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시선
임철중 칼럼
<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희망사항
직선제가 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유리하고, 긴 안목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강경구호가 난무하리라. 인맥, 지연과 학연을 동원한 선거 전문가의 마당놀이 판이 되기 십상이다. 어차피 대다수 회원에게는 후보들 모두가 낮선 얼굴일 터이니까.
지부 대의원 선출부터 다져나가서 중앙대의원을 잘 뽑는 것이 중요하지 직선제가 정답은 아니다. 현 제도하에서도 과열 방지용 선거공영제를 연구하고 있는 터에 직선제를 하면 모든 게 나아지리라는 생각은 너무나 막연하고 추상적이다. 아무래도 새마을호 세워둔 채 나귀타고 한양가자는 얘기로만 들린다.
윗글은 1995년 3월 치의신보에 쓴 칼럼 끝부분이다. 지난 16년 동안 달라진 것이 있다면 회원이 몇 천에서 2만 여명으로 늘고 새마을호보다 두 배 빠른 KTX가 달린다는 사실 뿐이다. 네 배로 커진 조직이나 급변하는 사회 둘 다 ‘역사의 후퇴"가 아니라 전향적인 ‘대의 민주주의"를 요하는 조건들이다. ‘직선제"를 경험한 이웃동네를 참고로 결과를 그려보자. 첫째 지나친 과열에서 오는 상호폭로와 고소, 고발(당선무효소송 포함)이 있다. 상처투성이의 집행부는 국민의 비웃음과 회원들의 불신 속에 회무 추진력을 잃고 임기 내내 비틀거린다. 둘째 등기우편으로 오가는 직접 투표비용만 수억 원에, 통상 20% 미만인 투표율을 올리기 위한 막대한 홍보비가 들어가고, 후보들의 선거비용은 그 몇 배일 것이다. 그럼에도 제1위의 득표율이 한 자리 수에 머문다면, 재선거 가능성을 포함하여, 그야말로 ‘고비용 저효율"의 극치가 된다. 셋째 전문직 권익단체의 선거공약은 태생적인 한계로 큰 차이가 날 수 없다. 오히려 대의원들의 견제와 촉구가 더 중요한데, 회장선출권이 없는 총회의 견제력은 분명히 반 토막 나고,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전달할 길은 사실상 좁아진다. 결국 직선제를 통한 회원들의 회무에 대한 관심제고와 다양한 의견수렴은 ‘희망사항"에 그칠 뿐, ‘돌이키기 힘든 역기능"만 남길 가능성이 매우 크다.
브레이크 없는 상황에서 달랑 선거공약 하나만 믿고, 3년에 단 한번 뿐이요 참여율도 저조한 직선제 선거에‘올인" 하는 일은, 도박에 가까운 모험으로 보인다.
“최고학력을 자랑하는 전문직단체에서 왜 해묵은 직선제논의가 그치지 않는가?"
날로 치열해가는 경쟁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탈출구로서 획기적인 변화를 바라는 ‘기대심리", 적어도 해답의 일부는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이 정서는 의사반영채널에서 소외되어있다고 믿는 젊은 회원과 여성회원들에게 팽배해 있다.
개원경력 십년이 넘거나 회무경험을 쌓아봐야 비로소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깨닫는다는 통념을 떠나서, 또한 제한된 정원 때문에 지부회장단 외에는 대의원으로 진입할 틈이 별로 없다는 점을 감안하여, 이들을 포용할 대안을 생각해보자.
정원(201) 10% 이내의 의석을 여성과 젊은 회원에게 각 10명씩 추가 배정한다(총 221명). 젊다 함은 예컨대 개업 10년 또는 면허 취득 15년 미만으로 하고, 대의원 정원이 작은 지부부터 차례로 배정하되, 지부별로 지명(指名)이 아닌 확실한 선출과정을 의무화 한다. 역차별을 피하여 법적 근거를 ‘한시적(예; 6년)"으로 못 박고, 만기 후에도 청년과 여성의 총회진출이 답보상태라면, 그때에 재논의 한다.
옆 동네의 경험을 보고도 같은 길을 답습하지 말고, 직선제개정안의 ‘취지"를 살려 실현가능하고 현명한 정답을 찾도록 정관개정위원회에 위임하여, 그 결과를 차기 총회에 상정토록 함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