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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1874번째] 처음처럼

Relay Essay제1874번째

 

처음처럼

  

3주째 치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치과재료회사에 다니는 저에게 ‘치과’와 관련된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업무의 연장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지금 업무 보고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착각이 잠시 들 정도로 말입니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늘 입에 단 음식을 달고 사는 저는 3년 넘게 그 흔한 스케일링 한 번 안 받고 치과를 멀리하고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이가 멀쩡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던 어느 날, 드디어 통증이 찾아오고야 말았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고, 갈 때까지 가보니 딱 한군데 남은 곳이 바로 ‘치과’였습니다.


근무 시간 도중 급하게 예약을 잡고 사무실을 나서니 어느 새 통증은 잊혀졌고, 수업 시간 땡땡이 치는 고등학생의 마음으로 그렇게 치과로 향했습니다. 가벼웠던 마음도 잠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동시에 풍겨오는 치과 특유의 냄새와 마주하니 손발에 땀이 나기 시작했고, 진료실로 들어가 체어에 앉는 순간 맥이 풀렸습니다. 순순히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모든 것을 체념하는데, 전에 치료한 금니가 썩었으니 뜯어내고 재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에 이번에는 온 몸에서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습니다. 불안해 하는 제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선생님은 마취부터 하겠다고 했고, 그렇게 2번의 마취 후 저의 치과 치료는 시작되었습니다.


이 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소름 끼치는 소리입니다. 드릴이 장착된 핸드피스가 제 입 속으로 들어와 작동을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이 꼭 쥐어졌습니다. 시끄러운 프랩 소리가 잠시 멈추자 ‘양치 하세요’라는 주문이 왔고, 땀으로 젖은 몸을 일으켜 잠시 오른쪽을 돌아보는데, 선생님 손에 들린 핸드피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입사 전 치렀던 인터뷰 기억이 문득 되살아 났습니다. 최종 면접 당시 “우리 회사 제품 중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해 보라”는 사장님의 질문에 그 전 날 회사 홈페이지를 뒤지며 봤던 수많은 제품 중에 딱 하나 기억에 남는 제품을 대답했습니다.

  

그 제품이 바로 제 이를 갈아 버린 근관치료용 모터였습니다. 입사하고 3년이 지난 지금이야 사무실에서나 치과에서 수도 없이 보지만, 치과재료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던 때에는 치과에서 제일 무서운 기구가 바로 그 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제품을 어떻게 아느냐는 사장님의 이어진 질문에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치과소리’가 바로 그 제품에서 나는 소리라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름도 모르고 그저 나를 아프게 하는 물건인 줄로만 알았던 그 제품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지금, 신입사원 시절의 내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글로벌 덴탈기업의 직원으로서 치과와 환자를 위해 훌륭한 제품과 최고의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자부심과 뿌듯함을 가지고 매사에 열정적이었던 초심을 잃은 것은 아닌 지 돌아보게 됩니다. 물망초심(勿忘初心), 초심불망(初心不忘)이란 말을 되새겨 봐야 하겠습니다. 눈과 비에 젖어 얼고 풀리기를 되풀이 하면서 단단해진 땅을 비집고 나오는 새싹처럼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렵니다.


스케일링 도중 추가로 발견된 충치 3개까지 치료하려면 저는 또 얼마나 떨어야 할까요.


김지해
덴츠플라이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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