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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드라마 바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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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드라마 바루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재주가 있다: 못된 사랑" “기름통을 짊어지고 불 섶에라도 뛰어 든다: 제빵왕 김탁구" “똥 싼 놈이 성 낸다: 대물"  TV 드라마 대사에 쓰인 곁말들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풍성한 우리 곁말은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열 개 쯤은 쉽게 댄다.‘고드름장아찌처럼 싱겁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을까. 대장간에 식칼이 없다. 명주 고르다 베 고른다. 바늘 가는데 실 간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호박이 넝쿨 채 굴러 들어온다.’등등.


맨 앞의 세 곁말은 아주 잘못 쓴 경우다. 첫째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 와 ‘굼벵이도 뒤집는 재주가 있다" 두 가지를 꿰어 맞춘 엉터리다. 
둘째는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 든다"가 원본인데 난데없이 웬 기름통?
셋째는 ‘똥 뀐(방귀 뀐) 놈이 성 낸다" 해야 맞다. 방귀니까 시치미를 떼고 화내는 척 하지, 쌌다면 그럴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곁말은 내용이나 사용법에서 우리 ‘고유"의 화법(話法)에 가깝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처럼 일본과 공유하기도 하지만, 빈도와 용법에 차이가 크다.


외국어로 적당한 명칭도 없다. ‘Idiom·colloquial·conversational·quotation·adage·axiom·proverb" 해서 ‘관용구·구어적·회화적·인용구·속담·경구·비유" 해봐도 맘에 차지 않고, 사전대로, “an allusive(periphrastic) remark with a bantering simile or metaphor" 길게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 즉 “조롱 섞인 직유 또는 은유가 들어있는 암시적인 말"인데, 곁말에는 조롱이나 빈정거림이 거의 없어 cliche나 quip도 아니다. 결국 곁말은 “척 하면 홍시요 딱 하면 땡감"으로 알아 듣는 감성의 기호, 즉 동감을 확인하는 수작(酬酌)이요, 판소리 추임새처럼 대화의 리듬을 보충하는 음악부호 같은 것이다. 곁말을 주고받는 것은 땡감처럼 서먹한 경계를 풀고 홍시같이 끈끈한 동료의식을 나누자는 양해각서의 교환인 셈이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동성애 장면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막장드라마에 대한 반발로 따뜻하게 쓴다더니, 일부 시청자에게는 또 다른 막장이 된 셈이다.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김 작가의 필력은 여전하다. 그녀의 특징은 첫째 호흡이 긴 점이다. ‘불꽃’에서 참고 참다가 최종 회 마지막 장면에서 화산처럼 폭발하는 이영애의 격정은 흉내 내기 어려운 기법이다. 다음으로 상다리가 휘어질듯 차려낸 밥상 앞에 대가족이 둘러앉은 장면 또한 김 작가 상표다. 셋째 전통요리보다 더 감칠 맛 나는 것은 대사 속에서 팔딱팔딱 튀는 우리말 표현이다.


그래서 ‘언어의 마술사" 라고 하지만, 그 점이 바로 내놓는 작품마다 국내 대박, 해외 쪽박의 이유이기도 하다. ‘감칠맛"을 외국어로 옮기기는 거의 불가능 하니까 한류 열풍 속에서도 해외에는 팔리지 않지만, 우리말 표현이 다양하고 정확하다는 점에서 그는 작가들의 롤 모델이다. 국어가 어렵고 발전이 더딘 이유는 너도나도 우리말을 아끼고 정확하게 쓰기를 학습하는 데에 게을렀던 탓이다.


우리말에 대한 외국인의 이해가 깊어질수록 세계에 널려 있는 교민사회를 거점으로 ‘정통"드라마가 점점 더 각광을 받게 되리라고 믿는다. 보통 사람은 물론 작가들이 많이 틀리는 말 중에 하나가 ‘칠칠맞다" 이다. ‘민첩하다"는 뜻에서 나왔으니 본래 ‘칠칠치 못 하다" 해야 맞는다. 드라마 작가들부터 앞장서서 칠칠치 못한 표현을 들어내고 칠칠맞은 글을 쓰는 것이 ‘우리말 바루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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