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칼란데르스카 병원 수술실에서 페르 잉그바르 브로네마르크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신을 보는 듯 했습니다. 저는 숨이 막히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수술 장면을 보고 저술하신 ‘Tissue integrated prostheses’ 책을 읽으면서 성경책을 보는 듯 했습니다. 무치악 임플란트 특수 시술법을 배우려고 1972년부터 1985년까지 13년간 세계를 돌아 다녔어도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Osseointegrated implant 시술법과 보철과정은 저에게는 예수님의 기적과 같이 보였습니다.1970년까지만 해도 모든 학자들은 이물질의 생체 골유착을 부정하던 시기였습니다. 스스로 implantologist라고 하던 치과의사들은 자연치아의 인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섬유유착의 이론을 주장하던 시기였습니다. 교수님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우리는 섬유조직 유착의 미로를 헤매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당대의 실상을 뛰어넘는 임상적 성공의 세계를 여셨습니다. 주의 깊은 수술방식으로 titanium이 뼈에 붙는 내용을 관측해낸 결과는 치의학의 기초 임상 모든 부분에 혁명을 일으키셨습니다.1985년 북한치과의사들이 찾아와 교육을 받고 남한보다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그램에서 보면 동물들도 냄새로 영역 표시를 하고 다른 동물의 침입을 경계한다. 남지나해의 대부분은 이미 중국이 영역표시를 더욱 확대 해둔 상태다. 그리고 외교적 다툼을 하고 있다. 지금 G-2에 오른 중국은 G-1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기위해서는 태평양을 뚫고 지나가야하는데 미국과 일본에 의해 그 길이 막혀있다. 미국은 한국, 일본과 더불어 이를 막으려 하는데 정서상 한국과 일본은 공조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요즘 미국은 한국을 못 마땅해 하고 있다. 한국은 지형학적인 문제로 한손은 미국을 다른 한손으로는 중국을 잡고 고민하고 있다. 옛날 강태공이 낚시를 한 것은 고기잡이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런 국가적인 문제에 우리도 같은 고민을 한번쯤 해 보아야 할 시기 인 것 같다. 올해는 일본이 1895년 대한제국의 국권찬탈에 방해되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의 해이다. 작년 홋카이도에서 개최된 아시아 임플란트학회때 삿보로 맥주공장 대형홀에서 기념만찬을 갖게 됐다. 구 공장 벽에는 1905년에 준공되었다는 동판이 붙어 있었다. 그 해라면 국권을 빼앗긴 치욕의 을사조약이 맺어진 해이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는 우리는 막걸리도 마시기 어려웠던
일본 센다이 북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구리하라(栗原)에는 신문 기자출신의 사이또 다이껜 주지가 관리하는 대림사란 절이 있다. 그곳에는 안중근 의사와 치바 도시치의 위패와 기념비가 있다. 대림사에서는 81년부터 해마다 9월이 오면 이들에 대한 추모예식이 계속 행해지고 있다. 올해는 34회로 안의사 순국 104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한일 친선 교류회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안의사는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분이다. 일본 헌병 상등병이었던 치바 도시치는 안의사 전담 간수로서 5개월간 수감생활을 같이 하면서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화되어 마지막 날 형장으로 끌려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경례까지 올렸다고 한다. 수감 중 안의사는 동양평화론 등을 집필했고 또 많은 유묵을 남겼다.보통 옥중 육필을 받은 사람들은 형무소장, 간수, 형사, 판사, 검찰관, 교화승 등 일인들이었다. 치바도 평소에 유묵을 하나 얻고 싶어 했었다. 사형집행 전날 “내일 오전에 형 집행이 있을 것 같다”는 정보를 흘려줬기 때문이었는지 안의사는 원하는 유묵을 써 줄 터이니 화선지를 준비해오라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종이가 없어 명주천
2015년 9월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제24회 EAO에 이어 아주 특별한 행사가 하나 더 개최되었다. 피 아이가 생전에 원했던 대로 골유착에 대한 그의 연구를 기억하고 계승하며 임상적으로는 가능한 많은 환자를 진료해 이들에게 더 좋은 삶의 질을 베풀어 주고자하는 그의 뜻을 기리고자 하는 추모 심포지엄이 조용한 일요일 카로린스카 인스티튜트에서 개최되었다. 20명의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연구자, 과학자, 임상가들이 선정돼 피 아이의 생애와 업적과 최근 연구내용에 관한 식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이 모임은 밴 스틴버그 교수가 브로네마르크 교수의 부인과 협의해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피 아이가 작고했을 때에도 공개 장례식을 마다했던 부인이 밴 스틴버그 교수의 설득에 의해 이런 특별한 기념행사를 하게 된 것이다. 부인은 그간 세계각지를 따라 다니며 그의 수술을 도왔고 말년에는 병고에 시달리는 그의 휠체어를 밀어준 사람이다. 심포지엄 전날 밤, 그랜드호텔 추모 만찬장에서 파킨슨병을 앓고 있어 몸이 불편한 부인이 연단에 올라와 당신이 이 자리에 우리와 지금 함께하고 있음을 믿는다고 조용히 절규하며 그의 혼을 부르는 내용의 인사말로 개회했다. 고미야마는 새로운 개념으로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