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이의 도보여행 ④
서울 백사실계곡과 북악스카이웨이
서울에 남은
최후의 비밀 정원
구불거리는 숲길에서 길의 소실점은 찾아낼 수 없다. 북악스카이웨이에서는 직선으로만 뻗을 것 같은 자동차 길도 예외가 아니어서 커브의 뒤태를 감추는 은근함을 내포한다. 이러한 은근함은 찻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서도 그대로 접목된다. 삭막할 것 같은 찻길 옆 산책로는 길찾기의 부담감 없이 산보객들을 종로구 숲길에서 성북구 숲길로 옮겨다 놓는다. 그 전에 걷는 백사실계곡은 짧으면서도 도심 속 최후의 비밀정원다운 아련함을 풀어낸다. 또 그보다 전에 지나는 홍제천은 고려시대의 걸작인 보도각백불과 홍지문, 세검정을 보며 나아가는 역사의 길이기도 하다.
#홍제역~ 홍제천길(홍지문)/50분/2.7㎞
지하철 3호선이 지나는 홍제역에서 첫 발을 내딛는다. 1번 출입구를 나서면 가뜩이나 좁은 인도에 여러 시설물이 들어서면서 더 번잡해진 거리로 나온다. 나온 방향 그대로 3분 정도 가다 유진상가 전에 작은 찻길을 건너지 말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5분 정도 걸으면 만나는 효제약국 앞에서 길을 건너면 홍제교 옆으로 홍제천 물줄기를 따라 걸을 수 있는 천변길로 내려갈 수 있다. 그곳부터 맑은 물이 눈을 시원하게 닦아내는 홍제천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홍제천길은 다른 천변길보다 도회적이다.
물줄기 양옆으로 석축이 직각으로 섰고 그 위로는 찻길까지 놓였다. 심지어는 물길 위로 교각을 세워 놓은 내부순환 고가도로에게 하늘 조망권을 침해받기도 한다. 이런 주변 환경 때문에 홍제천길 옆으로 관목을 심고 야생화도 식재했지만 이 구간만큼은 걷기코스로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 같다.
물줄기와 수평을 이루던 홍제천길은 15분 정도 지나면 물줄기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걷게 만든다. 그리고 곧 천변 너머 절벽 밑으로 신비로운 자태의 누각과 그 안에 모셔진 백불(白佛)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백불 앞을 흐르는 홍제천은 지금까지 걸으며 보았던 팍팍한 도심의 물줄기가 아다. 백불 앞 홍제천은 천연덕스럽게도 자연계곡의 멋들어진 모습으로 순식간에 바뀌어 있다. 절벽을 이루는 탕춘대 능선의 끝자락과 옥천암 암자의 전각들이 만나면서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한국적인 공간미가 볼만하다.
보도각백불 쪽으로 건너는 다리를 지나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무찌르는 데 큰공을 세웠다는 전설의 백불을 친견한 후 다시 나와 홍제천 길을 계속 걷는다. 10분 만에 탕춘대성의 성문인 홍지문(弘智門)에 다다른다. 숙종 45년에 탕춘대성과 함께 세워진 홍지문은 1921년에 허물어진 것을 1977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불렸던 홍지문의 편액은 숙종이 친필로 직접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백사실계곡~북악스카이이웨이 입구/ 50분/2.4㎞
홍지문을 지나면 곧 상명대학교로 향하는 입구이기도 한 세검정사거리다. 세검정 방향으로 길을 건너 5분만 가면 인조반정에서 이름의 유래를 찾는 세검정(洗劍亭)정자가 있다. 칼을 씻는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정자는 인조반정 때 이곳에서 광해군의 폐위를 논의하고 그 앞 바위에서 칼을 갈아 날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인조반정을 성공한 몇몇 공신들이 피 묻은 칼을 이곳에서 씻었다는 말도 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이곳은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워 오래 전부터 정자를 세워 풍류를 즐기던 명소였다고 한다. 지금도 정자 앞의 너럭바위를 돌아 떨어지는 계류의 유려한 흐름이 지나는 이들의 마음도 시원하게 적셔준다.
세검정 정자를 지나면서 정자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앙증맞게 좁은 산책로를 몇 십 미터 걷게 된다. 그리고 개천 옆에 조성된 체육공원 쉼터를 따라 걷다 천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계속해서 상류로 향한다. 왼쪽으로 휘어지는 물길 옆을 5분 정도 걷다 오른쪽에 ‘패밀리마트’ 편의점이 나오면 그곳을 끼고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간다. 이후로 백사실계곡까지 가는 길은 골목 갈림길마다 안내판이 안내를 한다. 혜문사라는 절 이정표도 같은 방향이니 참조하자.
백사실계곡은 현통사라는 사찰 앞을 지나면 물줄기와 함께 길을 내어주기 시작한다. 비가 내린 직후에 찾으면 위풍당당한 계곡 물줄기에 속이 다 후련해 질 것이다.
특히 현통사 앞은 낙차가 큰 폭포가 형성되어 일부러 수량이 많을 때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필자는 우렁차게 흐르는 물보다는 부끄럽다는 듯 졸졸졸 흐르는 물줄기가 백사실계곡과는 더 잘 어울린다고 본다. 그만큼 이곳은 은밀한 비밀의 정원 느낌이 강하다.
물줄기를 따라 닦여 있는 길을 오르면 백사 이항복 대감의 별장터였다는 넓은 연못 공터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물줄기를 왼쪽에 두고 큰 길을 따라 간다. 그럼 얼마 가지 않아 부암동 주택가가 나오며 백사실계곡의 비밀스런 숲길은 마무리된다. 부암동 골목길을 만나면 왼쪽 담뱃가게가 있는 쪽으로 나아간다. 포장된 골목길을 따라 10분 못 미쳐 가면 노란 폭스바겐 자동차가 있는 산모퉁이 카페 앞을 지난다.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한 산모퉁이 카페를 지난 지 3분 만에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야할 북악스카이웨이 산책로로 향하는 중요한 갈림길을 만나니 신경을 바짝 써야한다. 이 갈림길에 특별한 이정표는 없고 왼쪽으로 조그만 주차장과 함께 가정집으로 올라가는 작은 계단이 있다는 정도만 설명할 수 있다.
또 입구 전봇대에 ‘북악산길 산책로 가는길’이라고 쓰인 이정표가 있다. 이 골목은 포장길이지만 곧 양옆으로 우거진 숲이 그늘을 드리운다. 잠깐 오르막을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북악스카이웨이 찻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