 발견됐고, BC 1600년경부터 기술돼 있는 고대 이집트의 문헌은 치아의 질병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용된 물질들에 대한 BC 3천년 이전의 참고문헌까지 포함하고 있다. BC 약 2천5백년경 극동지역에서는 중국인들이 치아우식증과 관련된 고통을 다루기 위해 침술과 약초를 사용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BC 1250년경 에스큘레이피어스(Aesculapius : 의술의 신)는 최초의 발치를 행한 것으로 널리 믿어지고 있다. 이어 그리스인들 역시 소성(疎性)치아에 부목을 댔고 金밴드와 金와이어로 인공치아를 지지했다. BC 500년경 최초로 전문인의 윤리적 품행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공식화한 사람은 또 한 명의 저명한 그리스인, 히포크라테스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고타마 부다(Gautama Buddha)는 ‘사카 신으로부터 물과 이쑤시개를 받아 씻고(최초의 원시적 칫솔로 간주되는 것 중 하나) 목욕하고 먹고 싶어했다"고 기록되고 있다. 로미인들은 겸자를 이용해 성공적으로 치아를 발치했다고 묘사되는 셀서스(Celsus)와, 그 당시 부유한 시민들 사이에 흔히 사용되던 의치에 대해 기술한 호레이스(Horace : BC 65∼8)와 함께 계속적으로 초기 치의학을 발전시켰다. 중세 필링으로 치아를 보존한 최초의 인물로 간주되고 있는 페르시아의 라제스(Rhazes)가 살았던 AD 900년경, 새로운 1천년의 시작에 거의 다다른 1000년대로 옮겨가 보자. 그 1천년은 아라비아의 외과의사로서 그가 쓴 책 ‘Al Tasrif"나 ‘De Chirurgia"가 공식적 교과서로 쓰이고 있는 위대한 인물, 아불 카심(Abul Kasim : Albucasis)의 부상(浮上)에 부합하고 있다. 3백여년 후 프랑스의 외과의사 기 드 숄리액(Guy de Chauliac)은 치아에 대해 광범위하게 기술했고, 치아과 관련된 질병의 치료에 대해 전문가인 ‘당따또르(dentatores)"로서 최초로 추천되기도 했다. 현대 치의학의 시초 현대 치의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650년부터 1800년 사이이다. ‘현대 치의학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피에르 포샤르(Pierre Fauchard)는 1728년 동시대의 치의학의 모든 국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담은 책 ‘Le Chirurgien Dentiste"를 출간했다. 이 책의 발간은 다른 이들의 집필 의지를 북돋웠는데, 예를 들어 18세기 말경 영국의 탁월한 외과의사인 존 헌터(John Jenter)는 ‘인간 치아의 자연사(The Natural History of the Human Teeth)"라는 책을 집필했고 런던 가이스병원(Guy"s Hospital)에서 처음 시작된 치의학 강좌의 첫 강의를 맡기도 했다. 19세기의 빠른 발전 1800년대는 치의학에 있어서 기술적 발전 뿐 아니라 임상적 치료 기술과 전문인의 책임, 조직에 있어서도 더욱더 빠르고 중요한 발전의 시대를 예고했다. 19세기 초에는 수복을 위한 치과용 아말감과 의치상(denture base)을 위한 가황 러버(vulcanised rubber), 포세린 인공치아가 처음으로 소개됐다. 1839년 세계 최초의 치과계 저널 ‘The American Journal of Dental Science"가 발간됐고, 그 다음해에 최초의 치과대학 볼티모어치대(the Baltimore College of Dental Surgery)가 설립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1840년대에는 또한 발치를 위한 일산화질소 마취가 미국 메사추세츠의 호레이스 웰스(Horace Wells)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됐고, 1884년에는 비엔나의 칼 콜러(Carl Koller)에 의해 국소마취제 코케인이 사용됐다. 최초의 기계화된 치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