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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팔팔이삼일(9988231)

황충주 칼럼

2024년 12월 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생명표’에 따르면 2023년 출생아(0세) 기대수명이 전년 대비 0.8년 늘어 83.5년에 도달했다. 출생아가 80살까지 살 확률은 남성 63.6%, 여성 81.8%였지만 100살까지 생존할 확률은 남성 1.0%, 여성 4.6%에 불과해 ‘100세 시대’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실상을 보여줬다.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하지만 사람에게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얼마나 건강하게 사는가 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처럼 남의 도움 없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만 있다면 여든이건 아흔이건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평균수명과는 다른 건강수명이라는 개념이 별도로 존재한다. 건강수명이란 말 그대로 타인의 도움 없이 자립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삶의 질이 보장된 상태로 살 수 있는 생존 기간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이 평균 83.5세라고 했을 때 건강수명 평균은 73.1살로 10년 정도 짧고 여자 74.7살, 남자 71.3살로 여자가 3.4년 더 길다. 이 말은 평균적으로 생의 마지막 10여 년을 누군가의 지원이나 돌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생이 끝나는 그 날까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살다가 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현대 의학은 ‘기능적 장수’ 또는 ‘성공적 노화’의 비밀을 찾아내기 위해 노화의 원인이나 노화를 유도하는 유전자 찾기에 매달려 왔다. 그러나 지금의 지식수준으로는 그 답을 얻기 어렵게 되자 보다 현실적인 주제인 건강 장수 측면에서 ‘병 없이 오래 사는 것’에 접근하고 있다.


70대는 사람의 일생에서 신체 기능이 크게 약해지는 분기점과도 같은 시기다. 뼈와 근육 소실로 키와 힘, 체중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국제과학커뮤니티 ‘인텍오픈’(InTechOpen)이 노화 관련 연구결과들을 모아 출판한 ‘노인학’ 교본을 보면 40대 이후 키는 10년마다 약 1cm씩 줄어들다가 70대에 들어서면 그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진다. 근력은 60살 이후 연간 3%까지 감소하기 때문에 가벼운 낙상 사고에도 심한 부상이나 골절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의 기능도 약해져 고혈압이나 당뇨병, 치매 등의 만성질환이 발생하기 쉬운 나이가 70대다.


같은 70대라도 누구는 하루 한 시간씩 걸을 수 있고, 누구는 집 안에서 이동하는 것조차 힘들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노쇠의 정도다. 노화와 노쇠는 얼핏 보면 같은 의미인 것 같지만 의학계에서는 이 둘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단순히 나이를 먹는 노화 과정 속의 노인과 몸의 회복 구조가 무너진 노쇠한 노인이 앞으로 살게 될 삶의 질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노화는 배터리로 치면 ‘최대 충전 용량’이 서서히 줄어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20대에는 100%까지 충전되던 몸이 40대에는 90%, 60대에는 80% 정도까지만 충전되는 것이다. 충전이 안 되는 것은 아니므로 사용 시간을 조절하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노쇠는 노화와는 달리 배터리 용량 문제가 아니라, 충전해도 금세 방전되고,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아도 에너지가 새어 나가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경우다. 작은 활동에도 과부하가 걸리거나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심하면 별다른 경고 없이 전원이 꺼지는 상황도 일어난다. 의학적으로 노쇠는 여러 장기와 기관의 생리적 기능이 전반적으로 부실한 상태를 말한다. 대표적인 증상은 체중 감소, 근력 저하, 피로감, 보행 속도 저하, 신체 활동량 감소다. 이 가운데 세 가지 이상이 동시에 나타나면 노쇠로 진단한다. 나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노화는 되돌리기 어렵지만, 노쇠는 적극적인 개입으로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다.


사실 젊어서는 해야 할 일도 많고, 일상이 분주해서 자신을 돌보기가 쉽지 않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보다 일을 더 해야 하고, 쉬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이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방식보다는 쾌락적이거나 파괴하는 방식으로 풀기 쉽다. 젊어서는 그렇게 해도 지금까지 별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괜찮은 건 아니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부터 몸과 마음을 관리하고 생활습관을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의 차이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죽기 전까지 건강하게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노쇠를 관리하고 남은 마지막 10년까지도 건강하게 자립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노년의학 전문의이자 내과 전문의인 야마다 유지는 ‘최고의 노후’에서 건강한 노후를 위해 30~40대부터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하다. 이를 위해 2017년 노년의학회에서 발표된 다섯 가지 개념인 ‘5M’을 소개하였다.


첫째, Mobility(신체 활동) : 늙어서 잘 걷고 움직이려면 젊을 때부터 부지런히 몸을 돌봐야 한다. 걷기는 노년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운동이며 하루 30분 걷기부터 시작하라. 근력 운동과 요가, 필라테스, 스트레칭을 통해 유연성과 균형 감각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Mind(정신건강) : 아무리 몸이 건강해도 뇌나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몸 상태가 나빠진다. 꾸준한 학습, 독서, 새로운 경험이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다. 낙천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수명 연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명상, 취미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


셋째, Medications(약물 관리) : 나이가 들면 병이 하나둘씩 생기고 약이 점점 늘어 다량의 약을 먹는다. 오랫동안 약을 먹어야 할 때도 있고 먹는 편이 좋을 때도 있지만 되도록 적게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 건강한 식단과 운동이 약을 대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넷째, Multicomplexity(만성질환 예방) : 고혈압, 당뇨, 심장병 같은 만성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기적인 건강 검진과 더불어, 영양 섭취와 생활습관 개선이 필요하다.


다섯째, Matters most (삶의 목표) : 노년에도 삶의 의미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우울증을 예방하고, 더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으며 현명하게 나이를 먹는 과정이다.


한국의 노년층 사이에서 자주 사용되는 재미있는 숫자 표현으로 ‘9988234’가 있다. ‘99세까지 오래 살 돼, 88하게 건강하게 살다가, 2일 정도 앓고 3일 만에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자’라는 뜻이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오래 살다가 고통 없이 평온하게 생을 마무리하자는 인생의 이상적인 마무리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말이다. 요즘은 ‘9988231’로 바뀌었다고 한다. 88하게 건강하게 지내다가 2~3일만 아프다 벌떡 일어나고 싶다는 것으로 핵심은 건강한 삶을 오래 유지하는 건강수명과 기대수명 차이를 줄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골골 백세가 아니라 생생 백세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목표라면 오늘도 감사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편하고 자연스럽게 떠나는 삶을 위해 젊었을 때부터 5M을 기반한 운동, 식단, 습관 등을 하루하루 실천할 필요가 있다. 노화를 막을 순 없지만, 노쇠를 관리하여 우리 모두 날마다 의미 있고 행복한 노후를 만드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