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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근 교수의 윤리교실(2)]윤리적 상대주의와 절대주의

인류학의 명제 중에 하나가 모든 문화에는 우열은 없고 단지 차이만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윤리도 한 사회 문화의 소산이라면 윤리에서도 우월한 윤리와 열등한 윤리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차이만 존재한다고도 주장 할 수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 때 본 영화 중 기억나는 영화 중에 바렌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네스킬리크 에스키모인들의 풍습과 삶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그중 충격적인 내용 중 하나가 에스키모인들은 부모가 늙으며 설원에 버려서 자신의 부모를 북극곰의 먹이가 되게 한다.
효를 강조하는 한국의 윤리관으로 보면 어린 마음에도 도저히 이해 할 수없는 불효한 행동이라고 생각됐으나 에스키모인의 이러한 장례문회를 성인이 돼서야 이해 할 수 있게 됐다. 즉 북극과 같은 동토는 시산을 매장해서 썩게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신을 없애는 좋은 방법은 곰의 먹이가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죽으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그것이 곡식의 자양분이 돼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듯이 에스키모인의 조상들은 죽어 곰의 먹이가 되고 후손들이 다시 곰을 잡아 먹으므로서 거대한 자연계의 순환이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에스키모인의 장례 풍습은 비윤리적인 것으로 비난 할 것이 아니고 생존 방식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주장을 수용한다면 남태평양 군도에 사는 주민들의 개방적인 성 문화나 예루살렘을 살육한 로마 군인들을 윤리적으로 비난 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이러한 관점을 확대시켜서 윤리란 사람마다 사회마다 세대마다 다르다는 윤리적 상대주의를 받아 들인다면 AIDS 환자를 감염 우려 이유로 진료를 거부한 치과의사나 낮은 의료보험 수가를 이유로 과잉진료를 하는 치과의사들의 행동도 비난할 수가 없다.


앞서 언급한 인류학의 명제와 윤리적 상대주의는 세계화 시대에 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적 태도와 이해를 증진시킨다는 장점도 있지만 치과계와 같은 전문가 집단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의 치과의사들의 윤리에 대한 태도는 설사 동료 치과의사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해도 그것이 자신에게 해를 주지 않고 자기 자신 스스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동료치과의사를 비난 할 필요가 없다는 윤리적 상대주의를 용인 하고 있다.


즉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동료 치과의사도 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지 않겠느냐는 암묵적인 관용과 동료 감싸기 문회가 한국의 치과의사들을 비(非) 윤리적인 치과의사는 아니지만 무(無)윤리적인 치과의사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윤리성과 도덕성을 담보하지 못하면 전문가집단으로서 존립 할 수 없다는 것은 모든 치과의사들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치과계 발전과 국민들의 신뢰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한국 치과계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윤리적 상대주의를 버리고 윤리적 절대주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비 콕스의 주장대로 세계의 20억 인구가 윤리적 상대주의에 근거해 20억 개의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행동 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존속 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한국의 이만명의 치과의사가 이만개의 윤리적 기준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한국 치과계의 윤리적 혼돈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