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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01 치아건강잔치 - 수상자들

건치아동 튼튼이으뜸상 허웅군 “하루 서너번 칫솔질이 좋아요” “정상인도 관리하기 어려운 치아를 불편한 몸으로 건강하게 유지한 것에 대해 기쁩니다. 이런 좋은 상까지 받게 돼 더욱 우리 웅이가 자랑스럽습니다.” 치협과 장애인먼저 실천 중앙협의회가 주최한 ‘2001 치아건강잔치’에서 경기 일산의 홀트학교 허 웅(중등부 2년) 군이 건치 아동 ‘튼튼이 으뜸상’에 선정됐다.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허웅 군 대신 어머니 조순옥 씨와 얘기를 나눴다. “정신지체 장애로 인해 웅이 스스로 무슨 일을 하지는 못해요. 주로 간단한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게 거의 전부죠. 특히 양치질하는 걸 좋아해요.” 어머니 조씨는 식사가 끝난 후 꼭 양치질하는 걸 잊지 않고 지적한다고 했다. 반복해서 계속 시키고 그때마다 양치질을 제대로 했는지 검사를 한다고. 처음엔 서너 차례 양치질을 시킨 적도 많다며 금새 눈시울을 붉혔다. 끝으로 허웅 군의 장래에 대해 묻자 “어떤 꿈보다도 지금처럼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더 바랄게 없다”고 말했다. 허웅 군은 2남2녀중 둘째. 허웅 군을 제외하곤 모두 정상인이지만 치아는 허웅 군 만큼 좋지는 않은 편이라고 조씨는 덧붙였다. <신경철 기자>
건치아동 고운이으뜸상 김희정 양 “치과의사 선생님이 좋아요” “처음에는 치과간다고 하면 울기만 하던 아이가 직접 치과에 가보고 치과의사선생님들이 친절히 대해주니까 오히려 아이가 치과에 가자고 조르더군요.” 지난 12일 치아건강잔치에서 고운이으뜸상을 받은 김희정학생(만 13세)의 어머니인 이후자씨는 가족들이 모두 치아가 건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후자씨는 김희정 학생이 양치질은 직접 하지만, 손이 자유롭지 않아 구석구석 다시 한번 닦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후자씨는 장애 아동은 부모와 학교 선생님이 계속해서 손길을 미쳐야 하는데, 이렇게 치과의사나 사회에서 도움을 주어서 감사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후자 씨는 희정이가 양치후 가글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며 치아관리를 위해 좀 더 교육 받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김희정 학생이 다니는 서울밀알학교의 양호교사 박효경 씨도 장애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점심후 양치질은 필수라며, 10살 정도의 나이만 돼도 올바른 칫솔질 방법을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또 박효경씨는 보건소나 학교에서 1년에 한번 구강검진을 실시하는데 학생들에게 매우 유용하다고 지적했다. <이진우 기자>
예쁜이으뜸상 전희선 양 할머니의 헌신적 사랑 “감동” 언젠가 홀로남을 손녀 걱정 눈물 뇌성마비 딸 두고 아빠 엄마 가출 할머니 폐휴지 모아 생계유지 “치아 튼튼해 먹을것이라도 잘 먹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제 자리에 풀썩하고 주저앉고 넘어지기를 잘하는 아이. 그래서 여기저기 채 아물지 않은 생채기를 언제나 달고 사는 아이. 하지만 그런 생채기 정도엔 아랑곳하지 않고 유난히 수줍고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 아이. 희선이는 태어날 때부터 유난히 작은 아이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유독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말도 늦고 걸음도 늦었다. “희선이가 4살이 되던 해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병원엘 갔더니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뇌성마비라고 하더군요. 우린 그냥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말도 걸음도 조금 늦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할머니 얼굴에 회한의 그림자가 스친다. 아마 희선이가 엄마 곁에 있었더라면 좀더 빨리 뇌성마비였다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희선이 엄마는 희선이를 낳고 100일째 되던 날 희선이만 남겨두고 집을 나갔다. 이어 희선이 아빠도 행방불명. 그때부터 희선인 친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서 커야만 했고 살림이 여의치 않은 희선이 조부모는 밤, 낮으로 일을 해야 했기에 희선이를 유심히 돌볼 수가 없었다. 폐종이를 주워 그것을 내다 팔아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할아버지는 밤새 주워온 폐종이를 다 내다 팔아도 하루 수입이 1만원 안팎. 희선이 치료에는 엄두도 낼 수 없다. 다행히 주변 지인의 도움으로 8살이 되던 해 척추수술을 받고 물리치료를 시작,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희선이는 그제서야 제 또래의 아이들보다 4년이나 늦은 11살이란 나이에 학교란 곳을 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형편이 어려워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부터 할머니는 돈이 안드는 사회복지관 이곳 저곳을 희선이를 직접 데리고 다니며 언어치료를 시켰다. 이것이 할머니가 희선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희선이를 끔찍이도 아끼는 할머니는 희선이를 데리고 치료받으러 가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가 가장 안타깝다. “우리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