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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um] 쓸모있는 낙서

쓸모있는 낙서


이상진 전치련 회장


어느 덧 원고 마감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내가 쓰는 글을 신문에 기고할 수 있다는 설렌 맘에 부풀었지만 이도 여간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다.


며칠째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머리를 굴려보다가 평소 고민이 많은 성격인 작자 본인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아이디어를 실어보고자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것이 약속이건 진로이건 심지어 이성친구를 고름에 있어서도 신중함을 빙자한 우유부단이 충만했다. 그 까닭은 욕심이 많은 점도 있을 테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선택을 하게 됐을 때 후회로 지새울 밤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과한 신중함은 큰 문제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선택 전과 후 모두 고민이 많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배가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괴롭혔던 선택사항들이 결과적으로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게 될 선배님들에 비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있던 것은 아니나, 원래 고민이라는 것이 무게가 비슷할 때 하게 되는 것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 예상해본다.


고로 매우 효율적이지 못한 시간들을 줄여보고자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획기적인 방법을 기대한 독자가 있다면 죄송스런 맘이 들지만 보통 일기와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 어떤 고민이 생겼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모든 방법에 숫자를 매기고, 각자를 선택했을 때 예상될 수 있는 결과들을 기록해보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작년 이맘 때 나의 일기를 인용해 보면 당시 목표했던 치의학전문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치과의사가 되는 길은 멀게 느껴지고 합격의 성취감에 동반된 나태함에 죄책감이 들던 시기였다. 나는 목표가 직업자체보다는 ‘어떤 치과의사가 되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1. 학업성적이 우수한 치과의사 : 학업에 매진해, 환자에게 내릴 수 있는 최상의 치료계획을 세워줄 수 있다. 공부는 끝이 없어서 열정과 성실함이 요구된다.


2. 사회문제에 박식한 치과의사 : 항상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진료보급에 힘쓴다. 나중에 치과의사, 국가, 국민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


3. 경제적으로 성공한 치과의사 : 부모님께 좋은 집을 선물할 수도 있고, 호화로운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 사업에 들이는 시간과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4. 진료혜택이 닿지 않는 나라 혹은 지역에 봉사하는 치과의사 : 자산을 모으거나, 가정에 충실할 수는 없지만 꼭 필요한 자리에서 환자들의 건강을 돌보아줄 수 있다.


5.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 일하는 치과의사 : 가정과 보내는 시간에 중점을 두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산다. 치의학적 업적에 대한 갈망이 있을 것이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했을 때에는 직업에 대한 막연함에 답답했다면 이 방법을 이용함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묘한 자신감이 생기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아마도 이 방법의 장점은 뾰족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막연한 걱정을 배제하는 것과 신중함에서 비롯한 결과에 대한 책임감일 것이다.


지금 어떤 문제에 부딪혀 복잡한 생각이 든다면 침대에 누워 이리 저리 뒤척이지만 말고 책상으로 가서 펜을 들어보기를 권해본다. 의외로 잔잔해지는 마음에 놀랄 수도 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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