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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와 왼손잡이

Relay Essay 제1901번째

어릴 때를 떠올리면 20년이 더 지났음에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당시의 나는 완전한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처음 연필을 잡고 글을 쓸 때 왼손으로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린 나의 손등을 때리며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게 만드셨다. 그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지만 부모님은 끝내 내가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게 만드셨고, 글씨 쓰는 것을 오른손으로 바꾼 이후에 내가 왼손잡이라서 겪는 불편함은 사소한 수준이었다. 밥 먹는 것, 양치질 하는 것, 가위질 등은 왼손으로 해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고등학교 수험생활을 마치고 진학할 과를 선택할 때 나는 내가 손재주가 있고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치과대학 생활에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원서를 썼다. 다행히도 합격할 수 있었다. 신입생이 된 나는 평소에 기타를 치고 싶었기 때문에 밴드부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는 왼손잡이라서 해야 하는 고민과 다시 만났다. 기타라는 악기는 오른손 기타와 왼손 기타로 나뉘어 있었고, 결정을 해야 했다. 나는 많은 고민 끝에 오른손 기타로 정했다. 악기를 구하기 쉽고 종류가 훨씬 다양한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오른손으로 기타를 치면서 한계는 금방 찾아 왔고 2년간 여러 노력을 해보았으나 잘 되지 않았다. 결국 선배의 조언에 따라 왼손 기타로 바꾸게 되었다. 물론 왼손으로 치는 기타는 처음의 과정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다. 그 과정에서 악기에 대한 흥미도 많이 잃게 되었다.

이 이후로 나는 왼손잡이로 생활하는 것이 생각 보다 불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이었다. 치과대학생이 처음으로 치대생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는 1학년 2학기 수복학 실습날, 처음 보는 실습을 위한 모델의 핸드피스는 오른손으로만 사용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오랫동안 오른손으로 글씨를 써왔고, 핸드피스를 잡는 것은 글씨 쓰는 동작과 유사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오른손잡이인 사람들에 비해서 큰 무리 없이 실습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습의 결과는 썩 좋지 않았고, 나머지 실습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는 기공실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기공용 모터는 오른쪽에 위치해 있었고 왼손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도 수기구를 사용할 때는 기대를 많이 했었다. 이 기구들은 따로 유닛 체어와 연결 부위가 없기 때문에 왼손으로 쓰든 오른손으로 사용하든 차이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정도는 맞는 생각이 었지만 치주 실습을 시작할 때 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왼손으로 기구를 사용하려면 오른손잡이가 체어에서 위치하는 방향과 대칭을 이룬 자리에서 기구사용을 해야 하는데 그 위치는 치과 어시스턴트가 위치하는 자리라서 그쪽에서 진료를 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왼손으로 오른손잡이의 위치에서 기구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자세가 흐트러지고 불안하게 보인다. 결국 나는 수기구를 오른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실습에 다른 학생들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물론 왼손잡이면서도 충분히 뛰어난 실력을 지니신 선배님들도 많이 계시고 동기 중에서도 왼손잡이 이지만 실습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면 내가 노력이 부족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난 왼손잡이라 실력이 떨어지고 못하는 것이다’라고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평생을 주로 사용해 왔던 손이 아닌 손으로 기공을 하고 실습을 하는 것이 더 힘든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미국에는 왼손잡이를 위한 체어도 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왼손잡이를 위한 체어는 없고 그렇게 훈련받은 치과 어시스턴트도 없기 때문에 너는 그냥 오른손을 쓰는 연습을 해서 치과의사가 되어야 된다’라는 것이 주변인들의 말이었고 실제로 그런 것 같다. 이러한 환경이 한때는 아쉬운 적도 있었지만 반대로 생각해서 이러한 환경에 있었기 때문에 오른손뿐만 아니라 왼손도 다룰 수 있는 양손잡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꿈꿔왔던 일이고 나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난 손을 쓰는 일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양희배 
연세치대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