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우리는 보통 사랑니라 부르지만 이는 본명이 아니고 별명이다. 서구 의학적으로는 제3대구치(第三 大臼齒, third molar)라 부른다. 어려울 것 없이 세 번째 어금니라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치아를 별명으로 사랑니라 부르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부를까? 많은 나라를 조사한 자료는 없지만 흥미롭게도 영국, 일본과 한국이 서로 다르게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여러 나라들에서는 이를 지치(智齒, wisdom tooth)라고도 부른다. 지(智)란 지혜다. 사랑니가 날 때쯤이면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 지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지혜라고 하기 까지는 좀 뭣하다 해도 철이 없는 철부지 어린아이 때에 이 치아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성인이 다 되어서야 나온다는 말일게다. 인간의 일생 중의 한 때를 지칭하면서도 정신적인 면을 강조해서 지어낸 감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 말은 다소 현실적이다. 제3대구치가 일본에서는 오야시라즈(親知らず)라고 불린다. 오야는 부모, 시라즈는 알지 못 한다의 뜻으로 ‘부모의 얼굴을 모른다’라는 뜻이다. 물론 사랑니를 나타낼때 뿐만 아니라 부모의 얼굴을 모르는 자식 즉 고아(孤兒)를 지칭할 때도 사용한다. 처음 유치에서 영구치로 이를 교환하는 예닐곱 살 되는 어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제법 큰 아이들도 이를 갈 때면 큰일이나 난 듯이 야단법석을 떨게 된다.
이가 많이 흔들려 갈 때가 되면 부모들은 벌써 그렇게 커버린 아이들이 귀엽고 대견해서 짐짓 중요한 의식을 치르는 양 아주 정성스럽게 이를 빼주고 어디엔가 잘 버리곤 한다. 옛날에도 부모들의 그런 자식 사랑은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유치를 하나둘 더 갈고 어금니가 나올 때 까지는 부모들이 관심을 가지고 더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니가 날 때 쯤 이면 사정이 다르다. 옛날에는 사람들의 수명이 얼마 되지 않았을 터이고 그러므로 사랑니가 날 때 쯤 즉, 아이들이 약 20세 이후가 되면 그의 부모들은 사망하여 더 이상 그 일을 알지 못하게 될 터이다. 혹은 살아 계신다 하더라도 부모들과 자식은 더 이상 그러한 일에 관심을 갖게 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부모들이 알지 못하는 ‘일(事)’이 되고 ‘이(齒)’도 되는 것이다. 이름을 붙이는 그 방법이 매우 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다소 비장함 마저 들기도 한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냉정한 일본인들을 보여 주는 또 한 가지 예라고 말한다면 너무 비약적인 발상일까?
거기에 비하면 한국은 어떤가? 모두 잘 알다시피 우리는 사랑니라 부른다. 사랑니! 너무나 멋진 이름이지 않는가? 어쩌면 치아의 이름에 사랑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생각을 했을까. 나이가 어느 정도 차서 사랑을 알 때쯤에 나오는 치아라는 말이다.
이팔청춘도 지나고 성인이 되어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때에야 맹출한다는 말이다. 혹자(或者)는 韓民族을 恨民族이라 한다지만 그것은 편협된 생각이다. 우리는 예로부터 멋과 풍류를 즐겨 온 민족이다. 음주와 가무, 각종 놀이를 즐겨 왔던 한민족이기에 이러한 발상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정(情)과 흥(興)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낸 이름으로 참으로 낭만적이기 까지 하다.
이 같이 제3대구치에 대한 이름이 나라에 따라 다른 것은 그 나라 국민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세 나라 모두 다 나이가 들어 그 치아가 맹출한다는 것을 나타낸 것에는 차이가 없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나는 현학적(衒學的)(이고 이성적(理性的)인 이름인 지치(智齒), 실제적이면서 비정(非情)한 이름 오야시라즈(親知らず)보다는 운치가 살아있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사랑니라는 이름이 제일 마음에 든다. 이를 우리들은 오래 전부터 사용해 왔을 터지만 현 시대의 감각을 고루 갖추고 있는 매력적인 단어이다. 감성(感性)을 다른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미래사회에서 이러한 낭만적 기질을 가진 한국인이 앞장서서 나갈 것이란 기대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인 나만의 생각일까?
박정용
청주 그린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