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보면서 끊임없이 인간들이 그들의 기록을 계속 갱신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그 기록의 한계점은 어디까지일까? 인간은 언제나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우리들이 한계라고 생각하는 어떤 벽을 뛰어넘기 위한 시도는 계속 될 것이다. 그것은 동물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의 기록이 계속 갱신되고 있는 사실을 보면 인간의 신체 발달의 진화과정이 계속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인간의 신체는 1백만년 전부터 진화돼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고도의 과학적인 훈련과 새롭게 개발되는 기술장비에 의해서 인간의 기록 갱신의 한계는 어디까지가 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인간의 육체는 8백만년전 우리와 비슷한 원숭이로부터 인류가 갈라져 나온 진화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후 우리는 직립보행을 하게 됐고 뇌가 성장하고 조상들이 지니고 있던 짐승의 털도 없어졌으며 앞으로도 계속 변형돼갈 것이다. 앞으로 예측되는 진화의 변화는 사고를 저장하는 머리는 점점 커질 것이며 음식물이 점점 씹기 편해질수록 우리들의 턱은 약해지며 좁아질 것이다. 신체기관은 점점 발달되면서 더욱 더 예민해지고 민첩해질 것이며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도 다양해 질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몸을 자연선택의 진화의 산물로 이해한다면, 인간이 질병에 걸리는 원인이나 그것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방법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탁월하게 설계 됐지만 한편 매우 조잡한 결함도 가지고 있다. 우리 몸을 왜 좀 더 믿을만하게 처음부터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질병은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 인간은 근본적으로 질병에 걸리기 쉽도록 만든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유전적 결함이 있다.
새로운 환경에 노출될 때 우리 몸의 방어능력보다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의 진화가 훨씬 더 빠르게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만이 자연선택에 가장 잘 적응하는 유일한 종(種)이 아니란 뜻이다. 인간의 신체는 손상되기 쉬우면서도 강인하다. 우리 몸은 때로는 이롭고 때로는 질병에 대해 가장 취약성을 보이는 많은 다양성을 가진 물체와도 같다.
인간이 스포츠의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는 것을 인간 신체의 진화과정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면 인간의 질병에 대한 치유력이나 방어 메커니즘도 현대의학이 질병에 대한 진화적인 측면을 얼마나 다루어 왔는가 하는데도 의심의 여지가 많다. 질병과 같은 비적응적인 현상이 진화의 자연선택에 의해서 변화될 수 있는가를 의심하는 자체가 이상한 일이며 진화론적인 설명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데 도움이 된다고는 생각하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진화생물학의 아이디어를 의학에 접목하는데 게을렀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또한 진화생물학자 자신들도 너무 오랫동안 세월을 허비한 책임도 없지 않다. 의학자들은 진화이론 보다는 실험방법에 대한 신뢰도나 특유의 매력 때문에 진화적 가설과 같은 다소 애매한 문제에 접근하기를 주저했다. 의사들은 과학은 오직 실험적 방법을 통해서만 이루어 진다고 믿고 배웠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그래서 의학은 합목적주의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 하다가 도리어 현대 진화학이 이루어 놓은 확고한 진보의 이득을 얻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어리석음을 초래하고 말았다. 의학은 뒤지지 않으려는 노력 때문에 오히려 발전하지 못한 꼴이 된 것이다.
우리들에게 현재의 모습을 가져다 준 ‘호모사피엔스’ 출현 이후로 인류의 문화가 어떻게 변화돼 왔는가를 뚜렷이 밝혀 볼 수 있는 반면에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신체상의 변모는 문화의 변화만치 그렇게 두드러지게 변화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서 문명의 계속적인 발전이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만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인간이 직접 자연의 온갖 진화과정에 직접 개입함으로서 유전작용을 변형시킬 수 있게 됐다. 생명에 대한 ‘지식’의 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