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이번호 부터 부정기적으로 ‘지구촌 리포트’를 게재합니다. 각 국가의 치과계
소식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지구촌 리포트’는 독자 여러분에게 다양한 정보와 뉴스를
현지 리포트를 통해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호부터는 수회에 걸쳐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는 權重圭(권중규·서울치대 69년 졸)씨가 보내온 ‘미국치의학의 발전사’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하이든, 美최초 齒醫 면허증 취득
1800년대 초엔 이발사 대우 “푸대접”
1840년 볼티모어 치대설립 D.D.S배출
최초 이민자들 민간요법 치통 다스려
일반 외과의사가 치과도 맡아 치료
글싣는 순서
A.들어가며
B.미국의 근대치의학사<1>
C.ADA의 창립
D.미국학회와 Specialist
E.미국 Implant학의 역사
F.글을 맺으며
A. 들어가며
과거를 알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者(집단, 국가도 포함) 만이 현재의 좌표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으며, 그러한 者만이 앞으로는 살아 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들이 practice하고 있는 醫學이나 齒醫學은 원래 서양에서 시작, 발전되어온 학문인
만큼 그들의 뿌리를 찾아보고 또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아주
의미있는 일이라 사료되는 바이다.
물론 미국식이 무조건 옳고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치의학을 꽃피운 그들의 제도에
상당부분 reasonable(합리적)한 점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필자는 醫史學 때문에 낙제를 당할 뻔 한적도 있을만큼 醫史學에
관하여서는 문외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 30年동안 미국에서 practice한 경험을 토대로 미국
치과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번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American Dental Association(이하 ADA) 및 각 학회가 제공한 자료와 Dr. Malvin
Ring이 저술한 "Dentistry, an illustrated history"와 그 동안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들
그리고 필자의 평소 생각 등을 모았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아울러 Mr.나 Dr.와 같은 존칭을 생략하는 바이니 그 점 양해 바란다.
우선 醫史學 을 이야기하면서 Hippocrates(BC 460) 선생을 빼놓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께서 “extraction(발치)은 아주 쉬운 시술”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수평지치는 한번도 발치한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 선생님 이전부터
시작하여 1800年代 초까지만 해도 내과의사(physician)만이 지식인으로 대접을 받았고
외과의사(surgeon, 치과도 외과에 포함)는 barber surgeon이라고 하여 이발사 정도밖에
대접을 못 받았던 것이다.
특히 중세 암흑기 동안에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존재해야 했으므로
교회는 발전했을지 모르나 다른 모든 분야는 거기에 발목이 잡혀 있었던 것이다 .
참으로 아까운 1000여 년이었다. 그러니 어찌 의학인들 발전하기를 바랄 수 있었겠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지나치게 종교적인 민족이 文明을 발전시킨 예는 없는 것이다.
B. 미국 근대치의학사
그러면 지금부터 미대륙에 있어서 치과계는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간략하게 한번 보기로
하자.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시작된 이민자들 중에서 그 나마 지식인이라고 하면 아마도
성직자들이 거의 전부였을 것이다.
치통이 나면 그들을 불렀을 것이고 기도나 민간요법 등으로 다스렸을 것이다.
methodism(감리교파)을 창시한 John westley(1703-1791)가 저술한 ‘primitive physic, or an
easy method of curing most disease’(physic는 고어로 의술을 의미함)란 책중에 상당부분
치통의 예방에 관하여 서술한 것을 볼 수 있다.
치과 치료라고 해야 발치가 거의 전부였던 그 당시 그나마 전문적인 치과 치료를 제공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일반 외과의사가 主를 이루었고, 치과만 하는 Dental specialist,
blacksmith(대장장이, 아마도 쉽게 forcep을 만들 수 있었을 테니까), barber, 약사, 그야말로
자기 자신이 조금만 치과를 안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치과치료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는 달리 Itinerant Dentist(떠돌이 치과의사)가 대부분이었다. 수술 도구라고
해서 손가방 하나에 다 들어가는 forcep 몇 개가 전부였으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한 곳에서 진료를, 그것도 뉴욕 ‘Dispensary’라는 병원의 한 staff로서
치과 진료를 시작한 분이 있었는데 바로 R.C Skinner인 것이다. Skinner는 1801년
‘Treatise, on human teeth’라는 논문을 출판했었는데 이것이 뉴욕 ‘Dispensary’로부터
인정을 받아 치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