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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의사와 휴머니티
“4년제 대학 졸업 후 의·치대에 입학하는 전문대학원제도도 사실은 인문학 강화가 요체다." 본란(欄)의 첫 번째 칼럼 ‘전환기의 진통"(10.09.13) 중 한 대목이다.
‘전문인 AS는 셀프"(10.11.08)에서는, 의사의 의무를 보편성(표준성)과 향상성 및 인간성(humanity)의 셋으로 나누어 살피되, ‘인간성"의 논의는 뒤로 미룬 바 있다.
“사람은 왜 사는가?" 라는 의문에 해답을 찾는 ‘인간성의 도야(陶冶)"가 곧 인문학이라면, 이에 접근하는 길의 하나로서 전문대학원 제도에 대다수가 동의하리라고 믿는다. 한국 고등학교는 의무교육 과정이다. 온갖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고교평준화의 틀을 고수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교생이 규격화된 프로그램에 묶여 대학입시 대비훈련만 강요당하고, 급우들 사이에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익힐 여유와 공간은 대학으로 떠넘기고 있는 바, 전문직대학 진학생들은 결국 이런 시간마저 박탈당한다. 전문대학원 제도에는 문리대(liberal arts & sciences)에 준하는 개념에서, 사회적인 영향력이 매우 큰 이들 고급인력들에게 4년제 대학과정을 미리 거치도록 하자는 뜻이 담겨있는 것이다.
작년 10월 팔순의 치과의사인 원로배우 신영균씨가 500억원의 재산을 기부하였고, 12월 2일 치의신보 창간 44주년 기념식에서는 김우성 스마일재단 이사장이 올해의 치과인상을 받았다. 재산 또는 재능으로 기여·봉사하는 행위는 가장 직설적인 휴머니티의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이를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들을 존경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혜택 받은 사람이 더 베풀라는 말에 다름 아니건만 기실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김우성 이사장은 장애인 스키협회 창립을 주도하여 작년에는 밴쿠버 동계 패럴림픽 한국선수단장을 맡았고, 2002년 저소득장애인에게 치과진료비를 지원하는 비영리 스마일재단을 만들어 이사장까지 역임하였으니, 이번 수상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1년 후배로서, 불평은 참아 주리라고 믿고 그를 해부해(?)본다. 타고난 성품이라든가 기타 형용사를 빼고도 그는 두 가지의 ‘특혜"를 받은 사람이다. 첫째 자타가 공인하는 ‘범생이의 소굴", 미션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둘째 그가 입학한 1962년 서울대학은 전무후무하게 ‘채력장 점수"를 입시에 반영하였다. 등산, 스키 등 만능 스포츠맨에 크리스천으로서, 저소득과 장애의 이중고를 겪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고통을 덜어줄 의술과, 스포츠를 통하여 희망을 심어줄 재능의 삼박자를 갖춘 것이다. 물론 실천에 옮기는 선량한 품성은 그만의 것이지만….
신영균 선배 또한 한영고에서 레슬링을, 대학에서는 연극을 하였으며, 개업초기에 치과에 드나들던 친구 영화인들의 권유로 연극·영화계에 데뷔한 것으로 안다.
경쟁이 치열을 넘어 전쟁터에 방불한 의·치대 지망 고교생들에게, 종교생활·취미활동은 고사하고 원만한 교우관계가 가능한지는 불문가지요, 김우성·신영균 같은 인물이 나올 토양은 점점 척박해간다. 우리보다 고등학교 여건이 훨씬 좋은 미국도 대부분 대학원대학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수한 교수진과 막대한 정부지원으로 전국의 인재들이 몰려드는 현실을 감안하여, 의·치대뿐만 아니라 서울대학 전체가 학부를 줄이고 대학원대학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이 30여 년 전부터 무성했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2002년 전문대학원 논의가 시작될 때,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이 앞장서서 동의하고 상당액의 특별연구비까지 받지 않았는가? 다른 대학들은 몰라도 최소한 서울치대의 예과 제도 환원주장은 도덕적 해이로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