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치과의사연맹(FDI)이 오는 8월 15일이면 100주년을 맞이한다.
FDI는 그동안 세계 치의학의 발전과 인류의 구강건강증진에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FDI는 치의학 연구와 각종 정책개발을 통해 인류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왔으며 저개발국가의 구강보건 향상 프로그램 개발과 구강암 퇴치 및 흡연금지운동
등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인류에게 건강한 삶을 유지 개선토록 노력해 왔다. 이러한 FDI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수회에 걸쳐 FDI의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편집자 주>
고든 박사 ‘세계치과의사연맹’ 창설
1900년 치의학교육 국제위원회 구성
위대한 치의학자 밀러 ‘齒醫교육’ 주창
1차대전 후 아길라 박사 조직 재정비
1926년 美 총회 재정적 성공 이끌어
챨스 고든 박사
챨스 고든(Charles Godon) 박사는 의학과 치의학 두 분야에서 학위를 땄지만 전세계를 통해
치과계가 그에게 있어 자주적 전문분야였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1889년
파리에서 21개국 3백여명의 치과의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제치과의사총회(International
Dental Congress)"를 조직했고, 4년 후 시카고에서는 33개국으로부터 치과의사들이
모여들었다. 고든 박사가 1900년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를 맞이하여 3차 총회를
파리에서 열기로 결정한 것은 이 두 회합의 성공 때문이었다. 그는 정례적인 국제 치의학
학술대회를 유기적으로 조직, ‘세계치과의사연맹(International Dental Federation)"을
창설함로써 치과계가 국제적으로 조직화될 시기가 왔다고 확신했다. 집행위원회는 다음 해의
회합을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기 위해 매년 만나게 됐으며, 치의학 교육, 구강위생과
공중보건치의학 등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보고서를 내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또 1900년 8월 15일 아침 자신의 출신국에서 치과계를 이끌고 있는 다섯 명의 치과의사, 즉
스페인 마드리드의 플로레스탕 아길라(Florestan Aguilar), 미국 시카고의 하랜(A.W.Harlan),
프랑스 파리의 쇼베스(E. Sauvez) 등과 회합을 마련한 것도 고든 박사였다.
네덜란드의 그레버스(Grevers) 박사, 독일의 헤세(Hesse) 박사, 오스트리아의 피쉬러(Pichler)
박사 등은 세계치과의사연맹(FDI)의 첫 집행위원이 됐다. 이들을 비롯한 17명의
치과의사들이 첫 번째 치의학 교육에 대한 첫 국제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초기
1903년 마드리드 총회는 국제의학총회와 동시에 개최한 마지막 총회였다. 다음해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총회에는 25개 국가로부터 대표들이 참석했으며 3개 위원회가 열려
치의학교육, 공중위생, 치의학 정보의 광범위한 보급 등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했다.
새 회장 윌로비 데이튼 밀러(Willoughby Dayton Miller) 박사는 아마도 가장 위대한 현대
치의학자(dental scientist)일 것이다. 그는 치아우식증의 병인학(病因學)에 관한 수많은
논문과 비교구강해부학(comparative dental anatomy), 병리학, 세균학, 구강미생물 등에 관한
논문 등 1백여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美 오하이오에서 태어났지만 전문인으로서의
대부분의 생애를 베를린에서 보낸 밀러 박사는 베를린치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베를린에
골프를 소개하고 베를린 골프 클럽(Berlin Golf Club)을 창설하기도 했다.
밀러 회장은 1907년 암스테르담 총회가 열리기 며칠 전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의
회장으로서의 연설문은 암스테르담 총회에서 읽혀졌으며 그 연설문의 주제는 「치과의사의
교육」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치의학은 치과의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했고, 『치과의사의 이상적인 발전은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가장 많은
사람들을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행하는 지위(위치)라고 생각하는데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1909년 베를린 총회에서 학교 구강보건실 설치에 대한 찬성 입장이 결정됐고, 구강위생
위원회의 사업은 계속 이어져 1912년 스톡홀름 총회에서 킹 구스타프(King Gustav)가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또 국제윤리법전이 발의된 것도, 조지 커닝햄(George Cunningham)이
최초의 구강보건교육 영화를 선보인 것도 스톡홀름 총회였다.
1914년 런던 총회에서는 고국을 떠나 총회 참석을 위해 런던에 온 많은 사람들이 런던에
도착하고 나서 독일이 러시아와 교전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기적만이
유럽을 전쟁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각국 대표들이 어렵게 고국으로
돌아갔고 국제 기구의 활동은 어쩔 수 없이 중지됨으로써 폐막식은 슬픈 행사가 됐다.
제2기의 시작
FDI는 終戰 후 재설립된 최초의 국제학술조직 중 하나였다.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