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잃어 버렸다. 벌써 2개째다. 그것도 단 3일 만에….
이집트에 오기 전 한국에서 사왔던 시계를 전 전날 잃어버린 후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길도 잘 모르는 골목을 헤매고 헤매다가 간신히 찾은 가게에서 샀던 손목시계. 기능도 크기도 영 아니었지만 이제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던 시계였건만 기자에서 피라미드를 보느라고 신경을 못 쓴 사이에 어딘가에서 떨어뜨린 모양이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시계가 들어있는 주머니에 여행책자를 같이 두고서 빼서보고 다시 넣기를 반복했으니 어디서 흘렸는지 찾기는 정말 요원한 일이다. 계획대로 빛과 소리의 쇼를 보고 돌아가면 너무 늦어져서 시계를 살 시간이 없고 다음 날은 새벽 같이 다합으로 가야하고 아무래도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참고 다음 날 부터는 일단 알람시계라도 들고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피라미드를 보면서 연신 사진을 찍었지만 기분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여행의 필수품인데다가 원래 좀처럼 물건 잃어버리지 않는 내가 여기 와서 이미 시계만 2개째 잃어버렸다는 것은 앞으로 여권, 지갑, 카메라 같은 목숨 다음으로 중요한 녀석들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거기에 시계를 자꾸 잃어버린다는 것은 어찌 해석하면 시간을 잃는다는 복선이기도 하기에 이리 저리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새벽 하는 수 없이 제법 두툼한 알람시계를 주머니에 넣고는 다합으로 가는 7시 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전날에 이어서 그 날도 일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우선 먼저 떠난 차가 고장 난 관계로 그 차의 승객을 싣느라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그리 빈자리가 많지 않은 버스 두 대의 승객을 하나로 합치려니 짐칸도 좌석도 여유가 별로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서서 가야했고 같은 돈을 내고 서서가야 하는 쪽은 계속 소리소리 지르면서 항의하는 바람에 다시 버스가 출발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거기다가 다합에 거의 도착할 무렵 얼마 안 남은 승객 중 하나와 심한 말다툼 끝에 화가 난 버스기사가 차를 세우고 나가버리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도무지 이놈의 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초등학생 정도의 분별력도 없는 듯하다. 때가 되면 알아서 들어오거나 누군가가 달래러 나갈 거라 예상하고 기다렸지만 모두들 남의 일인 듯 멍하니 있기만 했다. 참다 참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내려서 안 되는 영어로 떠듬거리면서 기사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봐, 친구. 그만 진정하고 들어가자고. 저 사람이 잘못했고 당신이 옳아."
“와라와라라라."
운전기사가 뭔가를 장황하게 떠들긴 했지만 아랍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데다가 심하게 피곤한 내 귀에는 그저 이렇게 들릴 뿐이었다.
“이것 봐 자네가 운전을 안 하면 난 아무것도 못한다고. 제발 나를 봐서라도 그만 화 풀고 들어가서 가던 길 계속 가자고.”
다행히 어찌어찌 잘 다독거려서 운전기사를 다시 앉히고 출발은 했지만 기분은 최악이었다.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런 나라를 오려고 그리 아등바등 노력했단 말인가. 정말이지 스스로가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9시간이면 도착해야 할 다합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반 자그마치 13시간 반이나 걸렸다. 말이 13시간 반이지 앞뒤가 좁아터진 좌석과 시끄러운 아랍 음악 덕택에 변변히 잠도 못자고 왔으니 몸의 피로는 상당했다.
한국인이 많이 묵는 세븐 헤븐에 짐을 풀고 나가서 저녁을 먹고 오니 이미 10시가 다 되어있었다. 11시에 시나이 산으로 떠나는 투어가 있기는 했지만 당시의 내 몸 상태로는 너무 무리인 듯해서 포기하고 들어가서 자려는 차였는데 다음다음 날 요르단과 시리아로 떠나는 한국인 모임이 있다는 정보를 우연히 듣게 됐다.
다합은 배낭 여행자의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편하고 조용한 동네이지만 같은 이유로 나에게는 시나이 산과 요르단을 가기 위한 거점 도시 이상의 의미는 없는 곳이기도 했다.
원래 이집트를 35일간 여행할 계획을 잡고 왔지만 당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