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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Relay Essay-제1955번째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에 입학한 직후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동아리의 선택이었다. 각자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나름의 매력을 지니고 있는 수많은 동아리 중에서 1~2개의 활동을 선택하여 대학원 4년, 혹은 남은 평생 동안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점은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재밌게도 마지막 선택의 순간 내가 구라봉사회에 가입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실로 간단했다. ‘힘든 일을 하는 동아리니 구성원 간 유대감이 강할 것이다.’ 거기에 더불어 어쩌면 의료봉사라는 활동을 통해 ‘의료인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런 기대감으로 나는 의욕을 갖고 동아리 생활을 시작했다.

학기 중 선배들과 선생님들께서는 한결같이 입을 모아 ‘하계진료가 구라의 꽃이다’ 라는 말씀과 더불어 하계진료의 고생스러움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꼭 언급하셨다. 점점 나를 비롯한 동기들은 하계진료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한 채 부담감만 쌓아가게 되었다.

마침내 하계진료기간이 다가왔고, 버스에 몸을 싣고 도착한 경상남도 하동군 영신마을에서의 첫 날은 진료지 세팅으로 부산히 지나갔다. 저녁 식사 후 회의 자리에서의 구라봉사회를 설립하신 유동수 교수님 외 많은 선배 선생님들의 따뜻한 격려에도 불구하고 진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둘째 날을 앞두고 잠자리에 드는 내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이번 하계진료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접수 보조였다. 실내 진료실, 야외 기공실, 실내 기공실 세 곳의 진행 상황을 관장하는 접수 테이블에서 접수를 맡은 선배를 보좌하는 일이었는데 내가 주로 한 일은 새로 도착한 환자들을 파악하고 해당하는 차트와 기공물과 함께 환자분을 실내 진료실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처음 환자들을 대하던 날, 나는 진료실 앞에 앉아있는 수많은 환자들을 보고 기가 질렸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긴장감과 익숙지 못한 일이 주는 부담감에 나는 완전히 굴복했고 아무 정신 없이 뛰어다녔다. 환자들의 이름을 기억하기는커녕 이미 접수한 환자분인지도 모르고 다시 다가가 이름을 묻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환자들은 ‘너무 오래 기다린다’, ‘내가 먼저 왔는데 왜 저 사람이 먼저 들어가느냐?’, ‘내일 다시 오라고 하는데 내일은 시간이 없다’ 등의 수많은 불만을 내게 터트렸고, 나는 무심히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환자들에게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그 날 환자들은 진료가 끝나고 나가면서도 오래 기다린 피로감 때문이었는지 싸늘하게까지 보이는 표정을 한 채 등을 보였다. 나도 자연히 환자들의 출입을 ‘접수번호 OO번’의 출입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었고,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나갈 때마다 벽에 붙은 진행 상황을 나타낸 차트에 크게 X를 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진료를 시작한 첫 날 모든 일정이 끝나자 초록색 구라복은 땀에 흠뻑 젖었고 나는 봉사의 보람은커녕 머리가 하얗게 빈 채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진료가 진행되며 맡은 일에 익숙해짐에 따라 나는 점차 숨을 돌리고 주변을 살펴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러자 선배 선생님들께서 진료에 열중하시는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고, 비로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이 환자 진료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긴 세월 동안 꿋꿋이 진료를 계속해 오시는 선생님들의 모습 앞에서 작아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새로운 책임과 부담을 느꼈다. 지금까지 내가 느껴왔던 부담감이 ‘환자’라는 요소가 배제된 모호한 형태의 것이었다면 새롭게 느끼는 부담감은 ‘진료’와 그에 선행하는 ‘환자’가 포함된 명확한 형체의 것이었다. 환자들을 일률적으로 ‘접수번호 OO번’으로만 인식했던 전날의 나 자신을 반성하며 다시, 그리고 새로이 바라본 환자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분, 거동이 불편해서 꼭 부축해 드려야 하는 분,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설명할 때 귀에 대고 크게 말씀 드려야 하는 분 등 서로 다른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환자들을 다시 인식하고 나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나자 내가 하는 일은 완전히 달라졌다. 환자들을 안내할 때 조금 더 그 분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환자들의 불평에도 짜증이 나기보다 최대한 당신들의 애로를 해결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이는 것을 느꼈다. 어찌 된 일인지 환자들의 표정도 점점 밝아졌으며 몇몇 할아버님께선 나에게 농담을 하시고 넘어지니 뛰지 말라고 애정 어린 말씀을 던지셨다. 점점 하루하루가 충실감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의치가 하나 둘 완성되어 delivery가 진행되었다. 나는 의치를 가지고 나가는 환자들에게 의치 사용시 주의사항을 알려주게 되었다. 환자분들은 내 손을 붙잡으며 원래 쓰던 틀니보다 새로 받은 틀니가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며, 우리가 얼마나 좋은 일 하시냐며 고마워하고 또 고마워하셨다.

환자분들을 보내드리며 나는 여전히 진행 상황을 나타낸 차트에 X를 쳤지만 그 X자는 전보다 조금 크기가 작았으며, OO번 환자가 아닌 OOO 할머니를 댁에 보내드렸다. 환자분들이 진료실을 떠나고 환자 차트를 정리하면서 나는 그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읽어 나가자 그들은 내게로 와서 꽃이, 한센병의 한서린 분홍빛이 아닌 기쁨으로 얼굴이 불그레한 분홍빛의 꽃이 되었다.

이런 소중한 경험은 선배 선생님들, 선배님들, 동기들이 이뤄놓은 업적과 뒷받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번 하동에서 이뤄진 하계진료에서 내가 처음 구라봉사회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큰 것을 얻어가며 내가 얻은 것을 나의, 그리고 동기들의 마음 속 구라탑(求癩塔)을 위한 첫 반석으로 삼으려 한다.
김창현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1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