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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눈을 향해

릴레이 수필 제2690번째

참 사소하지만 유난히 반짝이는 기억으로 남는 순간들이 있다. 초등학생 때 계곡에 놀러가면 입술이 파랗게 질릴 때까지 계곡물을 바라보곤 했었다. 햇빛을 머금은 물방울의 반짝임은 어린 나에게 보석 그 이상이었다. 살갗을 스치는 차가운 물의 촉감도 너무 좋아서 가족들과 하염없이 물속을 떠다녔었다.


나른한 봄, 친구 집에서 ‘뿌셔뿌셔’를 나눠 먹으며 게임에 전념하던 어느 오후도 선명하다. 모니터 너머 상대에게 우리는 스무 살 대학생이라고, 수능 점수는 98점이라고 당당히 허풍을 떨곤 했다. 이렇게 내 어린시절 기억은 사소하고 따뜻한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놀이터의 흙먼지, 태권도장의 기합소리, 피아노 선율.


휴대전화도, 학원도 남들보다 늦었지만, 그런 것들은 상관없었다.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저 목적 없는 과정을 즐기던 시절. 그때 내 눈은 확실히 반짝거렸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번진다. 하지만 가끔은 그 반짝임으로부터 너무 빠르게 멀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치대라는 목표를 향해 하루하루를 쌓아 올린 학창시절을 지나, 요즘은 과제와 시험의 파도 속에 떠밀려 사는 중이다. 분명 반짝이던 ‘생태’였던 내가 엊그제 같은데, 시험을 하나씩 치러내다 보면 어느새 무심한 ‘동태’가 되어 종강만을 외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한 학기를 마무리할 때마다 유년의 반짝이던 눈동자를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스무 번도 넘게 읽은 책 『모모」는, 그런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다. 소설 속에서 어른들은 회색 신사의 방문을 받은 뒤, 성공과 돈, 그리고 효율을 위해 웃음과 여유를 내려놓는다. 하지만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도시는 무채색이 되어 간다. 주인공 모모는 훔쳐진 시간을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주며, 따뜻한 정과 여유를 되찾아준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내가 바쁜 일상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마음의 여백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곳으로 가는 과정이 삶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물론 현실에서 그런 태도를 지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당장 눈앞에 들이닥친 시험을 두고, ‘매 순간의 과정을 느껴라.’라는 생각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효율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유보다는 속도에 등 떠밀려 가는 날이 더 많다. 이 시간이 버겁지 않다면 거짓말일테다. 하지만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이 과정은 분명 가치 있는 시간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시간을 그저 ‘견뎌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반짝이는’ 시간으로 남기고 싶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이 되면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갓생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진정한 어른이란, 오히려 바쁜 흐름속에서도 잠시 멈춰 순간을 느끼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그리고 그 공백에서 따뜻하고 선명한 추억들을 만들 수 있는, ‘반짝이는 눈빛’을 되찾은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 왕자』에는 갈증을 없애 주는 알약 덕분에 53분을 아꼈다고 자랑하는 상인이 등장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린 왕자는 생각한다. “나에게 53분이 있다면 천천히 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갈 거야.” 효율의 논리로 보면 우물까지 걷는 시간은 낭비일지 모른다. 그 아낀 시간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목소리 속에서, 어린 왕자처럼 느긋하게 걷기란 분명 쉽지 않다. 나 역시 대부분의 날을 그렇게 살아내지 못하고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이라도 멈춰 서서, 이 순간을 느끼려는 노력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늘 반짝일 수는 없겠지만, 반짝이기 위해 애쓰는 눈으로 나만의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