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치에서 우주까지(상) 부제-할매와 하숙집 그리고 변소 요즘 내가 아침식사를 하는 곳은 주로 안방 화장실이다.처는 화장실 문 앞에 아침을 차린다. 밥상까지는 아니나 쟁반에다 큰 컵으로 과일주스 하나, 미숫가루 아님 콘 스프를 건네준다. 가끔 달걀프라이나 베이컨, 김치도 조금 곁들일 수 있다.이는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정착된, 간편하고도 빠른 나의 아침 메뉴로써 십 수 년 동안 별 손색이 없었다. 항시 늦게까지 마셔대는 탓에 침대에서 일어나도 한동안 껄끄러운 내 목과, 술꾼치곤 꽤나 까다로운 입맛, 곧 출근하여 환자를 봐야한다는 제한된 조건아래서도 말이다. 처가 몇 번씩 재촉하여 샤워기 앞에 서기 전까지는 쟁반을 무릎에 놓고 문 앞 탁자에 있는 내 애독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Richard. Dawkins-까지 펼친 다음 식사를 하면서 내 볼일을 본다. 느긋이…. 한참 옛날에,광주 서석동
충치야 물럿거라 엄마가 나가신다 정 민 숙건치맘 서포터즈 회원 “아이 이에 까만 점이 있어서 김이 묻은 줄 알았어요.” 누군가 그렇게 이야기 했다. 이유식 먹일 때 온도를 알기 위해 엄마 입에 한 입 넣어 본 후 아가의 입 속에 쏘옥 넣어주는 엄마의 사랑! 밥 먹고 이 닦은 후 남은 과자봉지에 든 과자를 치운다는 생각으로 엄마 하나, 아가 하나 사이좋게 나눠먹기도 하고. 이렇게 날 더운 날, 빙과류 하나씩 사서 공원 가서 엄마 친구들과 친구들 아가들이랑 하나씩 나눠 먹고. 충치는 그렇게 슬금슬금 우리 곁에서 기회를 엿보며 틈이 보이면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다. 왜 이를 잘 닦아도 이가 썩는지, 아이 이 관리해주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아는 만큼의 지식대로 실천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이가 모유를 먹으면 2시간마다 한 번씩 먹는데, 우리 집 큰 아이는 유독 분유는 입에도 대지 않고 오로지 모유만 먹었다. 아이의 이가 나와 엄마 젖을 물고자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잠투정이 심해서 재우기가 힘들어 그냥 그렇게 재웠다. 보리차
심 홍 보 연세심치과의원 원장 힘 빼고 행복하게 살자 원고 섭외 요청에 따라 갑작스럽게 펜을 들었지만 평생 일기는 고사하고 메모도 하지 않고 살아오다 보니 무엇을 써야할 지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끼지만 인천시치과의사회에서 ‘인치회보’의 제작을 총괄하게 되었고, 원고청탁의 만만치 않음과 원고가 마감일에 맞추어 제때 들어오지 않았을 때의 서러움을 알기에 몇자 적어 봅니다. 인천치과의사회의 ‘인치회보’는 격월지로서 발행되고 있는데 기사 중에는 ‘원로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연로하신 선배회원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코너로 모든 회원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아버님 세대가 겪어온 격동의 세월을 같이 살아오신 원로 회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현재의 젊은 치과의사들의 경쟁은 호사라 치부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치과의사로서 진료에 최선을 다하고 회원 간에 동료의식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고희가 되고 보면 재물이나 명예도 부질없는 것을 젊었을 때는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동료들에게 상처를 준 행위가 무척 후회스러운 것이 된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 하는지 안타깝다는 말씀도 잊지 않았습니다. &
매실을 담그며~ 김동문포인트메디칼 부산경남영업소 차장 작년 이 맘 때쯤으로 기억한다. 한 지인의 호의로 매실을 잔뜩 얻었었다. 신경써서 챙겨주신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넙죽 인사하며 받았다. 그 후 가을쯤 되었을까~집사람이 매실 담근 게 다 익었다며 맛을 보란다.평소 신걸 싫어하는 지라 싫다고 용을 쓰다 마지못해 한입! ‘어라, 이거 정말 매실이야?’ 그 맛에 감탄을 하며 열심히 먹다 보니 두 달 만에 동이 났다.솔직히 섭섭했다. 맛이 제법이었으니깐~ 그래서 내년엔 잔뜩 하리라 별렀다.드디어 매실의 계절이 돌아와서 꽤 많은 양의 매실을 담기로 했다. 이번엔 집사람이 도와달랜다. 일이 많다나?평소 집안 일을 잘 돕는 편이긴 해도 귀찮은 건 딱 질색인지라 이 핑계 저 핑계대면서 빠져나가다 결국 잔소리가 귀찮아서 실행을 했다.하지만 이게 웬걸. 어찌 그리 잔손이 많이 가는지. 일일이 꼭지를 다 손질하면서 하려니 그 좋던 매실들이 아주 웬수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이 귀찮은 일들을 작년에 집사람 혼자서 했다 생각을 하니 문득 미안하고 한편으론 존경스럽기까지 하였다.알고 보니 매실꼭지를 세심하게 다듬지 않으면 나중에 다 익고 나서 먹을 때 쓴
이경화메디칼유나이티드 실장 불여시와 곰탱이 벌써 이 바닥 생활이 만 십년을 넘어섰다.애들밖에 모르던 유치원 교사(학부모들에게 인기는 좀, 아니 ‘킹왕짱’ 많았음)에서 치열한 ‘전쟁터’에 뛰어든 게 엊그제 같은데….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건 환자 모시기와 ‘바람 잡기’다. 용어가 다소 속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다고 생각한다.언제부터인지 치과에서도 내원하는 환자만을 기다려서는 절대로 안 되는 과열 경쟁시대가 돼 버렸다. 많은 치과들이 생겨나고, 경쟁하고,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시대.예전에는 ‘철 밥그릇’이라고 했다는데… 그때로 돌아가면 참~ 좋겠다. 그러면 나도 밥 벌어먹기가 한결 쉬웠을 텐데…좀 아쉽기는 하다.하지만 어떤 시대이건 간에 분명한 것, 강자는 있는 법이다.그럼, 강자가 되려면? 그거야 뭐 많은 환자를 유치할 수 있는 우수한 진료술식과 마케팅 전략을 통해 적정 수가를 유지하면 시쳇말로 ‘장땡’이지. 하지만 ‘진료비 덤핑"이 심각한 요즘, 신환의 수도 줄고, 꾸준하던 단골환자의 수도 급감하면서 수가를 한결같이 유지하기가 수월하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한다.그래서 보통은 치과전문 진료와 함께 피부,
IBC 선정 ‘세계 100대 의료인’ 양상덕 양상덕치과의원 원장 최근에 영국의 IBC(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er, 국제인명센터)로부터 ‘올해의 100대 의료인(Top 100 health professionals 2009)’에 선정되어 인명사전에 등재할 예정이라는 공문이 날아왔다. 갑작스런 소식으로 사실여부와 선정과정에 대한 문의를 IBC 측에 이메일로 보냈다. 그러던 중 주변 동료와 후배 의사들이 인터넷으로 IBC란 단체와 이미 등재된 인물들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IBC는 세계 3대 인명사전을 발행하는 곳이고 매년 비교적 엄정하게 인물을 선정하는 공신력 있는 단체라는 설명이 들려왔다. 인터넷상에 올려진 선정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대부분 의대 교수들이었고 독창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한 분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의아스러운 것은 치의학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근자에 우리나라의 치과대학이나 개원가에서도 많은 독창적이고 유익한 연구를 수행하여 왔을 텐데 말이다. 혹시 이의 등재를 사양하였거나 등재는 되었으나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자신의 등재에 주저하거나 소식의 알림에 소극적인 이유는
남을 부러워 하는또는 남들이 부러워 하는 나 유 종 환/한길치과의원 원장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라는 말이 있지요.이전에 생각했던 나의 과거들은 어두움의 연속이었지요.고등학교 3년은 30년보다 길었다. 대학생들이 제일 부러웠고, 밤마다 마음 놓고 텔레비전 볼 수 있는 어머니가 제일 부러웠다.정말 고통스럽고 숨막히는 나날들이 아닐 수 없었다.단번에 대학에 들어왔지만, 치대 6년은 너무 길고 힘들었다. 보조금 받으러 가면 항상 쇠고기 사주시던 개원한 선배님들이 제일 존경스럽고 부러웠다.나도 개원하면 후배들 배터질때 까지 쇠고기 사주고 말꺼야라고 결심했다.(주먹 쥐고 결심)개원 초반에 돈벌이는 시원찮고, 보증선 것은 여지없이 사고가 터졌다.개원한지 10년쯤되어서 집도 있고, 땅도 있고, 차도 있고, 여윳돈도 있는 선배들이 너무 너무 부러웠다. 지금은 개원한지 15년이 넘었는데….내 이름으로된 집도, 땅도 없고, 차는 아직도 1997년식 최신형 뉴프린스 뿐이고 펀드는 반토막나고 엔화 대출한 것은 원금이 1억이나 올라서 쪽박차게 생겼고 이제는 신용대출 5백만원도 안되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버렸다.지나가는
그대는 지난 시간의 추억의 집합체이다 얼마 전 대학 졸업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참석을 하여 오랜만에 많은 대학 동기 동창들의 얼굴을 보고 악수를 나누고 학창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졸업을 한지 벌써 20년이 지나다니! 젊음은 벼락처럼 지나간다고 하더니 친구들의 얼굴에는 20년의 연륜이 때로는 허옇게 바랜 머리칼에서, 원숙한 미소에서, 그리고 때로는 다소 지쳐 보이는 눈빛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게는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만이 아는 묘한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매년 들어오는 신선한(?) 제자들의 모습에 가만히 20년 전 그 나이 때의 내 모습을 겹쳐서 바라보는 것이다. 자식을 여럿 낳아도 다 제각각이라고 하는데 하물며 남의 자식들의 모임인 학교의 제자들은 제각각을 넘어 때론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지경을 넘는 생각과 행동을 하기도 하니, 그 겹쳐진 풍경은 제자들마다 달라서 그 중첩된 인물화 감상에 발을 딛는 대학 건물과 강의실은 실로 다양한 인물화 전시장이 된다. 연구실에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조금 전 만난 제자는 20년 후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사진 취미 전 사진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대한민국은 사진공화국이라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사진 인구가 정말 많아졌죠. 제가 사진이라는 취미와 인연을 만든 시기는 지금의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온라인상에서 사진동호회라고 해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때였죠. 사진을 시작하고 얼마 안 있다가 사진에 대한 정보와 카메라에 대한 상식 등을 얻기 위해 작은 사진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남이 찍은 사진을 감상하는 등 온라인이라는 활동 자체가 참으로 재미있더군요. 그렇게 온라인으로 친해진 사람들을 어느 날은 문득 직접 보고 싶어졌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니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사람들 간의 격이 없어지는지 실감했습니다. 흡사 같이 골프 치는 사람들이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듯이 말이죠. 그렇게 1~2년 지나다보니 사람들을 만나면 어느 정도 수준의 토론이란 걸 하게 됩니다. 대개 사진에 관련된 이야기죠. 사진이라는 것은 요즘에 크게 둘로 갈립니다. 전통적인 필름이냐, 아니면 디지털이냐. 그리고 디지털도 여러 갈래로 갈리게 됩니다. 사진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한
Turning Point 박혜미여주대학 치위생과 3학년 고등학교 때 진로학과를 선정할 땐 정말 멋모르고 선택했던 치위생과. 하지만 치위생과를 선택한 것이 나의 터닝 포인트라는 것은 학교를 1년씩이나 다니고 난후, 대학교 2학년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 1학년 때는 학과에 적응도 못하고 많은 방황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차 치위생과의 매력을 느끼고, 치과위생사가 단순한 치과 진료실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학과에 더 많은 애정을 쏟았던 것 같다. 치위생과에 다니면서 나는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배우고, 나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온 것 같다. 그 중에 하나가 봉사활동에 관한 나의 생각들이다.봉사활동은 귀찮은 일,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 생각해 보면 왜 이렇게 부끄럽고 손발이 오그라드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을 해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했던 봉사활동은 가짜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진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봉사활동은 내 인생 제2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아무것도 모르고 치위생과에 들어온 나를, 1학년 때 학교에서 방황
어떤 대화 한국의사 : 혹시 M국의 의료정책이나 의료전달체계에 대하여 알고 싶은데 도움을 주실 수 있나요?M국의사 : 무슨 일로 그러신데요. 꼭 필요하시다면….한국의사 : M국 무료수술진료봉사를 위한 진료센터 설립 전에 M국의 의료사정을 좀 자세히 알고 싶어서요. 선생께서 M국의사로서는 S대 의대 박사 1호라고 하던데요. 축하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M국의사 : 저는 M국에서 의과대학 국제대학을 마치고 2003년부터 한국에 유학을 와서 우여곡절 끝에 S대 박사과정까지 마쳤는데 우리 M국이 많은 도움을 받은 점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고 한국인들의 봉사와 원조에 대한 기본자세에 대해서는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한국의사 : 저는 P국에서도 의료봉사활동을 해왔는데 M국과 P국의 정부와 해당국 의사들의 수용자세 등에서 많은 차이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은 충분히 공감을 하며 어디나 동전의 양면성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M국의사 : 진정으로 해당국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다면 조건없는 봉사를 해주시고 추후 이권에 개입하여 불미스러운 구설수에 오르거나 존경받지 못하는 행동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많은 한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