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치의신보 편집인 한마디
“그땐 그랬지”
본지는 지령 2000호를 맞아 제6대 선우양국 편집인부터 제 27대 안민호 편집인까지 최근 근황과 재임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그리고 치의신보 발전을 위한 고언 한마디를 들었다.
선우양국(6대)
1962.10.11~1963.10.11
요양 중
김황중(7대)
1963.10.4~1964.10.5
별세
이한수(8대)
1964.10.5~1966.10.21
대한치과의사학회 종신회원으로 활동해 왔다.서울 당산동에 살고 있다.
최진환(9대)
1966.10.21~1968.10.18
해외 체류
강준설(10대)
1968.10.18~1970.10.22
2년전까지 개원했다. 최근 심장수술을 했다.
김의배(11대)
1970.10.22~1972.4.21
당시 회장이 서영규 회장이었고 월 1회 발행이었다. 한번 발행도 상당히 어려웠다. 당시 광고라는 것도 없었다. 당시 회원이 3천여명이었고 기자도 1명 있었다. 서영규 회장이 노력해 일본회사의 광고를 유치했다. 신문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몇 명 안돼 빈약했지만 지금 발전된 모습을 보니 너무 좋다.
최원덕(12대)
1972.4.21~1974.4.13
건강상의 이유로 2011년 9월 10일부로 포항성모병원에서 퇴직했다.
치의신보 최초로 4면에서 16면으로, 월보에서 주보로, 흑백에서 천연색으로 발간하게 했다. 수필도 처음으로 시작해 제1호를 신문에 게재했다.
날로 발전함을 축하드린다.
박윤수(13대)
1974.4.13~1976.4.17
별세
윤흥렬(14대)
1976.4.27~1978.4.1
별세
이웅순(15대)
1978.4.1~1978.11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서 개원하고 있다. 기독실업인회(CBMC)에서 일한지 20년이 넘었다. 당시 월 1회 발간이었고 인쇄 설비도 돼 있지 않았다. 등사판으로 제작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지금 치의신보 아주 훌륭하다. 최근 말하는 SNS 시대에 걸맞게 대변혁을 일으켜 전문신문으로서 손색없도록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