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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치협 전 대의원총회 의장/ ‘피안성’과 ‘정재영’

특/별/기/고
임철중 치협 전 대의원총회 의장

 

‘피안성’과 ‘정재영’

 

선진국형 의사 전문의제도가 시작되던 50년대 말, 도청에서 관련 행정을 총괄하던 선배가 있었다. 적당한 경력을 갖춘 희망자들을 둘로 나누어 서로 교차 심사하는 경과기간으로 골라잡을 수 있는 지위에 있었는데, 고민 끝에 자신의 분야인 예방의학을 버리고 당시 고소득을 누리던 일반외과를 택하였다. 후일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뒤 전공 보드가 없어 숱한 불이익을 겪었다. 또 하나 예를 들자. 절친 하던 중견의사 두 분은 밤샘 토론 끝에, “이제부터 너는 안과를 해라, 나는 이비인후과 할 테니”했다고 한다. ‘안·이비인후과" 간판이 흔하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의사 전문의제도도 시작은 중구난방이었다.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시비도 많았다. 가장 큰 불평은 수련경력이 없는 개원가 의사에게서 나왔다. 본래 family doctor 개념이지만, 당장은 이 불만을 무마(?)하려고 "가정의학과전문의"가 탄생하고, 일정 교육만 마치면 거의 다 자격을 주어, 한국전문의제도는 실패했다는 주장에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의사들은 ‘실패"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문의제도는 수많은 전공자를 배출하여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대형병원에 고급인력을 공급하고, 세부전공 발전으로 새로운 전문과들을 탄생시켰으며, 대한민국 임상을 세계 최고수준으로 격상시켜 오늘날 몇몇 과는 선진국에서도 배우러 온다.
만약 의료제도의 기본골격인 전문의제도가 실패했다면, 먼저 의과대학 입시경쟁률이 떨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다음은 고급인력들이 개원가에 나와서는 전공을 썩힌다는 주장인데, 그 원인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개인클리닉에서는 외래만 보고 수술과 입원은 병원시설을 빌려 쓰는 attending system의 부재에 있다.

 

의사회 전문의 ‘타산지석’교훈

 

이처럼 의료계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사실은 사회 경제학적인 흐름과 깊게 맞물려 있다. 그러나 의사 대부분이 병원근무자인 까닭에, 개원가를 위한 장기전망이나 일관성 있는 정책수립에는, 의사협회의 역부족과 병원협회의 방관 내지 무관심이 장애로 작용한다. 서비스공급자인 의사가 능동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행정당국은 당연히 소비자인 환자 편에 서서 정책을 세우고, 그 결과는 공무원의 임면권을 가진 정치인의 구미에도 딱 들어맞는다. 비록 궁극적으로는 국민건강에 역기능을 할지라도, 정치인은 당장 눈앞의 표에 끌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치협은 이기택 집행부 때부터 십여 년 간 매우 적극적인 활동으로 의료계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초대 ‘상임회장"인 이수구 집행부는 한발 더 나가 당국의 정책수립까지 리드해나가고 있다. 다만 너무 앞서다보니, MB식 유행어를 빌려 일부 회원들과 ‘소통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은지 우려되고, 이제 막 전문의제도가 걸음마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치과계가 삐걱대고 있는 느낌이다. 의사회가 사회 경제학적인 변화에 따라 겪어온 흐름을 되짚어 보며 타산지석의 교훈을 찾아보자.


불량한 환경에서 전염병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가난한 시절에 사람의 ‘배를 가르는" 일반외과는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GS의 약자는 말 그대로 General Surgeon이 아니라 Great Surgeon이었다. 고도성장기에는 공장짓기와 대형 토목공사가 전국을 뒤덮었다. 산업현장의 사고예방 개념과 지식이 부족하던 시절이다.


현대의 대청댐 공사비 7백억원 중 인명사고 대책비를 30여 억으로 기억하는데, 대부분 정형외과 수술비로 나갔다. 개업 3년이면 빌딩을 지었다. 베이비 붐으로 호황을 누린 산부인과는, 달아오른 경기에 편승한 향락산업의 뒤처리만으로도 호황을 이어갔고, 국가시책인 가족계획으로 복강경 특수까지 누렸다. 산부인과가 모체였던 몇몇 대학병원들이 그 시절 호황을 웅변한다. 1977년 시작된 의료보험이 전 국민으로 확대되고 소득이 만 달러에 접근하면서 의료계 지도가 바뀌었다. 메디컬 파트 특히 소아과가 붐을 맞았다. 혼자서 하루에 4백명을 진료하는 예가 흔하고, 몇몇 내과도 2백명 소문이 돌았다. 반대로 숫자로 채울 수 없는 전문과는 소득이 늘어난 환자들을 상대로 보험 ‘비급여 항목" 개발에 전념하였고, 그 결과물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트리오, 즉 ‘피안성"의 호황이다. 


시대에 따라 의료계 판도 변화

 

인구의 노령화와 요양보험 확대가 시작되면서, 질병의 치료 보다는 건강과 웰빙의 관리가 돈이 되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요양에 필요한 정신과, 노인의 통증과 물리치료를 다룰 재활의학과, 진단의 꽃인 영상의학과가 각광을 받아, 몸값이 많게는 열배로 뛰었다고 한다.‘피안성"이 ‘정재영"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생활환경 향상과 내시경수술의 발달, 그리고 산업현장 및 교통수단의 안전장치가 강화되면서, 일반외과와 정형외과 수요가 줄었다. 출산율이 줄자 많은 산부인과가 문을 닫고, 의사 일인당 환자수를 체크 당하면서 소득이 줄은 소아과는 다시 출산격감의 후폭풍을 맞는다. 아이가 크면 어른이니 내과를 비롯, 모든 과가 시차만 다를 뿐 같은 처지가 된다.  의사 수는 계속 느는데 인구노령화와 정부의 복지증진정책은 불변이니, 보건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이 진료비에서 ‘요양" 쪽으로 간다.
비인기종목(?) ‘정재영"에 폭발적인 수요가 발생한 이유는 이렇게 설명이 된다.

 


‘가정의학과’남발은 기우… 성공한 전문과 입지


더불어‘가정의학과"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건강검진을 포함, 웰빙과 건강관리 내지 노인의 요양 등은 깊고 세분된 전문과 보다 넓은 통합적 시야를 요구하므로, 병원 스탭 수요가 폭주하고 개원에도 순발력이 뛰어난 인기과가 된다.  출발 당시 남발(濫發)에 대한 우려는 ‘세월"에 따른 자연정리(은퇴 등)와, 의사의 대부분을 포용하는 병원에서 ‘미수련" 보드맨을 고용할리는 없으니, 결국 기우(杞憂)에 그쳤다.


출발 이후 엄밀한 수련과정을 지켜 가장 성공한 전문과의 하나로 성장한 것이다.
가정의학과와 정재영의 사례는 치과계의 AGD에 대한 전망에 훌륭한 참고 대상이다.  4반세기 전 치과전문의제도 논의가 표류하고 있을 때에,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인사가 제시한 미수련 개원의에 대한 대책이 가칭 ‘가정치과전문의"였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의료 환경은 정부의 정책방향 등 사회경제학적인 변수에 극히 민감하다. 우리에게는 변화에 적응할 무기를 하나라도 더 갖추고, 정책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단 한 분외에 대의원 전원이 출석하여 전문의제도 대원칙에 합의한 1999년 임시총회에 이르기까지, 치과전문의제도 실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경과조치"였고, 그 때문에 수련을 마친 회원을 포함한 모든 선배들이 전문의자격취득을 ‘포기"하는 ‘희생" 위에 의안이 통과되었던 것이다.

 

AGD는 결국  전문의로 가게될 것


AGD가 당장은 수련기회가 없는 회원의 임상실력 제고를 위한 장치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전문의로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옳은 방향이다. 첫째, 치과계에도 의료복지의 대세인 건강관리와 요양을 총괄하는 복합과가 필요하고, 둘째 전문의제도 전면실시에 맞추어 낮은 단계의(저준위) 보드일망정 모든 회원들에게 취득 ‘기회"를 주는 통과의례가 반드시 필요하며, 셋째 그것이 격변하는 의료 환경 속에서 치과의료계의 ‘지분(持分)"을 확실하게 지켜줄 무기의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59차 의총에서 AGD제도의 경과조치가 너무 앞서갔고 회원들과 소통부재가 심했다는 호된 질책에 이어 집행부의 사과와 해명이 있었다. 제도가 법적 뒷받침을 받도록 내용의 보완 및 수정을 요구하는 의안도 통과되었다. 문호가 너무 넓다는 지적은 의사들의 가정의학과 예를 보아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앞서 실시된 원로층에 대한 교육은 점검과 보완을 위한 pilot study 임을 미리 밝힌 바 있다.


시간이 촉박하니 추가신청을 받으라는 요구는 당연히 수용될 것이고(시작부터 추가신청을 표방할 수는 없다), 경과조치를 너무 서둘렀다는 비난은 당국을 리드하여 뒤에 닥칠 혼란을 미리 막으려던 집행부의 ‘능동적 충정"으로 사과를 받아들이자.


오명(汚名)을 달고 태어난 가정의학전문의가 오늘날 의료계의 효자가 되었다.
우리도 길게 또 멀리 내다보고 단합을 이루어, AGD가 회원 모두를 위한 미래지향적인 제도로 정착될 때까지 집행부와 함께 노력하자. AGD를 주제로 한 소모적 논란을 이 시점에서 마무리하고, 이를 격변하는 의료 환경 속에서 치과계의 지분을 지키고 나아가 파이를 키워 낼 효자로 자라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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