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샤프를 써본다. 학창시절에 펜대로 500원짜리 노트에 낙서처럼 지워가며 썼던 습작노트 이후에 ‘공책"에 이렇게 글을 써보는 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비록 전달은 컴퓨터로 타이핑으로 워드로 메일로 향기없이 전해지겠지만, 부족한 글솜씨를 적어내려면 형형색색 모니터와 이제는 손에 더 익은 키보드보다, 약간은 누런 공책과 까만색 마이크로 샤프가 없던 내 글솜씨까지 더 적어줄지도 모르겠다. 중학교때 학생주임이었던 옆반 국어선생님이 말썽부리지 말라고 특별활동을 문예반으로 들게하고는, 담배 냄새가 눅눅한 교사 휴게실에서 일주일에 한편씩 시를 써보라 했다. 싫지 않았다. 글을 쓰는게 재미있었고, 내 생각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는 기대감이 재미있었다. 밤에 쓴 시는 다음날 다시 읽기 민망할 정도로 유치했지만, 이런 저런 글귀들이 모여 새로운 글이 써지곤 했다. 지금은 없겠지만 소년동아신문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게 되어, 처음으로 조회시간에 단상에서 교장선생님 얼굴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되기도 했었다. 수업 빼먹는 재미에 이런 저런 대회에 나가서 글이 안 써져 제출조차 못해보기도 하고, 간간히 입상도 해보았지만 주제를 던져주고 학생다운(?) 글들을 써야하는 대회에
웃음을 잃지 않는 것. 그것도 25년간 25년전 웃음을 잃지 않고 웃을 수 있다는 것. 25년 세월이 얼굴에 겹겹이 그려져도 마음은 25년전 테니스코트에서 함께 땀 흘리며 어우러졌던 우정이나 환희 열정을 지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눈치를 보지 않고, 눈치 볼 필요도 없으며 혼자도 아니고 12명이 함께 웃음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모임. 웃음이란 묘약을 마신 집단. 일정회(日庭會). 그래서 매월 4번째 금요일 밤이면 부산 어느 곳에서든지 웃음 폭탄으로 지붕이 내려앉는 음식점이 한 곳씩 생기는 사건이 일어나고. 일정회(日庭會) 우리들 이름이다. 테니스를 치든, 골프를 치든, 등산을 하든, 일요일에 만나든, 금요일에 만나든, 25년간 변함없는, 초심을 잃지 않는 우리들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시작은 일요일에 모임 갖는 치과의사 테니스 동호회였다. 25년전 1984년에 태동되었다. 공생의 함박웃음을 공유하기 위해서. 개원초기 치과의사라는 직업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웃음이 필요했고 체력단련으로 웃음을 공유하는 법을 알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그 당시 비슷하게 개원한 30대 초반 햇병아리 치과의사들이였다. 11명의 치과의사와 1명의 짝퉁 치과의사.
일요일 아침 7시 자명종 시계가 “빨리 일어나세요”라고 요란하게 울려댔다."서은아, 성민아! 일어나야지?”"아빠! 오늘 무슨 요일이야? 월요일이야?" 이제 8살이 된 큰 딸이 눈을 비비며 물어보았다. 주일날 너무 일찍이라 일요일이 아니라 월요일인 줄 착각한 듯 했다.“아니 일요일이야, 오늘 봉사활동 때문에 교회를 일찍 가야 돼. 그러니 빨리 일어나. 동생도 빨리 깨우고." 치과대학을 다닐 때도 봉사활동을 한번도 안한 내가 이제 나이가 40살 쯤 되어 가니 철이 드는 걸까, 난데없이 의료봉사활동을 다니게 되었다. 의료봉사활동을 갈 때는 아내랑 아이들을 꼭 데리고 간다. 조금은 쑥스러운 것도 있고, 치과는 혼자서는 진료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도와주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입 속에 있는 충치니 풍치니 하는 질환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입 속을 잘 볼 수 있게, 보조원이 손전등을 비춰줘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봉사라고는 하지만 모든 진료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간단한 충치치료나 잇몸치료, 틀니 수정, 발치, 경우에 따라 턱관절 장애 환자의 물리치료 등을 시술해 준다. 주로 애들을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너무 먼 지방까지는 가기가 어렵다. 지난달에는 경기도 연천을
신문과 방송을 접하는 게 두려운 세상입니다. 즐겁고 희망찬 기사는 거의 보기 힘들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내용들 뿐입니다. 지난해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올해 들어서도 용산철거민참사를 비롯하여 경기침체와 천정부지로 치솟는 환율은 우리를 무겁게 합니다. 치과계 역시 전세계적인 불황의 늪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환자가 줄었다느니, 수입이 감소했다느니 하는 정도는 양호한 푸념이 되었고, 문닫을 위기에 놓인 치과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어차피 좋은 시절 있으면 힘든 시기도있기 마련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살벌해졌습니다. 현재의 한국 경제 시스템으로 볼 때 올 한 해 가장 타격을 입게 될 대상은 자영업자들이라고 합니다. 물론 치과의사같은 전문직 자영업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세한 가게나 식당 등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라는 것이지요. ‘88만원세대’라는 책을 읽고 절망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세대가 이토록 절망적이고 참담하고 세대내 경쟁만이 아니라 세대간 경쟁까지 겹쳐진 이 상황에서 한국사회에서 경제인구에 편입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개최할 국제학술대회의 준비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Skype로 전화한 저널 편집장은 시작부터 집회이야기를 꺼낸다. ‘쇠고기 수입문제로 오늘 집회가 있었다는데, 자네도 갔는가? 사람들이 또 다쳤는가?’ 치의학교육관련 워크숍을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분주하던 최근 어느 날, 서울에 살고 있는 절친한 외국인 교수가 BBC World 뉴스 내용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왔다. ‘용산에서 시위하던 사람들이 죽었다는데 들었나?’ 바쁜 일에 골몰한 서울사람조차 알기도 전에 서울 도심의 한 복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전 세계인들에게 생방송된다. 이제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만 23만명. 한국은 이제 국제화된 도시임에 틀림없고,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다. 연말에는 태국에 갈 일이 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시위대에게 점령되었던 스완나폼 공항은 이미 질서가 회복돼 있었고, 특히 공항에서 순서대로 손님을 태우고 미터대로 가격을 부르는 택시기사들은 방콕에 대한 좋은 첫인상을 안겨 주었다. 또한, 여행 내내 만났던 사람들의 친절함과 예의바름은 태국사람들의 캐릭터와 시민의식에 높은 점수를 부여하게 했다. 일정의 마지막 날. 우리는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H 원장 결혼식 때 특급 호텔에서 11코스의 정찬을 먹고 향기 좋은 와인을 한 병이나 마셔서 배는 부르고 취기도 적당히 오르는데 뭔가 허전하고 덜 채운 듯 한 느낌은 뭘까?방배동 유명한 일식집에서 싱싱한 회와 여러 가지 음식 그리고 매운탕에 소주를 한 병이나 마셔도 역시나 배는 불록하고 목구멍까지 음식이 가득한데 아직 뭔가가 그리운 건 내안에 걸신이라도 살아서 인지. 훼밀리 레스토랑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켜 배불리 나눠 먹고 맥주를 1000CC 정도 마셔도 아직은 뭔가가 그립다. 많이 먹어서 불유쾌한 느낌만 들고 몸에 좋게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위장만 혹사시켜 고단한 연동운동만 가중시켰다는 죄책감마저 든다.외식을 많이 할수록 수명이 짧아진다는 어느 영양 학자의 말이 공감이 간다. 좋지 않는 식자재, 너무 많이 사용하는 조미료도 문제지만 더욱 중요한건 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 결여라 할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음식을 만들었지 사람을 살지게 하기 위해서 만들진 않았으리라. 모처럼 한가한 휴일오후에 나를 위한 식사를 차려봤다.가장 중요한건 밥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찰기 좋은 밥만 보면 나는 군침이 돌고 먹고 싶어서 정신이
서예·국선도·대금 등 7가지 섭렵수준급 실력만큼 심신도 ‘넉넉’ 보통 일반인이라면 본업 외에 체육, 예술 분야 등에서 한 두 가지 취미를 갖고 있고 취미에 몰입, 전문가 경지까지 올라 부러움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그러나 ▲국궁 ▲국선도 ▲서예 ▲해동검도(도법) ▲단소 ▲대금 ▲거문고 등 일곱 개 전통 예·체능 분야에서 수련을 쌓아 전문가 수준에 도달한 팔방미인(八方美人) 치과의사가 있어 화제다. 현재 충남지부 회장이기도 한 이황재(이황재 치과의원) 원장. 이 원장은 진검으로 수련한다는 해동검도의 한 일파인 도법 4단이다. 우리 민족의 비전 전통 수련법인 국선도 역시 원기단법 수준에 올라 있으며 서예는 충청서도대전과 고불 서예대전 등에서 입선한 실력을 뽐내고 있다.국궁은 10년 수련 끝에 140미터 거리의 과녁에 평균 15발 쏴 11발을 꽤 뚫고 있다.거문고와 대금 역시 지역 국악 동호회인 능수 국악회 회장을 맡아 1년에 한번 정기 연주회를 갖고 있는 실력파다. “한국의 전통이 좋아 하나 둘 씩 관심을 갖고 하다 보니 여러 분야에서의 재주를 조금 갖게 됐습니다. 일반인들이 볼 때 전문가라고 하지만 아직 미숙함이
어려서 방학 때면 늦은 밤 시간까지 길 건너 교회에서 ‘지선상의 아리아’, ‘유머레스크’, ‘찌고이네르바이젠’같은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교회 목사님 아들이 방학 때면 시골집에 내려와 늦은 밤 시간까지 연습을 했었던 모양인데. 제가 직접 그 형아를 찾아가서 그 바이올린 소리가 너무 좋은데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냐고 물었더니 바이올린만 사오면 그냥 가르쳐 준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바이올린 사 달라고 했는데 사주시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악기를 배울 기회가 없어지고, 음악과는 거의 담을 쌓고 살았어요. 고등학교 때 짝이 밴드부였는데 플루트가 전공이었어요. 그 넘, 그 악기 은이라며 만지지도 못하게 했어요. 나도 정말 은이라고는 생각도 안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은이 맞았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플루트 케이스에 찍혀 있던 야마하 글자가 지금도 선명하게 생각나네요.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플루트를 가르치는 학원에 들어가게 되 게시판에 50에 가까운 중 늙은이인데 지금 나이에도 플루트를 배울 수 있냐고 글을 올렸더니만 아무때나 방문하라고 해서 발을 디디게 되었어요.내게 플루트와의 인연은 이렇게 맺어진 것 이랍니다.
김정열한국요시다 부장남북치의학교류협회 이사 북측 안내원들과는 다른 장소에서 식사를 했고, 식사를 마치고 많은 북측 사람들이 식사하는 곳을 통과해 지나갔다. 점심시간 옥류관에 몰리는 인파는 어마어마할 정도였다. 주의를 살펴보기위해 강가 베란다 비슷한 곳에서 옆 건물 모란각 1관 3관, 그리고 평양 시내를 보았다. 우리는 평양적십자 병원으로 이동했다. 병원장의 따뜻한 영접과 설명이 있었다. 하루에 환자가 1300명 내지 1500명 정도나 된다고 했다. 병원측에서 우리 접대용으로 밤과 감, 사과를 준비를 했는데 사과는 볼품이 없었다. 하나씩 드는 중에 병원장이 역사에 관계된 말을 했는데, 옛날 강감찬 장군이 당을 칠 때 대추를 병사 한 사람에 하루 다섯 알씩을 계산, 준비해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도 좋은 과일이 대추라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잠시 후 나와 한림 직원은 유니트를 설치할 장소로 가보니 텅빈 방이었다. 그 곳에 한림 유니트 1대와 컴프레셔, 석션, 그리고 요시다 기계 레지나 한대를 설치하였고, 나머지 인원은 병원장의 안내로 병원 여러저기를 둘러보았다. 저녁은 호텔 민족식당에서 했다. 3일 째, 아침부터 버스로 보통강을 지