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언제나 흐르고 있다. 숲과 초원을 헤쳐가며 흐르고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물결이 물결을 따르며 어딘가를 향하여 그 여로(旅路)를 가고 있다.
대하와 여울과 맑은 물, 탁류, 차가운 물, 따스한 물 등 여러가지로 흐르는 강물이 있다. 간혹 강물에 홍수가 났을 때는 무수히 잡다한 물체들이 떠내려오는 현상을 보게 된다.
홍수와 같은 상황에서는 필요 없는 것은 떠내려 보내는 불가피함이 있는가 하면, 기필코 구조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난된 사람(人命)을 만나게 될 경우도 있다.
학문(學問)의 흐름도 마치 강물의 흐름과도 같이 무수한 내용을 함유한 채 계속 흐르고 있는 것이다. 가장 깊은 강이 가장 조용하게 흘러가듯, 가장 평범하고 보편성이 있는 학문의 물줄기는 언제나 조용히, 그리고 유유히 흘러가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강물이 변덕을 부리듯이 학문의 흐름도 소용돌이 치며 급류도 되고 또한 홍수와 같은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학문정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홍수가 밀려오는 강가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건져 올려야 할 것인가에 고심을 하듯이 학문의 큰 홍수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만 하는가?
강에 떠내려오는 모든 물건들을 다 건져 올릴 수 없듯이 끝없이 흘러오는 모든 의학정보를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학문흐름의 경향을 보면 마치 유행의 물결처럼 한때는 풍미했다가 언젠가는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시류를 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꾸준히 정리 정돈되어 결국엔 누구도 인정하는 정설(定說)로 정착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학문의 강 (江)가에서 뗏목 하나가 떠내려온다고 해서 그것이 새롭고 신기한 물건인양 착각하고 뛰어올라 타면 그 뗏목과 함께 강 하류로 떠내려가 우리들의 시야를 벗어나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새로운 학설이나 신기한 약품, 재료가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고 허겁지겁 지나치게 그 효과를 신봉하여 과대평가 하다 보면 어느날 그것은 구형이 되어 쓰잘 것 없는 것으로 된다.
새로운 것, 최첨단 일수록 한걸음 물러서서 관망해 보는 여유로 우리 치과임상 학문의 큰 흐름을 살펴보면 포셀라인이 나오면서 치과보철의 혁명이 일어났다.
모든 보철물은 이것 아니면 안되는 것처럼 전치(前齒), 구치(臼齒) 가릴 것 없이 입속에 포셀라인 잔치를 벌이는 형국이 벌어졌다. 그래서 포셀라인 특유의 많은 치아삭제량 때문에 일어나는 치수괴사의 후유증을 겪지 않으면 안됐다.
그 후, 불어닥친 교정 치료바람 또한 거센 파고였다. 교정치료 못하면 치과의사 행세도 못할듯한 기세로 기승을 부리다가 많은 부작용과 시행착오 때문에 한계성을 절감하고 뒤로 물러 앉아 버린 임상가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요즈음 새롭게 우리앞에 불어닥친 임프란트의 거센 물결은 한국 치과임상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고 있다. 임프란트를 하지 않으면 치과의사 행세 못하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임프란트란 임상술이 한때 유행처럼 나타났다 사라져 버릴 그런 종류의 술식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계속 더 개발되고 진보된 소재와 방법이 개량되어 치과임상의 큰 획을 긋는 혁명적인 성과로 남게 되리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러나 남용되거나 증례 선택의 잘못으로 부작용이나 실패율이 높아진다면 진정한 인공치아 매식의 정신에 오히려 누를 끼칠 가능성이 높다.
미국 같은 치과선진국보다 우리나라가 임프란트 시술의 빈도가 높다는 놀라운 보고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보다 더 선진적인 치과진료를 하고 있다는 뜻인가? 미국 치과의사들은 임프란트를 접근하는 태도가 매우 신중한 반면에 우리는 너무 쉽게 마구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이 임프란트 소비시장의 천국’이라고 비아냥대고 있는 외국치과 재료상들의 말을 과연 어떻게 해석을 해야만 하나? 우리는 임프란트라는 거센 물결의 파고를 현명하고 냉철하게 대처해야 할 자세가 필요하다.
인공치아만을 매식하려는 노력에 앞서 임프란트를 하지 않고도 수복할 수 있는 보철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