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던 걸로 나의 뇌리엔 남아있다. 불교 학생회에서 시행된 의료봉사 활동(의·치대 합동 의료봉사활동)에 무엇인지도, 어떻게 하는 게 의료봉사인지도 모른 채 선배의 반 강요에 이끌려 참가하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도 기억속엔 두 가지가 참 인상 깊었던 것 같다. 그 하나는 깊은 밤 선배와 같이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가게에 음식을 구하러 달빛과 별빛을 의지하며 걷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며 가며 많은 대화를 선배와 나눴던, 몹시도 추웠던 시골길이 참 인상 깊다. 또 하나는 지금 생각하면 어설픈 기장비하에 시행되었던 의료봉사에 왜 그리도 많은 이웃 주민들이 찾아 주었는지. 또 치료 후에 우리에게까지 고맙다는 말들이 왜 그다지도 정감이 넘쳤던지…. 개업을 한 이후에도 동료들과 같이 의료봉사 활동을 하면서 유난히도 기억 속에 진하게 남아있는 얼굴이 있는데, 2007년 봄 경남 산청군 오부면에서 시행된 노인잔치의 일환으로 무료틀니시술을 해성봉사단(지금은 With Together라는 N.G.O.로 바뀜)에서 하루동안 시행을 했을 때 일이다. 우리 봉사팀은 치과의사, 치기공사, 치과대학생들로 구성된 십여명의 봉사팀으로 일반치과진료 및 무료
내가 처음 와인이 맛 있다고 느꼈던 때는 200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AO학회가 끝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에 동기와 후배들과 함께 시내 투어를 하고 공항으로 가기로 되어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시내 관광을 마치고 밥을 먹기 위해 들렀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파스타와 깔라말리(오징어튀김)를 먹으면서 함께 먹을 와인을 부탁했었다. 레드 와인을 가져왔고, 음식과 같이 먹는 와인이 너무 맛있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 와인은 미국 서부 지방에서 Pinot Noir라는 포도 품종으로 만든 Beringer라는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이었다. 그 이후에 한국으로 돌아오기 2년 정도 넉넉하지 못한 유학생활 속에서 그 맛있던 기억만으로 가끔 와인을 사서 집에서 마시게 되었다. 내 기억으로 마셨던 와인은 10~20 달러 내외의 와인을 마신 걸로 기억한다. 그때는 와인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터라 그냥 이것 저것 마셨다. 한 번은 먹다 남은 와인이 아까워서 다시 코르크를 막아 냉장고에 넣었다가 며칠 지난 후에 먹었는데, 맛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마셨었다. 지금 생각하면 산화가 진행되어 맛이 식초 비슷하게 변해버린 와인
‘행복과 사랑’은 좋은 단어이며, 아름다운 단어들임에 틀림이 없다. 사랑이 있을 때 행복도 있는 것인데, 이러한‘행복과 사랑’이라는 단어들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행복과 사랑의 정의를 답변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우리는 가치가 완전하게 있는 것을 좋아하며, 행복은 가치가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덕을 쌓고, 자연과 교육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고 윤리 도덕을 지킴으로써 우리들은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거짓 속에는 행복이 없고, 문화 차이 속에서 행복의 차이가 있다. 예로 이디오피아 무시족은 입이 큰 여인이 미인이며 그 미인은 행복하다고 한다. 또한 문신한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행복을 느낀다. 이렇듯 문화에 따라 행복의 기준은 다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행복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MBC 갤럽에 의하면 한국인의 삶에 대한 의식 중의 하나인 행복의 조건이 2001년에는 건강(36.8%), 가족(35.0%), 돈(14.1%)의 순서였으나 2008년에는 돈(32.3%), 건강(32.1%), 가족(24.0%)으로 조사되었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후진국 형이다. 우리는 발전했다고 여겼는데 정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 ‘조강지처 클럽"의 구세주… 지금껏 이렇게 구씨가 각광을 받은 적이 있었던가? 다들 막장 드라마다 뭐다 하기는 하지만 참 재미는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굳이 시류를 따라 글의 제목을 ‘구명소"로 정한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나는 이따금씩 지난 일기를 들여다 보곤 한다. 중 2 때부터 일기를 써 왔는데 어느덧 서가 한 편을 차지할 만큼 양이 꽤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일기 열람권이 있어서 고 1인 큰 아이는 고 1 때까지, 그리고 중 3인 둘째는 중 3 때까지 아빠가 쓴 일기를 읽어볼 수 있다. 아내는 언제나 몰래 내 일기를 읽기에 열외로 인정하기로 했다. 어느 날, 지난 일기를 읽는데 25년 전에 썼던 글이 눈에 들어왔다. 본과 2학년 채플 시간에 어느 목사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있었단다.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연못에 사람이 빠진 것을 보고는 목숨 걸고 헤엄쳐 들어가 그 사람을 구해 냈단다.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고 그는 그 연못에서 몇 사람을 더 구출했다. 그럴 때마다 더 많은 주위의 찬사가 쏟아졌고 매스컴의 집중조명을
한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병동에 들어선 순간부터 중앙 간호사 스테이션 앞에 앉아 계셨는데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던 내가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하는 걸 보시더니 대뜸 나를 잡아끌고 한 병실로 들어가셨다. 그곳은 할머니 병동이었는데 할아버지의 배우자가 계신다고 했다. 할머니는 양 팔이 없으셨는데 할아버지는 나에게 꼭 식사를 함께 해달라고 부탁하신다. 나는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꼭 그러겠노라고 약속드렸다. 요즘 세상에 병든 아내를 매일 보러와 주는 남편이 있다는 게 꼭 소설에서 읽었던 것 같은 따듯함이 있어서 몇 번이고 약속드렸다. 내가 살던 바다 건너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들이 서로가 싫다고 버리고 떠나간다. 하지만 이 분들께는 남들이 꺼려하는 질병이라는 벽을 넘어서는 사람다움이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할머니의 식사 도우미가 되었다. 할머니께서는 이가 없으셔서 밥을 국에 말아서 드시는데 한 수저를 넣어드리면 반수저가 흐르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천천히 씹으시게 하면서 골고루 드시게 노력했다. 그러면서 의치를 왜 사용하지 않으시냐고 간호사 분들께 묻자 만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신다. 그 순간 머쓱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예전에 치과대학에서 실
소록도를 아시나요? 한 달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면 나는 당황하면서도 불쾌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그곳은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해야 할 누군가가 살고 있는 곳이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시작은 늘 어렵다. 치과대학에 입학하고 많은 봉사활동을 다녀봤지만 사실 내가 보아온 많은 봉사의 장은 정상인의 세상 속에 있는 장애우의 세상이었다. 한, 두 번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나는 어쩌면 이들에게 하는 봉사는 가진 사람으로서 조금 덜 가진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록도 봉사활동은 이런 나에게 봉사의 다른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학교는 여러 사회 보건 홍보 및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소록도 봉사는 소록도 병원에 계셨던 학교 선배님의 교내 방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모교에 찾아오셨던 선배님께서는 자신의 꿈과 소록도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는데 사실 그 강연은 나에게는 허물벗기 같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한센인에 대해 가까이 하고 싶지 않고 무서운 존재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의 누군가가 닫혀 있던 다른 세상 속에서 많은 이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야, 너무 상쾌하고 살맛난다. 너도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일해!” 전화선 너머 쾌활하고 명랑한 분위기가 전해집니다. 졸업 후 쉬지 않고 치과를 하다 개인사정으로 잠시 접은 동기가 골프 치러 밖에 나왔다며 전화해서 나에게도 탁 트인 바깥 공기를 느끼게 합니다. 진료의 스트레스나 경영의 압박에서 벗어나 한없이 편해 보이는 친구가 마음 한 편 한없이 부럽고 또 부럽습니다. 좋겠네, 좋겠네…. 갈수록 할 일이 많아집니다. 예전에 비해 아주 많이 야무져지고 똑똑해진 환자들 상대로 아픈 곳을 치료할 뿐 아니라 마음까지 만족시켜 줘야 하고, 치과 재료 하나하나 구입 날짜, 구입 단가까지 챙겨야 하고, 국세청 비보험 신고를 위해 늦게 남아 입력해야 하고, 따라가기 힘든 직원들 마음도 헤아려야 하고, 기대에 못 미친 큰 애, 둘째의 학업 때문에 마음 한켠은 늘 무겁고 조바심 나고, 아! 나도 모르겠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느슨해져 있으면 어디선가 구멍이 뚫려 새는 소리 들리고….치과의사가 아닌 사람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까봐 딱히 힘들다고 드러내기도 어쭙잖으니 처지를 아는 동기들끼리만 수다를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힘들다는 소리도 쏙 들어갔습
세상에는 미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어떤 정신과 의사의 말을 빌면 보통사람 4명중 1명은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닌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전 해외토픽에 미국에서 MAD란 잡지가 날개 돋힌 듯이 잘 팔린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경마에 미친 사람, 노름에 미친 사람, 바둑에 미친 사람, 종교에 미친 사람, 계에 미친 사람, 돈버는데 미친 사람, 사랑에 미친 사람, 춤에 미친 사람, 광산에 미친 사람, 감투에 미친 사람 등등 무던히도 많다. 하기야 무엇에 중점적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실천하다 보면 주위로부터 애꿎게도 미친 사람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독서삼매(讀書三昧)란 말이 있다. 온 정신이 독서하는데 푹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모든 근심 걱정 잡념이 하나도 없이 오로지 책 보는데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소나기가 오거나 벼락을 쳐도 모를 그런 상태를 말한다. 책에 미친 것이다. 비슷한 얘기로 6·25때 어떤 병사(兵士) 둘이서 전투를 하다가 쉬는 시간에 바둑을 두게 되었는데 갑자기 바로 옆에서 적의 포탄이 터졌는데도 모르고 바둑판에 쌓여진 흙먼지만 입으로 훅 훅 불면서 계속 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가히 바둑
지난 8일 오전 11시로 예정되어 있던 게임은 동네 조기축구회의 운동장 무단 점거(?)로 인해 12시쯤 되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학부시절 같이 했던 낯익은 얼굴들이 여전히 그 동네 조기축구회에서(경희대출신, 동네아저씨들) 뛰고 있다는 사실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그들을 보며 마치 어디 먼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 졸업하고 4년이란 시간을 여기저기 떠돌이처럼 돌아 다니다 고향에 오니 동네 친구들이 여전히 고향을 지키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모두들 ‘그대로인데 나만 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인연은 소중한데 모두를 잊고 살았구나’하는 싸구려 감상도 잠시 해 보게 됐다. 오늘은 드디어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엠블렘이 박힌 유니폼이 지급되었다. 비로소 FC 덴탈(FCD)의 창단이 실감나는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그만큼 팀에 있어 유니폼의 의미는 크다 하겠다.그에 고무되어서 일까. 상대팀은 경희대학교 치전원 재학생들로 이루어진 축구부로 평균 연령이 서른 전후, FCD보다는 확실히 젊은 팀임에도 불구하고 FCD가 경기전체를 시종일관 지배할 만큼 내용에서 스코어에서 앞섰다. 25~30분씩 4쿼터로 진행된 이 날 경기는 FCD가 종전과는 다른 팀이 아닐까 싶
얼마 전,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한 의사가 인턴 일기라는 책을 출간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과연 인턴은 어떤 생활을 하는가 궁금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인턴 시기를 보냈을까 하는 것도 알고 싶어 그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을 읽고나니 나도 인턴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차곡이 써서 모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이 실릴 때면 이제 인턴이라는 위치에서 일을 하게 된지도 어느덧 한 달 여의 시간이 지난 즈음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나 마냥 학생일 것만 같았던 6년의 학창시절은 순식간에 머나먼 옛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지고, 어느새 한 사람의 사회인이자 직장인, 그리고 치과의사로서 한 걸음 내딛었다는 것이 뭔가 대단하기도 하지만 또 막상 아직 크게 실감은 잘 안 나는 요즈음이다. 인턴을 지원하기 전에 선배님들이 “모를 때 한 번은 하겠지만 알고서 두 번은 못 한다”는 말을 하셨던 기억이 떠올라 걱정스런 마음을 안고 원서를 썼다. 예전에 유행했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에 대한 유머도 생각이 났다. 재료공학과는 고무로 냉장고를 만들어 넣고, 수학과는 코끼리를 미분하여 냉장고에 넣는다는 등의 학과별 특색이 있는 유머였는데,
인간유전자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존재가 밝혀진 후 유전성질환의 예방이나 치료 혹은 타고난 고유형질을 개조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어 왔다. 사람이 글을 읽거나 쓰려면 우선 문자부터 깨우쳐야 한다. 즉 한글자모나 영문스펠링 같은 문자의 기본단위를 먼저 숙지하고 낱말을 익혀야 하며 다음 단계에서는 그 낱말들로 조합이 이루어지는 문장을 짓고 문맥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문서나 책을 꾸며갈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모든 생명체 고유의 비밀을 간직하는 열쇠인 유전자를 이용하여 타고난 형질을 바꾸거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유전자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씨줄날줄 엮임새와 각각의 기능을 알아내야 한다. 인간의 세포핵에는 2중 나선형으로 꼬여 있는 23쌍, 즉 46개의 염색체에 모든 유전정보가 담겨 있다.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은 DNA(디옥시리보핵산)이고 DNA는 자모나 스펠링과 같은 기본적 구성단위인 A(아데닌), (구아닌), C(시토신), T(티민) 등 4가지 염기의 다양한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어 역할을 하는 이 조합들은 게놈 상에서 수억만 번이나 반복되어 있는데 마치 책과도 같은 이들 염기의 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