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선물로 남을 봄날의 추억
“다음은 크라잉넛의 무대입니다.”
2013년 5월 10일 전국 치의학도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객석에 홀로 앉아 축제가 마무리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4개월 전, 전치련 의장이라는 명찰을 처음 가슴에 채웠던 순간부터 무대의 음악을 즐기고 있는 지금까지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첫 전치련 회의를 주관하면서 각 학교 학생회장들과 치의학도들의 화합을 이끌 것을 다짐했고, 나는 우리학교에 전국의 많은 학생들을 초대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스폰서를 찾는 일, 숙소를 정하는 일, 직원들의 무시를 받으며 집결지를 섭외하는 일 등 무던히 애를 쓰며 나아가야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은 장소섭외였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제약이 있었던 점, 시기가 맞지 않아 섭외가 되지 않았던 점 등 갖가지 난관에 봉착하며 나를 절망에 빠뜨렸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좋은 공연장이 있어서 대관을 하려 했지만 B 가수 콘서트를 하필 그 때 한다고 한다. 정말 총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했다. 겨우겨우 시설관리공단에서 담당하는 장소를 대관했지만, 여기도 확실한 곳은 아니었다.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행사가 생긴다면 우리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는 것이었다. 결국, 전치제를 한 달 남겨둔 채 여기도 물거품이 된 상황. 이러다 전치제를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포기하라는 법은 없었다. 교수님들께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장소섭외 문제를 가까스로 잘 해결할 수 있었다. 몇 개월간 준비한다고 했지만 확실히 완료된 건 이것 뿐이었다. 그래도 가장 큰 어려운 과제는 해결했으니 나머지 세부적인 부분들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생각대로 잘 진행이 되어갔다.
정신없이 시험기간이 지나갔고, 최종 점검을 하며 전치제가 일주일 전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전치제 당일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한다. 그동안 함께 노력한 시간들이 수포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나는 일주일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며 야속한 하늘만 올려다 보았다.
전치제 전날 저녁, 비는 내 맘을 헤아리지 못했는지 강한 바람을 동반하며 내리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빗줄기였고, 강한 바람이었다. 전날 설치한 천막에 비가 고여 언제 무너질지 몰랐고, 행사장 이동의 문제, 운동장에서 예정되었던 식사 등 여러 가지 문제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고맙게도 이른 아침에 나와준 학생들이 천막주변을 깨끗이 청소해주었고, 천재지변을 이해해준 전국의 학생들이 젖은 땅에 아랑곳없이 즐겁게 왁스카빙대회, 덴티폼 조립대회 및 각종 운동경기에 참여해줘서 성공적으로 진행이 되었다. 이렇게 준비과정들을 떠올리다보니 어느덧 초대가수의 공연이 끝나고 있었다.
이번 전치제를 준비하면서 겪었던 시련만큼 내 자신도 한층 성숙해진 것 같다. 이렇게 큰 규모의 일을 준비해 본 것이 처음이라 역경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회 임원들, 전치련 임원들과 같이 고생하며 추억도 많이 쌓았고, 전치련 의장이라는 자리를 맡지 않았다면 해보지 못했을 값진 경험들이기에 나는 이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번 계기로 일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남자들이 흔히들 군대는 한 번 정도 다녀올만하다고 한다.
전치제도 한 번 정도 준비해볼만한 것 같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상진
전치련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